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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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왕관을 쓰려는 자 무게를 견뎌라
  • 조현경 기자
  • 승인 2019.07.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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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조현경 기자] 삼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기자는 부모님의 기대도 한 몸에 받았지만 그만큼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놀이터에서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를 밥 먹다 만 숟가락을 들고 나가 동생을 보호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동생들의 일탈에 대해 부모님께 대신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 이토록 맏이의 왕관은 무거우면서도 함부로 벗을 수 없다. 한 집안 맏이의 책임감도 그러한데 한 국가의 당을 혁신하고자 하는 혁신위원장이 무게는 얼마나 무거우랴. 그러나 이런 왕관의 무게를 쓰자마자 벗어던진 정치인이 있다.

지난 11일 바른미래당 주대환 혁신위원장은 취임한지 25일 만이자 혁신위가 출범한지 불과 11일 만에 혁신위원장을 돌연 사퇴했다. 그는 “지난 일주일여의 혁신위 활동 기간 중 제가 본 것은 계파갈등이 혁신위에서 그대로 재현된 모습이었다”며 “크게 실망했고 젊은 혁신위원들 뒤에서 조종하는 당을 깨려는 검은 세력에 대해 크게 느낀다. 그들과 맞서 당을 발전시키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지만 역부족을 느껴 혁신위원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했다. 이에 갑작스럽게 리더를 잃은 혁신위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주 위원장은 혁신위에 젊은 위원을 맡기고 코치를 맡겠다고 밝혔는데 그 코치가 선수들에게 한마디 상의도 사전 연락도 없이 돌연 사퇴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다음날 열린 최고위에서는 “혁신을 하겠다고 했던 위원장이 혁신을 거부하고 사퇴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혁신위가 반혁신을 하는 것”(김수민 최고위원)이라는 청년 최고위원의 비판이 나왔다.

물론 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결정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 위원장의 사퇴 발표 전날 혁신위는 회의를 열고 혁신안을 의결했다. 그런데 이 혁신안에 현지도부 체제에 대한 공개공청회, 재신임을 묻는 여론조사 등이 담겨 사실상 손 대표의 퇴진을 혁신위에서 논의하겠다는 안이었다. 혁신안이 찬성 5, 반대 4로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의결되자 손 대표의 측근인 주 위원장은 사퇴를 결심한 것이다. 주 위원장은 사퇴라는 강수를 둠으로써 손 대표의 퇴진에 대한 강한 반대 입장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니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이야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내홍을 겪으며 겨우 혁신위 출범으로 합의점을 찾은 바른미래당의 상황을 생각하면 출범한지 불과 열흘만에 혁신위원장 직을 박차고 나선 것은 혁신위를 좌초시키고 더 나아가 당권파와 반당권파 간 재충돌을 염두에 둔 행위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주 위원장의 처신이 너무나 가볍게 여겨지는 이유다. 게다가 앞서 혁신위원장 선정 과정에서 반당권파가 정병국 의원을 내세우며 “손 대표가 측근 인사로 공당을 사당화하려고 한다”며 강력반발하자 손 대표는 “손학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축하지 않았나. 주 위원장의 행위는 자신이 손학규 사람이란 점을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주 위원장은 자신의 무책임에 대한 비난의 무게는 견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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