[기자수첩]한국전력, 허수아비 사장 세워서 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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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한국전력, 허수아비 사장 세워서 뭐하는가
  • 권희진 기자
  • 승인 2012.11.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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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권희진 기자]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정부의 사사건건 지적에 손발이 모두 묶인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석상에서 “가장 개혁이 필요한 곳이 공공기관”이라고 언급한 바 있듯 공공기관 개혁은 현 정부의 핵심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간판 공기업인 한전의 수장 자리가 곧 정부 개혁의 상징성을 여실히 드러낼 수 있는 기준이었던 만큼 정부는 현 정권 실세와 줄이 닿아 있는 민간기업 출신의 인사들을 최고경영책임자(CEO)로 줄줄이 영입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민간기업 출신 수장들은 하나같이 제 역량 발휘는 커녕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줄줄이 ‘중도하차’라는 쓴맛을 봐야했다.

일례로 한전의 첫 민간 수장인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은 LG전자 부회장 출신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인물이지만, 전기료 인상 문제로 정부와 마찰을 빚다 소송을 당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민생을 우선시한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억제하자 결국 한전 소액주주들로부터 2조8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이후 ‘MB맨’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현대건설 출신의 김중겸 전 사장이 한전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했지만, 그 역시 취임 1년1개월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한전의 4년 연속 적자 및 누적적자 10조원을 이유로 전기료 두자릿수 인상을 주장하다 역시 물가안정을 우선시하는 정부와 갈등을 빚은 게 원인이었다.

그는 지난 9월 전력거래소를 상대로 4조4000억원대 소송을 추진하다 지경부로부터 구두경고를 받기도 했다.

김 전 사장은 “손 발을 다 묶어 놓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실제로 만년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의 경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때마침 반대 입장을 고수해 양측의 불협화음이 지속됐다.

지난 7월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 여부와 관련해 "한전의 개혁이 전제되지 않고는 국민이 전기요금 인상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한전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민간기업 출신 사장들의 연이은 사임을 두고 “정부가 추진한 민간 CEO의 한전 사장 영입은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정부와 대립해서는 안된다”는 이율배반적인 메시지만 남겨준 꼴이 됐다”며 힐난했다.

정부는 현 정권 실세와 친분이 있는 민간기업 출신의 CEO들을 공기업 수장으로 앉혔지만, 정작 이들은 정부의 텃세 탓에 기도 못 펴고 지리멸렬한 수난을 겪고 말았다.

당초 공공기관 개혁과 정부개혁 논하던 정부가 결국 허수아비 사장을 세우고 이도 저도 할 수 없게 손발 다 묶어버리는 억지 인사만 한 꼴이 된 것이다.

부디 차기 정권에서는 억지인사를 앉혀놓고 개혁만을 바라는 정부의 ‘악수’가 재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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