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례로 본 중소기업 기술유출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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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례로 본 중소기업 기술유출 '백태'
  • 권희진 기자
  • 승인 2012.11.0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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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은 대기업 인력양성소?
[매일일보 권희진 기자]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피해가 심각하다. 그런데 기술유출의 주된 경로가 대기업들의 ‘인력 빼가기’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006년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 폐지로 대기업들이 잇따라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에 진출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 중소기업들의 핵심인력까지 넘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대중소기업 간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대기업은 여전히 말뿐인 ‘상생’을 외치며 오히려 경제민주화를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산업기밀보호센터는 2005년~2011년간 국내 첨단기술을 불법유출한 사건 총 264건을 적발했다. 연도별로는 2005년 29건, 2006년 31건, 2011년 46건 등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자료=산업기밀보호센터)

중소기술유출 누적 피해액 5조755억… 경로는 대기업 ‘인력빼가기’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 등 실효성 가미된 강력한 제재마련이 시급

GS그룹의 계열사 GS에코메탈이 폐수처리시설 설비 중소업체인 와이투의 폐수처리 기술을 도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그 진위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와이투는 GS에코메탈이 자사의 지적재산권을 탈취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주장과 함께 이번 기술도용이 ‘GS칼텍스’의 허동수 회장 친족 회사에 기술을 넘기기 위한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주장을 해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와이투에 따르면, GS에코메탈은 현재 문제가 된 폐수처리담당 공장 가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이다.

지난 9월에는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봉제기계 중소업체인 세명정밀의 에어백용 자동연단기 기술을 도용, 특허를 침해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역시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이다.

또, 지난 5월에는 인력스카우트를 통한 기술유출사건도 있었다. 검찰은 반도체 제작 공정에 사용되는 ‘메탈필터’제조기술을 보유한 중소업체에 근무하던 직원이 웅진케미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전 회사의 관련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잡고 웅진케미칼에 대한 본사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외에도 전기차 배터리 제조 중소업체의 품질보증팀 소속 한 임원은 대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전 회사가 2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자동차용 대형 전지 관련 기술을 유출하기도 했다.

그런 가하면 지난 8월에는 SK C&C 직원 4명이 국내 중소업체가 보유한 기술개발 인력 및 시스템 구축 매뉴얼 등의 영업 비밀을 빼돌리다 불구속 입건되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같은 달 자신이 근무한 한 중소기업의 태양광 관련 기술을 대기업으로 이직하면서 빼돌린 직원이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기술 유출로 인한 중소기업의 손해액은 2300억원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월에는 기업에 기술지원을 해야 할 정부출연기관 역시 지난 9년 간 200억 원을 투입해 개발한 한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돌려 국제특허출원까지 받다 덜미가 잡혔다.

▲ 올해 주요 중소기업 기술유출 피해 사례(자료=일부 언론 기사 및 공시 자료 참조)

기술유출 원인은?

지난 2010년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가 이어지면서 대기업들은 잇따라 중소기업과의 동반상생협력방안을 발표하는 등 동반성장을 위한 투자재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언행일치 행보는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착취하는 등 이들의 생존 영역마저 침해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2000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협력사의 22.1%가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에 대한 대기업의 요구를 애로사항으로 지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지식경제위 김동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달 9일 중소기업청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누적 피해액은 지난 2010년 기준 5조755억원이었으며, 기술유출 경험이 있는 피해 중소기업은 14%로 건당 피해규모는 평균 15억80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해마다 급증하는 기술유출의 경로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가 기술유출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서도 주로 대기업에 의해 진행되는 인력 스카우트(42.2%)가 가장 많았으며, 특히 최근 5년 간 기술 인력을 한 번 이상 빼앗긴 중소기업의 75.0%가 대기업 납품업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업들이 고임금을 내세워 숙련된 중소기업의 인력을 경력직으로 채용하는 추세가 늘면서 항간에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가는 인력양성소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영향으로 직원 이직률이 급증, 자연스레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특히 성장잠재력이 큰 중소기업의 인력 채용이 급증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경찰청은 올해 1월부터 9월 말까지 검거한 산업기술 유출사건 99건(278명) 가운데 5건(40명)이 동반성장 침해형 기술탈취 건이었다고 보고한 바 있는데, 이는 대기업이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기반기술을 탈취하는 유형을 비롯해 하도급, 납품업체의 기술을 다른 중소기업에 유출해 가격을 낮추는 유형, 또는 기술개발 비용이나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앗는 유형까지 그 수법도 다양했다.

▲ 최근 5년간 유형별 분석(2007~2011년) (자료=산업기밀보호센터)

대기업 ‘인력빼가기’ 방지책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달 1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주재한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마련으로 "전문 인력 양성과 함께 중소기업에 기술유출 대응 매뉴얼을 보급하고 기술유출 분쟁조정기구를 설치하겠다"라고 밝혔다.

민간 중재 조정기구를 만들어 기술유출을 사전에 예방하고 방지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에 대한 중기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예방과 중재 보다는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 등과 같은 보다 실효성이 가미된 강한 제재 조치 도입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기업계는 “기존 징벌적손해배상 제도를 강화하고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에만 주어졌던 불공정거래 고발권을 다른 기관들에게도 부여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최근 고용노동부는 또 다른 대책마련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인력을 스카우트할 경우 해당 기업에 ‘트레이즈 머니’(이적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해당 업종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약을 맺어 이적료 가이드라인을 적용, 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적료 지급 방안이 중소기업의 인력유출 최소화는 물론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으로 고용부는 전망하고 있다.

이에 앞서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중소기업의 기술 유출 피해규모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에 대비할 기술보호 역량이나 사후 대응능력이 매우 취약하다"며 "정부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주요 산업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컨설팅 지원과 전담 인력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업계 한 전문가는 “기술유출은 당해 기업의 손해에 그치지 않고 엄청난 국부의 유출과 국민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며 “정부는 산업보안실태를 파악하고 강력한 기술유출범죄의 예방 및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법원 역시 기술유출범죄의 재발방지를 위해 엄격한 법적용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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