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스타트업 놀이터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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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스타트업 놀이터돼야
  • 박한나 기자
  • 승인 2019.07.2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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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한나 기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의 일부다. 참신한 사업 아이템 하나로 시장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신생 벤처기업들을 만나다 보면 새삼 떠오르는 시가 아닐 수 없다.

흔들리다 못해 맥없이 쓰러지는 신생기업들을 보다 못해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국무조정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기벤처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다. 규제 샌드박스 시행 6개월 만에 81건의 과제를 승인하는 성과도 냈다.

문제는 금융권의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들만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레 놀이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과 신사업을 시작하려는 기업들에게 관련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해주는 제도다. 적어도 어린이가 노는 놀이터에 어른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는 환경은 제도의 의미를 퇴색하게 한다.

금융위가 승인한 37건 중 8건은 이미 시장에서 철옹성을 쌓고 있는 금융 대기업들이 신청해 선정된 서비스들이다. 예컨대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통한 금융‧통신 융합, 우리은행의 환전‧현금 인출 서비스, NH농협손해보험의 온오프 해외여행자 보험, 신한카드의 개인 간 송금 서비스 등이 그 예다.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 초기 단계이고 대기업들의 신성장 동력 확보가 중요한 상황이라는 반론도 있다. 국민의 일상에 편리함을 제공하는 서비스 선정에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에서 대기업의 역할은 스타트업과의 협업이지 그 자리 자체의 차지가 아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협력하는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라도 선정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로 선발된 스타트업의 특허권 지원도 시급한 과제다. 스타트업이 어렵게 개발한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가로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스타트업들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시장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이자마자 자본력과 시장 지배력에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금융권 기업들이 관련 서비스에 관심을 넘어선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벌써 들린다.

스타트업에게 배타적 독점권까지는 아니어도 배타적 운영권 확보가 필요하다. 시장에 신사업을 선보이는 기간조차 법과 제도적 지원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들에게 규제 샌드박스는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체험하는 장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스타트업들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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