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죽음으로라도 제 진심을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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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죽음으로라도 제 진심을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
  • 박숙현 기자
  • 승인 2019.01.0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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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한다는 정권에서 같은 일 반복...글 읽는 당신이 바꿔달라”
청와대 정부 개입 의혹을 주장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3일 잠적한 지 반나절만에 발견됐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 캡처

[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3일 오전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 반나절 만에 발견됐다.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다. 신 전 사무관은 유서에 "죽음으로라도 제 진심을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기재부가 그를 검찰에 고발한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잠적 전 유서 통해 심경 토로

이날 오전 신 전 사무관 출신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의 아이디로 '마지막 글입니다'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신 전 사무관의 유서로 추정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서는 "아버지 어머니 정말 사랑하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전 잘한 것 같아요"라는 말로 시작했다. 신 전 사무관은 이어 "제가 죽어서 조금 더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며 그가 생각하는 조금 더 좋은 나라의 두 가지 특징을 적었다. "내부 고발을 인정해주고 당연시 여기는 문화"와 "비상식적인 정책결정을 하지 않고 정책결정과정을 국민들에게 최대한 공개하는 문화"다.

신 전 사무관은 자신이 죽으려는 이유에 대해 "죽음으로라도 제 진심을 인정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폭로한건 일을 하면서 느꼈던 부채의식 때문이었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자신의 이 같은 마음을 몰라주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언론이나 사람들이)제가 부족하고 틀렸다고 해요"라며 "그래도 (촛불로 태어난) 이번 정부라면 최소한 내부고발로 제 목소리 들어주시려 해야 하는것 아닌가요. 전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재발방지 이야기 해주실줄 알았어요"라고 했다. 

신 전 사무관은 차라리 과거 보수정권 시절이라면 여론이 자신의 폭로를 반겼을 것이란 뼈있는 말도 던졌다. 그는 "저는 지금 박근혜·이명박 정부였다 하더라도 당연히 똑같이 행동했을거라 생각합니다"라며 "차라리 그때 이렇게 행동했으면 민변에서도 도와주시고 여론도 좋았을 텐데...민변의 모든 변호사가 민변인걸 공개하고는변호를 맡지 않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삼스럽게 실망했어요. 담당해주신다는 분도 민변인거 공개하지 않고 형사사건 한정으로만 수임해 주신다고 하네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저는 재수가 없네요"라고 했다.

▮기재부 사직 후 여러 차례 자살 시도

신 전 사무관은 이날 오전 극단적 선택을 암시했다는 지인의 신고로 경찰이 소재 파악에 나선 끝에 오후 서울 관악구 한 모텔에서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건강상태는 양호하며, 일단 안정을 취하게 하려고 병원으로 후송했다"고 했다.

신 전 사무관은 기재부를 사직한 이후 우울증에 빠져 그동안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서에서 "목매죽는것도 너무 어렵네요. 10초면 의식을 잃는다고 하는데 벌써 집에서 몇번을 실패하고 왔는건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유서를 쓰기 직전에도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오전 9시 57분...들어왔을때가 새벽 3시정도였는데 아까 새벽에 죽기직전까지 갔다 실패했을때 자국이 남은 목이 아직 아프다. 그래도 자국도 금방 없어진다. 목을 매어봤을때 기절까지 크게 아프지도 않더라"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신 전 사무관의 소재가 파악되기 전 기자들과 만나 "그 자체가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이어 청와대의 KT&G 사장 교체 시도, 적자국채 발행 압력 등 신 전 사무관의 주장에 대해서는 "관련 설명을 오늘 하고자 했으나 이런 보도가 나온 상황에서는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 같다"며 "기재부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다음 기회에 말하겠다"고 했다.

▮"글 읽는 당신이 정부 바꿔달라"

한편 신 전 사무관의 자살 소동으로 신 전 사무관이 최근 자신의 유튜브와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이 재조명됐다. 기재부를 사직한 이유를 적은 글이다. 스타강사로 성공하기 위해 폭로에 나섰다는 비난을 반박하기 위한 글로 보인다.

총 4편으로 구성된 글에서 신 전 사무관은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 아워' 책에 나와 있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내가 견디지 못한 공무원 조직의 모습이 싫어 나왔다"고 했다. 그는 "내가 경험하기로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 사회는 딱히 바뀌지 않았다"며 기재부가 청와대의 KT&G 사장 교체 지시를 받아 기업은행을 통해 이를 시행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보면서 ​"적폐를 청산한다는 정권에서 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특히 그는 관련 문건을 언론에 제보한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내려와서 해당 과를 조사하고 갔다고 들었다"며 죄책감을 덜기 위해 기재부를 나왔다고 했다. 기재부를 사직한 첫 번째 이유다.

신 전 사무관은 사직의 두 번째 이유로, 지난 2017년 11월 기재부가 청와대와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의 압력으로 국채조기상환(바이백) 결정을 하루 전에 취소한 일을 언급했다. 또 4조원의 적자 국채 추가 발행을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한 이후에도 청와대가 기재부 국장 등에게 추가 발행 취소의 이유를 소명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정책의 합리성 여부를 떠나서 대통령에게 보고된 사안이라 하면서 이건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식의 청와대 조직은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인가"라며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런 업무 처리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청와대 중심의 정책 추진, 행정부의 업무지시 및 보고체계의 미흡함을 지적하며 “"더 늦기 전에 정권이 아닌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이 글은 전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올라왔다. 3일 오후 현재 3000명 가까운 이들의 동의를 얻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외에도 신 전 사무관이 적자 국채 4조원 발행 압력을 행사했다고 언급한 차영환 현 국무조정실 2차장을 두고 '즉시 구속하라'거나 '신 전 사무관이 진정한 촛불'이라며 현 정부를 비판하는 게시글 등도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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