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과연 숙명여고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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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과연 숙명여고뿐일까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8.11.1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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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수능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시험에 집중하느라 수험생 본인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겠지만, 학부모나 후배들은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다른 소식에 씁쓸함을 느낄 듯하다.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이야기다.

12일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들여다볼수록 과연 내신 조작이 숙명여고 일개 학교의 문제일까 하는 의심이 짙어진다. 교과목 성적이 이렇게 조작될 수 있다면 비교과 활동의 조작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당장 교육현장의 부조리와 부딪쳐온 학부모들의 비판이 날카롭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은 “내신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그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숙명여고 사태를 보며 가슴이 아프다. 이게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인가”라는 비판글이 올라와있다. 수시모집에 대한 철저한 불신이 담긴 글이다.

수능의 비중이 갈수록 줄고 동시에 교교 내신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면서 고교 내신에 대한 불신도 함께 커왔다.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는 부모를 가진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간의 유불리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8일 민주평화연구원 행사에서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은 “최상위권 대학의 학종 합격자 분포를 보면 학종이 자율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 출신에게 유리한 전형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이 공개한 서울대 입시 통계자료의 내용은 이른바 흙수저 계급론의 입시버전이다. 서울대 수시 일반 전형에서 자사고와 특목고 출신이 차지하는 합격자 비중의 평균이 62.7%, 반면 수능 전형의 합격자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44.9%로 18%가까이 차이가 난다. 자연적 혹은 우연의 결과로 치부하기엔 차이가 너무 크다. 결국 ‘애초부터 서울대 학종은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됐다’는 게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입시제도의 변질에 대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영어 수능 절대평가제 도입과 관련해 강남의 한 입시학원장은 사석에서 “영어 고득점자들의 변별력이 줄어들다보니 강남 등 부유층 자녀들의 입시부담이 증가한 결과물”라며 “그들의 입시부담을 줄이고 수학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영어 절대평가제를 도입한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입시문제는 단지 교육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 사회와 권력 문제의 핵심을 관통한다. 특정 계층에 교육과 주거 혜택이 몰리면서, 또 국가의 각종 제도가 이를 고착화하면서 부의 대물림은 깨뜨리기 불가능한 철옹성이 돼가고 있다. ‘강남 학군’이니 ‘강남부동산 불패’니 하는 말이 회자되고, 고위공직자 인사 때면 위장전입 논란이 단골메뉴가 됐다. 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이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공평’과 ‘공정’을 입에 달지만, 어느새 그런 말들은 세간의 신뢰를 잃은 클리셰가 돼가고 있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대안도 없는 ‘수저계급론’만 난무한다.

계층 간 이해가 다른 만큼 합의점을 찾기 힘든 난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한쪽의 주장과 다른 한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고 해서 결론을 미루기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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