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윤창호법이 부른 변화야말로 국회 존재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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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윤창호법이 부른 변화야말로 국회 존재의 이유다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9.06.20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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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얼마 전 근처 시장을 구경하다 들어간 한 허름한 식당에서의 일이다. 포장을 부탁한 음식을 기다리던 중, 옆 자리에 앉은 일행의 대화소리가 무심코 내 귀에 들어왔다. 날도 어두워지기 전 중년 남성 세 명이 막걸리를 기울이며 칼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음주운전이 이들의 대화 화두였다. “내가 옛날에는 별명이 올림픽이었다. 4년에 한번 면허가 바뀌었기 때문에...그때는 벌금도 얼마 안했다” 이미 얼굴이 빨개진 한 남성이 웃으며 이렇게 말해 내가 흠칫하려던 찰나 “옛날에는 그런 것도 자랑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하지 마라. 대리기사를 부르는 것이 제일 마음이 편해”라는 말이 이어졌다. 음주운전을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했던 과거의 모습을 ‘왕년에’ 화법으로 조금 과장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변화를 느끼니 작년 국회에서 윤창호법 통과 과정을 지켜봤던 나로서는 나름 뿌듯했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으로, 작년 부산 해운대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카투사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왔던 22살 윤창호씨는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고,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숨졌다. 사고를 계기로 음주운전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거셌고, 윤씨의 친구들은 법안 제정을 주도해 끝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의미 있는 보도자료도 어제 내 메일함에 도착했다. 윤창호법을 대표 발의했던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실 발 보도자료였는데, 지난해 12월 18일 윤창호법 시행 이후 올해 1~5월 음주운전 적발건수(5만 463건)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3%가 줄었다는 통계가 담겨있었다. 이뿐 아니라 올해 1~3월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 또한 전년 대비 31% 감소했고, 음주운전 사고도 34% 줄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고 음주운전도 여전히 만연하지만, 법안 한두 개가 우리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하다. 윤창호법 발의에 참여했던 국회의원이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되는 등, 법을 만드는 입법부의 인식도 안일하다. 음주운전을 쉽게 생각했던 과거의 정서가 아직 남아있는 만큼 극적인 변화와 성과가 단시간에 나타나기도 힘들다. 지금도 윤창호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명인들의 음주운전 적발 사례도 끊이질 않고 있다. 그렇지만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으로 사회에 경각심을 주고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기존 인식에 변화를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국회가 정쟁이 아닌 본연의 임무인 입법 활동에 매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법안이 민생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거대 양당이 국회 정상화를 둘러싸고 앞 다퉈 ‘민생’을 내세우고 있다. 멈춰버린 국회에서 말로만 민생을 외칠 것이 아니라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 논의의 장에서 민생법안을 살펴야 한다. 이달 25일부터는 소주 한잔만 마셔도 면허가 정지되는 ‘제2윤창호법’이 시행된다. 보다 강화된 법이 시행되는 만큼 음주운전이 살인행위와 같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히고, 법의 실효성도 더욱 가시화돼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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