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권에 ‘작심발언’ 남기고 물러난 김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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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권에 ‘작심발언’ 남기고 물러난 김동연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8.11.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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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신이 사람을 단련시키고 키우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흩트리는 것이라고 한다. 가끔은 안전지대 안에서 잘되는 사람이나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성취가 오랫동안 공고하게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17개월 만에 물러나게 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출간한 ‘있는 자리 흩트리기’의 한 대목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편인 김 부총리는 그간 청와대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 올해 초 “대통령께 직언을 포함해 할 말을 다하고 있다. 지난 7개월 넘게 나름대로 소신껏 일해 왔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던 김 부총리는 이후 고용지표가 악화되자 청와대와의 대립각이 두드러졌다.

물러나더라도 정치권에 할 말은 했다. 김 부총리는 경질이 공식화되기 직전 정치권을 향해 연달아 ‘작심 발언’을 쏟아 부었다. “정치권에는 허황된 담론은 있는데 정책은 없다”, “빨간 안경을 쓰신 분은 빨갛게, 파란 안경을 쓴 분은 파랗게 보인다”, “경제에 좌우는 없다” 등 수위 높은 발언이었다.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권이 힘을 합쳐 속도감 있게 정책을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허황된 프레임 싸움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치권에서 가장 절실하지만 쉽게 줄 수 없는 답을 제시한 것 같다. 국정감사 뿐 아니라 예산안 심사까지 국회 내 파행과 고성이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협치’를 강조하더라도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은 정권의 진영논리에 가로막혔다. 김 부총리가 국감기간 ‘기승전 최저임금’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특이성 없는 질문만 받았다고 지적한 것도 공감이 간다.

교체설이 한창 나도는 상황에서 문제의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 발언을 했을 때, 경제정책 결정과정에 있어 청와대의 판단에 비판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이 충분히 나올 만 했다.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기존 정책을 고수하는 것에 부정여론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발언에 대해 또 다시 프레임논쟁을 지적했다. “경제에 여야가 없는 것인데 그동안 우리가 이념논쟁이나 프레임 논쟁에 빠지면서 정말 해야 할 일에 대해 시간을 놓치는 것 아니냐 하는 차원”이라는 그의 발언은 여야를 대상으로 했지만, 청와대를 포함한 모든 정치권에 날선 발언을 한 것으로 읽힌다. 경제에 정치와 이념논리가 개입되면, 부작용은 막대할 수밖에 없다. ‘경제에는 여야가 없다’는 말은 어쩌면 김 부총리가 17개월 임기를 지내며 가장 절실히 원했던 정치권의 변화가 아니었나 싶다.

김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어머니가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른바 ‘흙수저 성공신화’의 주역이자 30년 넘게 관료로 일해 온 김 부총리는 청와대의 경제정책과 경제논리 사이에서 고심해왔을 것이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기둔화를 공식화하며 정부를 향한 쓴소리를 내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인사교체 의도인 ‘성장엔진 재가동’을 위해선 기존 정책에 대한 고심과 변화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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