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잃었지만 7대륙 최고봉 품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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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잃었지만 7대륙 최고봉 품안에
  • 매일일보
  • 승인 2009.01.20 12: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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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산악인 김홍빈씨 장애인 최초 7고봉 완등

새해 벽두 남극대륙 빈슨 매시프(4897m) 등정으로 양손이 없는 장애인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7대륙 최고봉 완등의 쾌거를 이뤄낸 김홍빈 대장(46·에코로바 홍보이사)은 “앞으로 5년 이내 히말라야 8000m급 14좌 가운데 아직 오르지 못한 10개 봉우리를 모두 올라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장은 이를 위해 올 봄 시즌 안나푸르나(8091m), 다울라기리(8167m), 여름 시즌엔 K2(8611m)에 연속 도전할 계획이며 이미 지난 2006년부터 가셔브룸Ⅱ와 시샤팡마 남벽, 에베레스트, 마칼루 등 8000m급 4개 봉 정상을 밟았다.

“5년 내 히말라야 8천m급 14좌 정복하는 게 목표”
美 맥킨리 등정 때 손가락 잃은 후 다리 힘으로 등반


-마침내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올랐다.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가.

▲ 동상으로 양손을 모두 잃은 뒤에도 산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오르다보니 한 가지 매듭을 짓게 된 것 뿐이다. 무슨 거대한 뜻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산을 좋아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등반이어서 시작한 것이다. 비록 남들보다 늦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1997년 유럽 엘브루즈 등정 준비과정부터 치면 꼭 12년이 걸렸다. IMF 사태가 빚어졌던 그해 구직활동을 하던 중 무등산에 올랐는데 아이와 함께 온 한 아버지가 ‘저런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않느냐’고 아들에게 말했다는 것을 건네 듣고 ‘그래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하는 생각이 들어 일본 다테야먀를 오르며 몸과 마음을 시험하고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번 남극 빈슨 매시프 원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 실제 등반보다 어려운 것이 준비과정이다. 원정경비를 마련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웬만한 8000m급 2~3개봉을 오를 수 있는 예산이 필요했다. 남극 특유의 날씨와 강한 바람도 대원들을 힘들게 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날씨와 수송기 일정에 모든 것이 맞춰져 돌아가다 보니 오직 기다리는 것밖엔 대책이 없었다. 이 때문에 등정 시점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졌다.

-유럽, 미주 산악인들과 함께 빈슨 매시프를 올랐다. 우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 미주나 유럽에는 3000~4000m급 고산이 많아 그들은 자연스럽게 고소에 적응하고 들어온다. 따라서 체력적으로는 유리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보자와 똑같이 안자일렌을 강요하다 보니 속도를 내지 못해 나중에는 되레 지쳐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안전을 중시하는 점은 배울 부분이다.

-열 손가락을 잃게 된 1991년 맥킨리 사고는 어떻게 일어났나.

▲ 고산 원정에서는 ‘최소 장비, 최소 식량’의 원칙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맥킨리의 경우 식량 개선을 시험하기 위해 쌀을 빼고 간편식을 가져갔는데 정상 공격 시도 후 대기하던 중 고소와 탈진으로 의식을 잃었다. 깨어보니 병실이었다. 더 이상 등반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후배들 생각을 많이 했다. 사고 이후에도 기죽지 않고 잘 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산을 배울 때 기초를 잘 다져 지금도 써먹을 수 있는 것 같다.

-사고 이후 어떻게 재기했나.

▲ 처음에는 혼자 속옷도 못 입고 방문도 못 열 정도였지만 하늘이 나를 살려놓은 의미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선후배들도 방에만 있으면 못쓴다며 자꾸 산으로 데려가 격려했고 한달 만에 등산학교 강사로 나갔다. 중장비 운전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봤지만 산이 없었으면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 다시 산으로 가게 됐나. 가족들 반대도 심했을 텐데.

▲ 산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산이 아니라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인데 스스로 (장애를) 부끄럽게 여기면 누가 도와주겠나. 이상하게도 산에만 가면 힘이 생기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마도 산이 나를 끌어당겼나 보다.

-손가락이 없는 것이 등반에는 치명적 아닌가.

▲ 다리 힘을 많이 길러 양발로만 밸런스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시내버스를 타도 앉지 않거나 까치발 들고 다니기 연습도 했다. 크램폰 착용 때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자 걸음도 일상에서 아예 생활화했다. 물론 어려움도 많다. 암벽과 빙벽 훈련 중 다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뼈가 성할 날이 없다. 지난해 봄 마칼루 원정에 나설 때는 빙벽 훈련을 하다 출국 두 달 전 갈비뼈에 금이 갔는데 행여 원정이 무산될까봐 말도 꺼내지 못했다.

-8000m급 14좌 완등까지 모두 이룬다면 그 이후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 나눔캠프를 운영해보고 싶다. 야영과 취사를 직접 하면서 서로 돌봐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정신적·육체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다. [기사검색제공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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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21 00:33:35
불가능 해 보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끈기와 노력으로 결과를 이루어 내신 김홍빈씨께 진실된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