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뒷짐진 盧…무슨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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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판 뒷짐진 盧…무슨 까닭?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7.12.14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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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이명박 후보 강도 높게 비판하며 물의 일으키더니, 대선 앞두고 민감한 시기에 침묵 지키는 이유, 알고 보면 ‘그럼 그렇지~’

#“경제정책은 차별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실물경제를 좀 안다고 경제를 잘한다거나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를 잘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에 경제를 살린 대통령은 영화배우 출신도 있다.”(1월 25일 신년 기자회견)

#“대운하도 ‘민자’로 한다고 하는데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를 하겠느냐. (균형발전 사업) 공사가 시작됐을 때 혹시 노임과 자재 파동이 있을까 우려해 건교부가 대책을 잘 세우고 있는데 여기다가 대운하 사업까지 같이 엎어 놓으면 틀림없이 자재파동이 난다”(6월2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참여정부평가포럼 특강)

#“종부세로 인해 지방이 엄청나게 혜택을 받고 있는네 이 정책을 폐기하는 사람도 있고 지방세로 바꿔버리겠다는 사람도 있다. 모르죠. 언론도 모르고 국민도 모르고 그냥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근래 정부에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지적하니까 다시 정책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9월12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열린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해)

이처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통해 2007 대선에 직ㆍ간접적으로 간여, 끊임없는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발언의 횟수를 줄이기 시작하더니 12월엔 그야말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 지난 12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참여정부 경제정책 평가 및 과제'란 주제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국정홍보처 제공
정치권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간 ‘입’과 ‘행동’을 통해 정권 재창출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던 만큼 마지막까지 대선판에 끼어들 것으로 내다봤던 게 사실이다.

노 대통령 자신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킬 대안으로 ‘이해찬’과 ‘유시민’을 대선후보로 점찍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이를 위해 지난 5월부터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는 설이 흘러나올 만큼 그는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주지 않기 위해 발로 뛰는 행보를 보였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통령에게 중립의 의무를 부여한 나라는 후진국 밖에 없다. 전 세계 선진민주주의 어느 나라도 대통령에게 선거든 정치든 중립의무를 부여한 나라는 아무도 없다”면서 노무현 ‘개인’의 이름으로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파격 행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헌법소원의 심의절차가 길게는 6개월까지 이어질 수 있는 까닭에 최소한 12월 대선정국까지, 또 그 결과와는 관계없이, 노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난 11월 초반까지만 해도 노 대통령의 일거일동이 대선 레이스 막판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소용돌이 치는’ 12월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청와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언론의 표현을 빌려 노 대통령의 의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거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의중이다.

이는 역으로 노 대통령이 대선과는 이제 거리를 두고 임기 마무리를 위한 ‘조용한 국면’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은 대선을 전후로 노 대통령이 뒤를 돌아보고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이 같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데는 대통령 자신의 의지도 있지만, 측근들의 조언이 합쳐진 결과물이라는 게 여의도 정가의 전언이다.

盧 예견된 침묵, ‘보수 정부’ 등장 가능성 예견했기 때문?

노 대통령의 조용한 행보는 지난 11월 말께 이미 예견됐었다. 그는 11월 24일 해인사 대비로전 낙성 대법회에 참석, “지난 5년 임기 동안 시끄럽고 힘들었던 기억밖에 별로 안 남아 있는 것 같다”면서 “몇 가지 일들이 남았지만 대부분 이루고 간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언급, 새로운 형태의 정부가 들어설 것을 암시했고, 같은 달 30일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선 “부끄럽지 않게 제 임기를 마감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은 여러분들의 성공이다. 감사하다”고 밝히는 등 정치적 발언을 자제했다.

그러더니 지난 7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을 비롯한 전군 주요지휘관들과 오찬을 마련해 그동안 국방부가 추진해온 국방개혁 노력을 치하하면서 급기야 “오늘은 그냥 작별인사나 하려고 한다. 미리 제대 말년 앞두고 인사하자는 것”이라며 “저 제대합니다”라고 미리 ‘전역신고’까지 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행동은 그가 ‘보수 정부’의 등장 가능성을 미리 예견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다시 말해 과거와 사뭇 다른 노 대통령의 최근 일련의 행동은 현 대선구도가 그의 ‘바람’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다.

일단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사실상 ‘넘어야 할 산’은 다 넘은 상황에서 ‘경천동지’할만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첫 번째 이유로 보인다. 지난 14일 발표된 각 언론사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44.3%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선두를 달리는 등 사실상 당선 가능성 ‘1위’를 유지했다.

여태껏 소원한 관계였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관계 복원을 위한 ‘시동’을 건 상태지만 ‘화해의 악수’를 하기에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을 만큼’ 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도 노 대통령이 조용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두 번째 이유다.

이명박 당선 가능성은 높고, 정동영은 반대로 희박하고…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 속에서 정 후보의 ‘게걸음’ 지지율이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사실상 ‘자포자기’하게 만든 것 같다”면서 “대통령이 퇴임 이후를 그리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현역 대통령 시절의 ‘힘’과 퇴임을 준비하는 대통령의 ‘힘’을 비교하는 것이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청와대의 ‘새 주인’이 곧 들어서게 될 마당에 이래저래 ‘제대 말년’ 노 대통령의 마음은 서해 앞바다만큼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공정선거 시비’와 관련해 선관위로부터 받은 ‘주의’와 ‘경고’는 노무현 대통령의 입을 봉쇄하는 또 다른 이유인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성과를 마무리 해 당선자에게 넘길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측근들에게 지시한 상태다.

결국 여러 정황상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노 대통령이 ‘정치와 결별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노무현-이명박 빅딜설’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빅딜설은 그야말로 ‘설’이지만 내용인 즉 “선거에서 중립만 지키면 퇴임 이후를 보장한다”는 것. 이명박 후보가 노무현 퇴임 이후 보장을 제안했다는 게 범여권과 이회창 후보 측의 주장이었다.

이회창 후보 류근찬 선대위 공동대변인은 이와 관련 지난 10일 논평을 통해 “조그만 사안에서도 훈수를 들어 오해를 샀던 노 대통령이 BBK 수사결과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처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더욱이 종전까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해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노 대통령이었기에 그 의심의 농도는 더욱 짙어진다”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이 같은 의혹에도 불구, 노무현 대통령의 기류가 180도 바뀐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대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퇴임 뒤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의중이 확실해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노무현 “퇴임 후 정치 그만둘 것, 자유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노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정치에서 은퇴할 것이라는 구상을 간접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지난 8일 방영된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대통령을 그만두는 것은 정치도 그만둔다는 얘기다. 내 희망으로는 자유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옛날에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희망했던 것이 자유인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권이 지금까지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활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관측한 것과는 상반된 발언이다.

그러나 정치권 한 켠에서는 노 대통령이 밝힌 ‘자유인’이 차기 정부에서 지속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반응이다. 참여정부는 지난 10년간 민주화 정착과 남북화해를 큰 업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차기 당선자도 이어줄 것을 강조 중이다.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의 정신을 계승한 것처럼, 향후 들어서게 될 차기 정부 또한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쌓아놓은 성과’는 이어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차기 정부가 현 노무현 정부의 성과를 부정하거나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이면서 정통성에 전면적으로 도전할 경우 노 대통령의 침묵은 그 순간부터 멈출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당선 유력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북핵 폐기와 실질적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적 ‘대북 개방정책’ 추진하겠다는 입장인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방’이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남북한 간의 협력의 물꼬가 원활히 트여질까 의문”이라는 게 범여권 및 진보개혁 세력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대선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론’이 벌써부터 모락모락 피어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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