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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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네~’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8.05.23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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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돌파 카드 ‘소통 프로젝트’ 허와실 집중분석

취임 88일 만에 전격 사과…이명박 정권 ‘정전 사태’

위기에 처한 이 대통령, 안정적 정국 운영 위해 국민과 소통 이벤트
정치권ㆍ국민 다수, ‘진정성 느껴지지 않는 울며 겨자먹기식 사과’ 냉소
책임자 문책ㆍ인적쇄신 등 ‘구체적 해결방안’ 없다…마이웨이 고집할 듯
사과 속 ‘삽부터 뜨고 보자’ 오기 발동? 소통 위해 KBS 장악 음모론 꿈틀

이명박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싸늘해지고 있다. /뉴시스
[매일일보닷컴] 청와대 내 한 참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접촉에서 “대통령이 ‘얼리 버드’를 강조하면서 세세한 것까지 다 챙기다가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청와대 내부의 이 같은 ‘경고’를 듣고도 공연한 소리라고 이 대통령은 줄곧 판단했던 것일까?

아무튼 경고는 현실로 다가왔다. 취임 3개월을 맞아 ‘지지율 20%’라는 실로 충격적이고 처절한 성적표를 받아 쥔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지난 22일 성난 여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대통령은 서울 시장 시절부터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보여주면서 ‘여론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던 인물. 대통령 당선 뒤에도 쇠고기 재수입과 대운하 등 논란이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해 ‘빠른 결단’ ‘빠른 추진력’을 자랑(?)하면서 국민여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런 이 대통령도 22일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취임 100일도 안 돼 국민에게 머리를 네 차례 숙였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과 쇠고기 재수입 파동 등 임기 초반 이명박 정부의 ‘무능하고’ ‘비전 없는’ 국정 운영을 보면서 아찔하고 혼란스러웠던 국민에게 한마디로 “잘못했다”고 반성한 셈이다.

물론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담화 내용이었다. 야권 역시 ‘담화 내용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의심스럽다’ ‘대통령이 아직도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직 피부로 느낄 만한 것은 없지만,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달라졌다’는데 정치권 내에서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회동에 배석한 차영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자세가 쇠고기를 통해 달라졌다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정치권은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절반의 반성’ 속에서,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현 정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쇠고기 파동은 무엇보다 청와대가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데서 출발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청와대는 줄곧 광우병 논란을 ‘광우병 괴담’ 수준으로 평가절하하면서 홍보에만 ‘올인’하는 전략을 보여 왔던 게 사실.

그러나 ‘자성론(自省論)’을 펼치는 등 이명박 대통령의 달라진 행보는 이달 중순부터 감지돼되고 있다.

지난 14일 국민권익위원회 업무보고에선 “정부와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고, 앞서 13일 국무회의에서도 “(국민과) 소통문제에 있어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일부 참모와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역시 국민과의 소통부족을 인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은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 속으로 직접 파고 들어가 대화를 시도하겠다던 대선 전 ‘약속’을 실천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결국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와의 만남은 ‘민심에 가장 가까운’ 야당과의 진솔한 대화가 국민 소통의 첩경이라는 청와대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요구했었다. 손 대표는 지난 20일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에게 사과할 시점”이라고 언급했고, 대통령은 정확히 이틀 뒤 “모든 게 제 탓”이라고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대통령은 이런 변화된 인식을 바탕으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 야당 지도부와도 계속 만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을 비롯해 국민과 진짜 ‘소통’ 시작하나?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정국 돌파 프로젝트는 바로 ‘소통’인 셈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위기에 처한 이명박 대통령이 정국 운영 페이스를 잃지 않기 위해 꺼내들 정국 돌파 카드는 국민과의 소통으로 보이고 이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재로선 집권 초기부터 위기에 몰려 그야말로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을 원상회복시키기 위한 특별한 카드는 없어 보인다. 국정지지도가 20%대라는 뜻은, 자칫 현 정부가 앞으로 더 큰 ‘민심이반’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겠다”고 밝힌, 그러니까 외견상 ‘밑그림’까지만 ‘괜찮다’는 대목이다. 본론으로 들어갈수록 이 대통령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성난 민심에 결국 ‘사과’했지만, 야권을 비롯한 정치권은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울며 겨자먹기식 사과 표명’이라고 힐난하고 있다. 자발적 사과도 아니었을 뿐더러, 한 차례의 사과를 통해 청와대가 짊어지고 있는 모든 ‘잡음’을 한꺼번에 털어내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모든 게 제 탓’이라고만 했을 뿐, 책임자 문책이나 인적쇄신 등 ‘구체적 해결방안’은 꺼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 내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책성 인사 보다는 인원을 보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영산강 호남운하’ ‘영산강 프로젝트’ ‘영산강 뱃길복원’ 등의 이름으로 교묘히 바뀌면서 깊숙이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국민 상당수가 반대하는 미국산 쇠고기는 고시를 통해 빗장을 열어줄 계획이다.

여권 내 수도권 한 중진의원은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쇠고기 협상 논란으로 사과를 통해 잠시 뒷걸음질 친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기업 CEO 출신답게 무조건 삽부터 뜨고 보자는 오기가 곧 발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현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다시 말해 쇠고기 정국을 FTA 정국으로 바꾸려는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일종의 ‘쇼’일 뿐, 자신이 철저히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해선 ‘일’을 통해 앞으로 국민에게 인정받겠다는 기본 스타일엔 변함이 없다는 시선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소통 부재’의 실체는 국민 분노의 원인이 청와대의 무능과 오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홍보 부족’에 있다는 청와대의 인식과 맞물려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청와대는 정부 출범 초기 ‘개혁’을 외치며 인원 감축이라는 구조조정을 실시했으나, 최근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홍보 기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인원을 증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등 ‘사안의 심각성’을 청와대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안의 심각성’ 청와대가 제대로 읽지 못하네~

▲ 2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FTA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쇠고기 파동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담화문 발표를 외면하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와 여권이 최근 ‘소통 부재’의 원인을 공영방송 KBS로 돌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감사원이 느닷없이 KBS에 대해 ‘특별감사’에 나서기로 하고, 이에 김금수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공영방송인 KBS 정연주 사장 교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을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친구로 잘 알려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것은 KBS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며 노골적으로 KBS 사장 퇴진을 위해 압박을 가하고 있어, 이 대통령이 말하는 ‘소통’이 실은 ‘언론장악’이냐는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부정하겠지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낙관론’도 문제다. 최근 국정 혼선에 대해 새 정부 내 일각에선 훗날 이명박 정부가 인정을 받기 위한 ‘성장통’으로 안일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천 공사에 들어갔을 때 시민들이 거부감을 갖고 반대했지만 지금은 시민들이 적응하고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변모한 것처럼, 한반도 대운하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든 작금의 국민 반발에도 불구, 구체적인 경제발전의 성과로 이어질 경우 이 또한 국민이 언젠가는 이해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과 ‘소통’을 강조했지만 이처럼 뒷구멍에서 호박씨를 까고 있다는 오해를 사고 있는 청와대의 최근 행보는 확실히 민심과는 동떨어져있다는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청와대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않고 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가 언론에 알려지자, 청와대는 여권 지도부를 질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를 두고 청와대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 셈’이라는 냉소를 보내고 있다. 민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청와대의 이 같은 헛발질에 ‘이골이 났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연일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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