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안지키는 정몽구 회장… 여론 뭇매에 ‘죽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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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안지키는 정몽구 회장… 여론 뭇매에 ‘죽을 맛’
  • 이광용 기자
  • 승인 2008.10.27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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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환원약속-사회봉사 명령 미이행 비난여론 쇄도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여론의 뭇매에 시달리고 있다.

‘내우외환’의 악재에 고전하는 와중에 ‘약속 안지키는 기업총수’라는 낙인이 박힐 수도 있는 위기에 휩싸이고 있다.

정 회장은 김동진·김용문 부회장이 금융감독원의 조사 대상에 포함되거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되는 등 잇다른 악재에 직면해 일각에서 최근 ‘제 살 도려내는’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는 혹평을 듣고 있다.

여기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강타하면서 최근 중국정부의 현대차 수입 중단에 이어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감산 조치를 내리는 진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8대 국정감사에서 그동안 잠복해 있던 ‘사회환원 약속은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일각의 지적에 기름을 끼얹는 질타가 쏟아져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을 ‘고립무원’의 나락으로 빠뜨리는 분위기다.

대기업 총수에 유달리 관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법조계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관행 논란도 국감장을 달궈 여론 악화를 경계하는 현대차를 애태우고 있다.


年 1200억씩 8400억원 약속불구 900억만 출연
집행유예 판결 때부터 ‘재벌 봐주기’ 비난여론
사면 정보 입수해 300시간 사회봉사명령 회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지난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횡령액 대부분을 계열사 회생과 사회환원에 쓰겠다는 정 회장의 약속을 배려해 이같이 선고했다.

비자금이 대부분 회사 경영을 위해 쓰였고 횡령액에 대한 피해 회복이 이뤄졌으며 기소 이후 잘못된 관행을 깨려고 노력한 점, 정 회장이 고령(70세)인 점 등을 고려했다. 특히 재판부는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해 사재를 출연하겠다는 약속을 집행유예 선고 사유로 꼽았다.

집유 판결 때부터 ‘기업총수 봐주기’ 비난 쇄도

정 회장은 지난 2006년 구속 당시 대국민 약속을 통해 비자금 사건의 발단인 글로비스 주식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회장은 환송심 법정에서 사회공헌기금 8400억원을 매년 1200억원씩 사재로 7년간 헌납하겠다고 약속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정 회장에게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선고했다.

이같은 판결이 나오자 일각에서는 법원의 기업범죄 봐주기 ‘단골메뉴’를 되풀이해서 내놨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사재 8400억원을 출연하겠다는 정 회장의 약속에 강제수단을 붙이지 않은 채 집행유예를 선고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파기환송 전에 항소심 재판부가 사회봉사명령을 내린 판결보다 후퇴했다는 비난도 나왔다. 참여연대는 이를 돈으로 ‘사법정의를 사고 판 재판’이라고 치부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앞서 정몽구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 및 사회봉사명령을 두고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참여하는 사법감시센터 판결비평을 통해 혹독히 비판했다.

비평에서 하 교수는 “사회에 환원하라는 8400억원은 불로소득 또는 불법소득이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히 사회에 환원해도 아까움이 없는 돈이다. 의당 과징금 등으로 추징해야 하는데 어설픈 경제논리를 끌어들여 현대기아차의 1인 지배를 만천하에 인정해줬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법원이 진실로 나라 경제를 걱정했다면, 전근대적인 기업경영 관행에 단호히 제동을 걸었어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주주의 돈을 훔친 사람이 그 돈을 사회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해준다면 이 세상에 절도나 횡령으로 ‘콩밥 먹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며 “앞으로 법정에 서게 될 부자 피고인들이 ‘사회공헌기금’을 선택하면 법원은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사법부를 꼬집었다.

年 1200억씩 8400억원 약속 불구 1년 넘겼어도 900억만

정 회장은 수백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 결국 특별 사면됐다. 사면 조건 가운데는 정 회장의 사회환원 약속이 큰 몫을 했다.

그렇다면 정 회장은 사회환원 약속을 지켰을까.

현대차에 따르면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현대차그룹 내에 해비치사회공헌문화재단을 설립, 600억원 상당의 글로비스 주식 92만여주를 지난해 11월 출연했다.

지난 7월에는 300억원 어치의 글로비스 주식 48만여주를 추가로 풀어 사재 900억원을 사회환원 자금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시점이 의아하다는 의혹을 받았다. 8월 특별사면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의식해 출연한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정 회장이 외아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지분은 놔두고 자신의 재산만 출연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후계구도를 이으려는 포석 때문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책임경영을 맡았던 부회장들이 줄줄이 문책성 인사로 떠난 것도 승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박정인 HMC투자증권 회장이 6개월만에 자리를 떠났고,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도 최근 인사에서 현대모비스로 발령났다. 김용문 부회장 역시 계열사인 다이모스로 자리를 옮겼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정 회장이 최근 들어 ‘럭비공 인사’를 하는 것은 정의선 사장에게 그룹을 승계하려는 의도에서 이뤄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현대모비스를 지주회사로 전환해 아들에게 승계하는 구도를 그려봄직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런 가운데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입을 내둘렀던 국민 일각의 뇌리에서 ‘재벌 정몽구’가 잊혀져갈 즈음, 국감에서 ‘총수의 약속’을 중간 평가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영어(囹圄)’의 몸에서 자유로워진 정 회장의 약속이 흐지부지될 개연성이 높다는 의심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그 바통을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어받았다. 주광덕?박민식 의원이 법사위 국감장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들이다.

사면 조건 환원약속 국감서 ‘뭇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주광덕 의원의 진단은 ‘아니올시다’이다. 그는 7년간 8400억원의 사재를 사회에 내놓겠다던 정 회장이 특별 사면이 이뤄지자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흐지부지 끌고 있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주 의원은 지난달 23일 법무부 국감에서 “2007년 5월 서울고등법원 법정에서 1년 안에 12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600억원 밖에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켜지지도 않을 사회공헌 약속을 바탕으로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데다가 법무부마저 형을 확정한지 두달만에 사면이라는 면죄부를 줬다면서 사법부의 ‘기업 봐주기’ 판결 의혹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도 ‘회장님 구하기 7대 비책’이란 패널을 만들어 법조계의 ‘유전무죄’ 판결 관행에 대책을 요구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사법당국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해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작년 10월 설립 ‘해비치재단’ 공익사업 전무
현대차측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 반응


박 의원은 국감에서 비리를 저지른 경제인들이 죄를 짓고도 어떻게 감옥에 가지 않는지를 조목조목 따졌다. 박 의원이 제시한 비책은 ▶끌면서 무마시켜라 ▶불구속 수사를 요구하라 ▶영장을 기각시켜라 ▶집행유예를 받아라 ▶법정구속만은 피하라 ▶구속집행정지 또는 형집행정지를 노려라 ▶사면은 필수 등 7가지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의원들의 잇따른 비판에 대해 “법이 재력 여부를 떠나 엄정하게 적용돼야 한다는데 동의한다”고 답했으나, 지난 8·15 사면을 결정한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면 정보 입수해 봉사명령 회피?

정 회장은 또 재판부로부터 3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8월 2일 이후로 ‘회장님의 봉사활동’은 이어지지 않았다.

주 의원은 이를 두고 정 회장이 8·15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을 미리 알아서 봉사활동명령을 회피했다고 의심한다.

주 의원은 국감에서 “정 회장이 지난 6월부터 일정하게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다 8월 2일을 마지막으로 갑자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이는 (자기가) 사면될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알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여타의 재벌 회장들은 꾸준히 이를 이행해 정해진 시간을 마쳤는데, 정 회장만은 그렇지 않아 사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있다는 비판이다.

주 의원은 “정 회장이 약속과 달리 아직 600억원밖에 출연하지 않았고 사면 조치 이후 어떠한 사회공헌 활동도 없었다”며 “이런 기업인을 ‘경제 살리기’라는 명목을 내세워 자유롭게 해준 것은 국민의 법 감정에 맞지 않는다”고 사법부를 질타했다.

주 의원은 또 사회지도층에게 선고하는 법원의 사회봉사명령이 10년간 6건에 불과하다며 일반 국민들과의 양형(量刑)에 편차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 의원이 공개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1997년 사회봉사명령이 시작된 이후 지난 6월까지 선고한 33만건의 명령 가운데 경제인은 6명에 불과했고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한명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베일에 싸인 ‘해비치재단’

현대차 측은 정 회장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반응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의 사회환원 약속은 당시 재판부가 양형을 판단하는 여러 요건 가운데 하나로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사회봉사활동도 집행유예 기간 안에 하면 되는 것이지 1년 내로 마치라는 명령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세간의 주장을 반박했다.

현대차가 설립한 해비치재단에도 석연찮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 회장이 사회환원을 공표한지 2년이 지났고, 지난해 10월 설립했다는 해비치재단에서 공익사업을 벌인 것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해비치재단에는 현재 사회공헌 업무를 담당하던 그룹 계열사 직원 5~6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재단의 업무 성과나 향후 공익사업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발표된 것이 없어 일각에서 정 회장의 사회환원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의 사재 900억원을 넘겨받은 해비치재단이 설립 1년이 지나도록 사업을 집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금 규모가 워낙 큰데다 지원을 원하는 단체들도 많아 현재 접수를 받으면서 기금운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잡고 있다”면서 “삼성그룹도 마찬가지겠지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기금을 적기적소에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지켜봐 달라”고 이해를 구했다.

현대차 측은 이어 “7년에 걸쳐 84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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