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너도나도 ‘금융왕국’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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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그룹, 너도나도 ‘금융왕국’ 꿈꿔
  • 권민경 기자
  • 승인 2008.01.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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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통법 앞두고 증권사·자산운용사 인수 급물살

제조·유통·건설 등 성장한계…기업들 ‘금융’을 신 성장 축으로

[매일일보닷컴] 재벌그룹들이 금융업 진출을 성장의 돌파구로 삼고 있다. 특히 내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시행을 앞두고 증권업계에서 재벌들의 인수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재계 2위의 현대자동차그룹이 신흥증권을 인수한 데 이어 두산, 대우캐피탈, 롯데 등도 인수할만한 증권사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롯데는 보험업까지 영역을 넓혀 대한화재를 인수하고 최근에는 코스모투자문사 인수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식음료기업인 농심, 한국야쿠르트 등도 각각 농심캐피탈과 플러스자산운용사를 계열사로 편입하며 금융업 진출에 나섰다.

재벌그룹들이 이처럼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업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내년 2월 자통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가 부여돼, 금산분리 원칙으로 막혀있는 은행업에 간접 진출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증권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재벌들의 경쟁적인 금융업 진출이 자칫 핵심 역량에 집중하지 않고 문어발식 경영 행태를 보이던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더욱이 금융 충격이 올 경우 해당 그룹은 물론 국민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재벌그룹들이 금융업 진출을 성장의 돌파구로 삼고 있다. 특히 내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시행을 앞두고 증권업계에서 재벌들의 인수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1일 신흥증권 지승룡 대표와 특수관계인 4명이 보유한 신흥증권 지분 29.76%를 인수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정확한 인수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현재 시가총액 등을 감안할 때 1500억원~1800억원 내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과 연계해 금융부문을 대폭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금산분리 완화에 대비한 종합금융그룹의 면모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현대차그룹이 대형 증권사 인수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흘러나온 바 있다. 당초 신규 증권사를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던 현대차이지만 기회비용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기존의 증권사를 인수해 대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신흥증권 인수, 업계 전망 분분

증권가에서는 이번 현대차의 신흥증권 인수 영향에 대해 다소 엇갈린 시각을 보내고 있다.

삼성증권은 “기아차 등 그룹 핵심사업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 연관성이 떨어지는 증권업에 진출한 것은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신흥증권이 장기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자동차 사업을 기반으로 한 일본 도요타가 금융부문을 강화해 그룹 총 부가가치를 늘린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한화증권은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생산, 판매, 금융 3가지 중 금융 부문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금융은 글로벌 자동차 생산업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차가 인수한 신흥증권의 규모가 작아 인수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대우증권은 “현대차가 영업권 프리미엄을 크게 가산한다고 해도 인수대금은 20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기대돼 그룹 차원의 인수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인수가 증권사 신규설립이나 대형증권사 인수 등에 따른 투자부담 등을 해소하는 한편 향후 본격적인 사업 확대 등을 위해 추가자금 투입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롯데, 두산 등 대기업 증권사 인수 움직임 관심

사실 재벌들의 금융업 진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늘 ‘돈이 되는’ 사업을 찾아다니는 기업의 속성 상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꼽히는 증권, 자산운용 등의 금융업에 눈독을 들여온 지 오래다. 특히 증권사의 경우, 자통법의 시행으로 현재 증권· 자산운용· 투자자문으로 나눠져 있는 증권 업무를 금융투자회사로 통합할 수 있게 됐고 지급결제 업무까지 허용되면서 사실상 증권사가 은행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게 돼 기업 입장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신수종 사업인 것이다.

이미 지난해 6월 건설이 주력인 유진그룹은 서울증권을 인수해 유진투자증권으로 간판을 바꿨고, 지난 5일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캐피탈 역시 위탁매매 중개사인 BNG 증권 중개를 인수해 증권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여기에 현대차의 신흥증권 인수를 계기로 금융업 진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여타 그룹들도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인수전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높다.

롯데그룹의 경우 금융부문을 그룹 신 사업으로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에 특히 주목받고 있다. 롯데 신동빈 부회장은 그룹 입사 전 일본 노무라 증권에서 일했던 ‘금융맨’ 출신으로 금융업에 대한 안목과 의지가 남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제조, 유통업이 성장 한계에 달한만큼 롯데가 금융부문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보내고 있다.

실제로 롯데는 지난해 대한화재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 자산운용사 인수에도 나서고 있는 상황. 신 부회장은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증권사 진출에 대한 욕심도 밝혀왔기 때문에 올해 증권사 M&A 회오리 속에서 롯데의 움직임 또한 빨라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농심, 한국야쿠르트 등 자산운용사 설립 바람

롯데와 형제 기업인 농심도 라면, 스낵 등의 식품사업 외에 금융을 제2 성장 동력으로 삼고 신동익 부회장 주도 아래 금융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자본금 200억원 규모의 농심캐피탈을 설립한 농심은 당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자금 운용의 활용도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농심캐피탈은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대한 투자 및 인수등의 기업구조조정회사 시장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농심이 캐피탈사를 기반으로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를 인수 또는 설립하는 등의 추가적인 금융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중견기업인 한국야쿠르트는 지난 2006년 12월 일찌감치 업계 중위권 자산운용사인 플러스자산운용사를 인수해 금융업 진출에 나섰다. 야쿠르트 측은 “업종 특성상, 현금 유동성이 풍부해 자산운용사를 통한 자금운용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회사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산운용사를 육성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LS전선은 그룹이 보유한 현금 자산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지난해 3월 대형 투자자문사인 델타투자자문을 인수, 계열사에 편입했다. 보광그룹은 계열사인 한국문화진흥을 통해 피닉스자산운용 지분 16%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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