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질’ 산업은행 제 기능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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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질’ 산업은행 제 기능 되찾을까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01.04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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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정부, 산은 분리매각 추진…IB부문 대우증권과 묶어 민영화, 정책금융은 ‘그대로’

 李 당선자 “산은 매각해 중소기업 지원할 것”
산은 김창록 총재 “정책금융-IB 분리 이르다”

산업은행의 민영화 논란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국책은행을 민영화하고, 그로인해 얻어진 자금을 중소기업에 지원하겠다고 말해왔다. 지난달 19일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이 당선자측은 산업은행에서 투자은행(IB) 업무를 자회사인 대우증권으로 넘겨 분리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지지부진했던 산은의 ‘민영화 급물살 태우기’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 김창록 산은 총재를 비롯한 일부 금융권 관계자들은 산은 민영화 방안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밝히고 나서 민영화 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갖고 있는 공기업에 대한 인식은 한마디로 ‘부정적’이다. 효율성은 떨어지면서도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면서 방만운영되고 있다는 게 이 당선자의 생각이다. 실제로 이 당선자는 공약에서 “공기업의 이윤은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부채와 임직원 수 등은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하며 “민간과 경쟁관계에 있거나 설립목적을 상실한 공기업부터 단계적으로 민영화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 당선자는 지난 11월 13일 중소기업 대상의 한 강연회에서 “임기 중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민영화를 통해 20조~30조원 기금을 마련,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며 산은의 민영화 의사를 드러냈다. 이날 발언은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것이었지만, 금융 산업의 대대적 개편으로 이어질 ‘산업은행 민영화’ 자체가 더 주목 받았다. 이 후보측 구상은 임기 초반에 기업 인수·합병, 회사채 인수 등을 담당하는 산업은행의 IB부문을 민간에 매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업은행을 둘로 나눈다는 것이다.

즉, 산업은행을 통째로 민영화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개발을 위한 장기자금조달 등 정책금융만을 담당하는 ‘작아진 국책 산업은행’과 민간에 매각돼 새로 만들어지는 ‘민영 투자은행’으로 분리시킨다는 뜻이다.

이 당선자가 직접 언급한 만큼 어느 방향이 되던 산업은행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책은행들의 정책금융기능 또한 거의 사라져 사실상 민간은행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상황이기에 이 당선자의 개혁의지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업계 전반적인 목소리다.

“산은 IB분리 매각, 시기상조”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하고 있는 산업은행.
산업은행과 자회사인 대우증권의 IB업무 중복 및 매각필요성에 대한 지적은 지난해 내내 금융권에서 계속돼 왔다. 이에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9월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을 마련, 2009년 이후 산업은행의 IB기능을 대우증권에 단계적으로 넘기되, 대우증권 매각여부는 오는 2013~2014년께 보자며 결론을 미뤄둔 상태다.

하지만 새 정부에서는 대우증권의 매각 조건과 시기가 정해지고, 현재 2009년 이후로만 정해져 있던 IB업무의 이관 시기 또한 앞당겨 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핵심 측근은 “차기 정부에서 산업은행의 IB부문을 대우증권과 묶어 민영화하고, 나머지 정책금융 부문을 유지해 국책은행으로 남기는 방안이 인수위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들은 산업은행을 지나치게 빨리 민영화 할 경우,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은행 김창록 총재 역시 최근 우회적이지만 이명박 당선자의 핵심 측근에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민영화 논리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김 총재는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직 당선자측의 의도나 계획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산업은행의 정책금융과 IB부문을 지금 당장 분리, 민영화하는 건 옳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지고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김 총재는 “우리나라 IB 업무수준은 글로벌 수준에 비교하면 이제 겨우 갓난아기 상태”라며 “민영화 후에도 생존 가능한 조직이 돼야만 민영화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대대적인 민영화 방안에 대해 거리감을 표시했다.

김 총재는 이어 “산업은행은 정부 자산이고, 산업은행 주식을 그대로 보유해 배당을 받을지 민영화해 현금화할지는 정부가 판단할 일이지만 산업은행은 매년 수천억원을 정부에 현금배당하는 우수한 자산”이라고 강조, 정부가 산은을 기존 그대로 보유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

산은매각, 금산분리 신호탄 되나

만약 새 정부가 예고한대로 산은에서 IB 부문을 떼어내 대우증권과 합쳐 시장에 내놓는다면 국민, 신한, 하나은행 등 국내 유수의 금융그룹이 대거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산은 IB 부문의 프로젝트파이낸싱, M&A 주선, 파생상품 등은 국내 최고 수준이며 보유 인력도 최강이기 때문이다. 국내 1위 증권사인 대우증권 역시 최고 수준의 인력과 자본, 리서치 능력 등을 갖추고 있어 ‘산은IB+대우증권’이 매물로 나올 경우 매각대금이 크게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이 당선자측의 산은 민영화 방안가운데 주목할 만한 대목은 ‘산은IB+대우증권’ 매각시, 인수대상에 중소기업 컨소시엄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써 ‘금산분리의 신호탄’이 되는 셈이다.

대우증권 인수에서 중소기업 컨소시엄참여가 성사되면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의 정부지분 매각 시에도 대기업을 포함한 산업자본이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게 된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달 26일 정례브리핑에서 “먼저 제2금융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이후 은행권에도 적용할 것”이라며 “처음에는 은행이 컨소시엄을 통해서 인수하고 추후에는 단독으로도 가능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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