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방 못빼” 한국당 감투싸움에 국회 권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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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방 못빼” 한국당 감투싸움에 국회 권위 무너진다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9.07.1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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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국회가 모처럼 정상화되나 했더니 이제는 감투 쟁탈전에 돌입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회의원의 꽃’이라고 불리는 상임위원장은 3선 이상 의원이라면 거쳐야 할 관문처럼 여겨진다. 국회법에는 상임위원장 임기가 2년으로 규정됐지만 자리다툼이 치열한 탓에 1년씩 돌아가며 맡는 ‘임기 쪼개기’도 생겨났다. 자리는 한정됐지만 서로 상임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서 만들어진 편법이다. 잘못된 선례이고 엄연한 국회법 위반이지만 여야 모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편법까지 만들었지만 국회에선 상임위원장을 둘러싼 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의원뿐 아니라 정당에게도 상임위원장직은 민감한 자리다. 지난해 이학재 의원이 바른미래당 탈당 기자회견을 할 당시 벌어진 소동에서 이를 체감할 수 있다. 이날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은 모든 언론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모처럼 텅 빈 모습이었다. 복도에서 발생한 소동 때문이었다. “당장 사퇴하라” “먹튀하지마”라는 고성이 오가는 현장에는 바른미래당 일부 당원들과 지지자가 이 의원을 향해 바른미래당 몫으로 맡았던 국회 정보위원장직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물론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한데 뒤엉켜 일촉즉발의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보통 기자회견 후 정론관 복도에서 백브리핑을 하지만 이 소동으로 이 의원은 정론관 옆 기자실로 피신까지 했다. 결국 이 의원은 정보위원장직을 내놨다.

지금은 자유한국당에서 상임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한국당 지도부가 홍문표 의원으로 국토위원장 교체를 추진하자 기존 위원장이었던 박순자 의원은 돌연 입원까지 하는 강수를 뒀다. 그나마 1년씩 나눠맡기로 했다던 약속은 진실게임으로 바뀌어 박 의원은 “1년씩 상임위원장 나누기에 합의한 적 없다”고 버티고 있고 당에서는 번갈아가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국당 지도부는 박 의원을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이번 집안싸움은 상임위원장에서도 ‘알짜 상임위’로 꼽히는 국토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을 두고 벌어졌다. 이들 상임위는 지역예산을 확보하는데도 유리해 총선을 1년 앞둔 지금은 지역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좋은 카드가 된다. 특히 국토위는 대규모 도로 등의 예산과 허가를 맡고 있어 지역구 추진 사업 통과를 요청하는 ‘쪽지 예산’도 만연한 상임위다. 예결위 또한 한해 예산을 지휘하다보니 본인의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일도 식은 죽 먹기다. 최근 일련의 모습을 두고 ‘감투싸움’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국회 상임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법안을 상정하는 등 의정활동을 하는 핵심보직이란 것이다. 상임위원장 임기를 2년으로 정한 것은 이러한 전문성 때문이다. 그런데도 상임위원장직을 ‘전리품’처럼 여기는 행태는 국회가 아직 국민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처리해야할 민생법안이 산더미인데 이러한 ‘감투싸움’은 국민의 눈에 한가롭게 느껴지고 볼썽사나운 모습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뿐이다. 쪼개기 편법이 여야를 막론하고 만연하고, 원구성 협상 때마다 상임위 나눠먹기 행태가 벌어지는 것 또한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태다. 이러한 분쟁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에, 전문성이 입증된 위원장이 정당한 절차로 선출돼 임기를 완수하도록 규정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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