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유하리유적···금관가야 대규모 마을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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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유하리유적···금관가야 대규모 마을로 밝혀졌다”
  • 조재원 기자
  • 승인 2019.04.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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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유하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 (사진=김해시)

[매일일보 조재원 기자] 김해시가 오는 11일 오후 2시, 유하동 198번지 일원에서 ‘김해 유하리유적 발굴조사 공개설명회’를 개최한다. 

10일 시에 따르면 이번 ‘유하리유적’ 조사결과, 비교적 좁은 면적(1200㎡)에서 대형 주거지 4동, 지상식건물지(건물 바닥이 지면인 건물) 1동, 고상건물지(건물 바닥이 지면보다 높은 건물) 3동, 수혈(사람이 만든 구덩이) 16기, 패각층 등이 확인돼 유하리유적에 대규모 마을유적이 존재했음이 입증되었다고 밝혔다.

유하리유적은 금관가야의 대표유적인 양동리고분군에 묻힌 가야인의 생활유적지이며, 정부국정과제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의 일환으로 조사가 시작됐다. 유하리유적 내 남쪽의 유하패총은 도기념물 제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사기관은 (재)한화문물연구원(원장 신용민)으로 지난해 12월 13일 정밀발굴조사에 착수, 오는 4월말 완료 예정이다.

시는 올해 2월 27일에 유하동 148-2번지(777㎡)에 대한 조사 성과를 언론에 먼저 공개한 바 있고, 이번 설명회는 추가된 조사된 성과를 공개하는 자리다. 

조사는 유하동 148-2번지(3구역)과 198번지(4구역)에서 실시되었고, 특히 3구역 148-2번지에서는 패각층, 대형 고상건물지 1동, 수혈건물지 1동, 수혈 1기, 구(사람이 만든 도랑) 1기가 조사되었다. 수혈건물지는 패각층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198번지 4구역은 산사면의 경사를 이용해 지상식주거지 4동·고상건물지 2동, 수혈 15기 등 생활유적이 상하층으로 분포하고 있다. 

조사된 대형 주거지는 화재로 전소되었지만, 가운데에 4주 이상의 주혈(나무기둥 자리)과 벽주(흙벽을 고정시켜주는 나무기둥)가 잘 남아있고, 북서쪽에 치우쳐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아궁이의 위치는 ‘조왕신을 차려놓은 것이 모두 입구의 서쪽에 있었다’는 삼국지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의 기록과 부합된다.

특히 148-2번지 구역은 남해와 망덕리집단 등 다른 지역을 조망하기 좋은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 제사유적이나 방어시설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이번 공개설명회에 앞서 지난 5일 2차 학술자문회의를 개최했고 자문위원들은 “이곳이 금관가야 중심지인 봉황동마을과 견줄만한 마을유적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향후 국가지정문화재 추진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보호와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김해시 관계자는 “자문위원의 의견대로 유하리유적에 대한 종비정비계획이 수립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먼저 학술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마을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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