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감 없는 정치인이 이 시대의 꼰대다
상태바
[기자수첩] 공감 없는 정치인이 이 시대의 꼰대다
  • 조현경 기자
  • 승인 2019.06.23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조현경 기자]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최근 서류에서 일명 ‘광탈’(광속탈락)하며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 친구. 낮은 학력 때문에 일류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스펙을 쌓고 있는 친구. TOEIC, 컴퓨터활용능력, 한국사 등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스펙을 보유하고 있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 기자의 주변에 더 높은 스펙을 쌓아 취업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소중한 20대를 쏟아붓고 있는 지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최고의 스펙은 부모님의 능력, 즉 ‘빽’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발언을 하는 정치인이 있다. 지난 20일 숙명여대 특강에서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 청년을 소개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이다. 그는 “학점도 3.0도 안 되는 엉터리에 다른 스펙도 없다”며 “졸업한 뒤 15곳 회사에 원서를 냈는데 10곳에서 서류심사에 떨어졌다. 그런데 나머지 5곳에선 모두 최종합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큰 기업들에서는 스펙보다는 특성화된 역량을 본다”며 “그 청년이 우리 아들”이라고 설명했다.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점과 자격증, 대외활동을 챙기며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스펙은 필요 없다”며 자기 아들의 취업성공을 자랑한 것이다. 황 대표의 공감 없이 경솔하게 내뱉은 발언에 특강을 들은 학생들은 ‘빽’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을 것이다. 황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 그의 아들이 KT법무실에서 근무해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상황을 고려하면 황 대표는 학생들의 상황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논란이 불거지자 황 대표는 “남들이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것을 똑같이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실망하고 좌절하는 청년들이 많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물론 황 대표의 아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스펙없이 대기업에 취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유권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의 말은 일반인보다 더욱 공감해야 하며 그 방향은 청자를 향해야 한다.

황 대표의 의도가 어찌됐든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꼰대 같은 발언들에 자신들의 현실을 공감 받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황 대표의 발언은 다시 한번 상처를 줬음은 분명하다. 황 대표는 항상 국민 눈높이에 대해서 생각하라는 ‘심사일언(深思一言)’의 뜻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