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회, 언제까지 사(死)후 입법?
상태바
[기자수첩] 국회, 언제까지 사(死)후 입법?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9.01.06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최근 한 병원에서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진료 중이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고 말았다. 환자는 진료실 안에서 의사에 위협을 가했고, 몸을 피한 의사를 병동 복도까지 따라와 결국 살해했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 중 62.6%가 폭행을 경험했다고 한다. 의료인 폭행을 방지하는 법안은 의료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다. 이에 의료인 폭행 시 처벌을 강화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사건과 같이 진료실에서 벌어진 사건은 응급의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또 국회에 계류 중인 여러 법안도 대부분 사후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어,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예방책이 부족하다. 현재 보안요원 배치 의무 등의 대책은 응급실의 경우에만 제공된다.

이번 사건에도 국회의 고질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행태가 그대로 반영됐다. 멀리 돌아보지 않아도 국회에서는 희생자의 이름을 딴 법안을 수 차례 마련해왔다. 지난해에는 음주운전의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 안전사고 발생 시 업체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김용균법’이 국회에서 처리됐다. 이제는 의료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임세원법’도 법안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국민 누군가의 목숨이 희생돼야 입법이 추진되는 ‘뒷북 입법’이란 점이다. 김용균법의 골자인 산업안전보건법도 이미 수년전부터 해당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우려했던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여론이 악화되자 법을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당 차원의 TF를 꾸렸고, 야당에서도 긴급 정책간담회를 여는 등 관련 입법 마련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국회도 오는 9일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를 열어 임세원 교수 사건과 관련한 현안 보고를 받는다. 물론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국민의 희생 후에야 정치권이 움직이는 ‘사(死)후 입법’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누군가가의 희생 후에야 법이 바뀌는 것일까. 12월 임시국회 때 본회의를 앞두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김용균법’ 논의 결과를 기다리던 때였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는 회의장 앞에 대기하던 기자들과 함께 마치 망부석처럼 그 앞을 지켰다. 우여곡절 끝에 법안이 통과되자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오히려 의원들에 ‘고맙다’며 울먹였다. 자신의 아들은 잃었지만, 다른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구할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국회의장도 반성문을 내놨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윤창호법, 김용균법을 통과시켰는데 국민의 죽음·국민의 희생이 있고, 그리고 나서야 만들어진 법이라는 점에서 국회의장으로서 매우 부끄럽다”고 말한 바 있다. 문 의장이 지적했던 바와 같이 국회가 이제는 한발 늦은 뒷북이 아니라 ‘선제적인 입법’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