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규제의 역설’ 현금부자 입지 커진 청약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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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규제의 역설’ 현금부자 입지 커진 청약시장
  • 최은서 기자
  • 승인 2019.04.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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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최은서 기자] 정부가 청약제도를 실수요자인 무주택자 중심으로 개선했지만,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을 보고 있으면 현금부자들의 청약기회만 넓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빚 없이 가지고 있는 자산만으로 집을 사야 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은 높은 분양가와 강도 높은 대출규제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을 포기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작년 시세가 급등했던 서울에서는 분양가도 오르고 있어 강남은 물론 청량리 등 강북의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분양가도 9억원을 넘어서 그야말로 ‘억소리’가 나온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대출 보증 기준인 9억원을 넘어서는 단지의 분양은 중도금 대출길도 막혀 현금을 동원할 수 있어야 청약이 가능하다.

이에 대출금을 조달할 수 없는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며 ‘불패’로 통했던 서울 아파트 청약시장은 금이 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청약을 넣었다 당첨이 되고도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마련하지 못해 향후 청약기회까지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 분양시장은 강남북을 불문하고 9억원을 넘는 단지가 잇따르면서 현금 보유력이 없다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시장이 된 것이다.

이처럼 실수요자들에겐 분양가가 대폭 오른 서울 아파트 청약시장이 ‘그림의 떡’이 되고 있지만 현금부자와 다주택자들의 청약기회는 되려 넓어졌다. 실수요자가 포기한 분양 미계약자 물량량에 현금부자나 다주택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줍줍(줍고 또 주워담는다는 은어)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미계약 물량이 다수 발생하는 이상현상이 불거지고 현금부자들만 무순위 청약에 뛰어드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분양시장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정부의 규제가 그 의도와는 달리 현금부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아파트투유를 통해 할 수 있게 된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이나 가점 등이 필요 없고 만 19세 이상의 조건만 갖추면 되는 등 자격 제한이 거의 없다. 실제 두자리, 세자릿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한 서울 시내의 입지가 좋고 교통 호재 등이 있는 인기 단지도 미계약분이 대거 나오면서 무순위 청약이 1순위 청약 열기보다 더 뜨거운 경우도 많다.

예컨대 1순위에서 평균 11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한 ‘홍제역 해링턴플레이스’는 무순위 청약 물량이 일반공급의 41.5%에 달했고 경쟁률도 평균 33대 1을 기록했다. 사실상 무순위 청약제도는 다주택자나 자산가 등의 접근이 쉬워져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셈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분양시장이 청약제도 개편과 대출규제가 맞물리면서 현금부자들의 리그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간과해선 안된다. 착실하게 청약 가점을 쌓으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워 온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발목을 잡아 분양시장 밖으로 내몰지 않도록 정부의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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