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논란 키운 건 만남 자체가 아닌 양정철 원장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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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논란 키운 건 만남 자체가 아닌 양정철 원장의 태도
  • 조현경 기자
  • 승인 2019.05.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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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조현경 기자]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4시간가량 한정식집에서 만난 사실이 알려진 뒤 파문이 가시질 않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양 원장의 태도다. 보도 직후 양 원장은 "제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미행과 잠복 취재를 통해 일과 이후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만남 사실을 폭로한 인터넷매체를 공격했다.

양 원장은 자신이 고위공직자가 아니고 독대도 아닌 사적 만남에 불과했다며 '언론의 과도한 취재 탓'을 하고 있으나 어불성설이다. 양 원장은 고위공직자는 아니나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스스로 "대통령과 이심전심"이라고 발언하는가하면 자신이 새로 맡은 민주연구원을 두고서는 "총선의 병참기지"라고 했다. 군대에서 병참이라고 하면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적·인적 자원 보급을 모두 망라한다. 양 원장의 발언은 총선에 필요한 자금과 공천인사까지 모두 도맡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정권의 실세 중 실세라고 공개석상에서 과시하는 인사가 언론의 감시를 받지 않겠다는 그 태도가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양 원장이 대응방식에 있어 신중했더라면 이번 논란은 금방 진화될 수 있는 성격이었다. '저녁식사에 함께 했던 분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기자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서 소상히 밝히겠다'는 정도로 대응했다면 이렇게 논란이 커졌을까 싶다.

실제 동석했던 김현경 기자는 여러 의문점들에 대해 성의있는 답변을 내놨다. 우선 4시간동안 공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과연 오가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에 대해 김 기자는 "서 원장은 이미 단행된 국정원 개혁에 대해 말했습니다. 국내 조직을 없애다보니 원장이 할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외 싱크탱크, 전문가, 언론인, 여야 정치인 등과 소통을 원장이 직접 담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밖에 한반도 정세와 오래 전의 개인적인 인연 등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한참 갔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경험을 해본 기자라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다. 특히 선거와 관련해 김 기자는 "총선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서 원장이 민감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두 만남을 하나로 모은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양 원장과 만날 경우 어떤 식으로도 총선 개입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으니 서 원장이 일부러 기자를 동석시켰을 것이라는 의미다. 감히 기자와 같이한 자리에서 두 사람이 선거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테니.

양 원장이 정권을 창출해낸 일등공신이자 유능한 전략가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려깊음과 신중함에 있어서는 과연 대한민국의 평균 수준 정도는 되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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