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공사업체 위법행위 방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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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이 공사업체 위법행위 방조했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7.11.02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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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故 정해진 조합원 분신 왜...노동부 등 관련기관 '강 건너 불구경(?)'

노조 “임금인상도 필요 없다”…“최소한의 근로기준법만 지켜라”
사측 영진전업 “노조 무서워 일 못해”…“우리가 피해자”

“그 동안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이야기를 전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언론들이 몸에 불을 붙이고 나니 이제서야 눈길을 주더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동조합 한 관계자의 말이다.
건설노조 산하 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노조는 이랜드 노조와 같은 달인 지난 6월 파업에 돌입했으나 이랜드 노조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것과 달리, 전기분과 노조 파업은 일부 언론에서만 단편적으로 다뤄졌다. 그렇게 파업을 지속해오던 지난 달 27일 건설노조 전기분과 한 조합원이 분신, 7시간여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전기분과 노조파업 현장은 파업돌입 130여 일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동계점퍼도 신청해놨는데…”

▲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봇대와 철탑을 20년 간 오르내리며 감전과 추락의 위험 속에 하루 하루를 살았던 전기원 노동자 정해진(48). 그는 지난 달 27일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불을 붙여 분신했고 분신 7시간 여 만에 끝내 사망했다.
한국전력공사 인천사업본부로부터 수주 받아 배전 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는 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노조가 파업을 강행한지 131일 째인 지난 달 27일. 조합원들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인천지역 전기공사 사업체 대표인 영진전업(대표 유해성)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사건은 여기서 터졌다. 애초에 130여명으로 시작했던 조합원의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남아있는 25명의 조합원 중 연장자에 속했던 정해진(48)씨의 분신 사망사건이 발생한 것.

현장에 있던 한 조합원은 “집회 중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정씨가 한 골목에서 신나 2통을 들고 나타나 몸에 뿌린 뒤 불을 붙였다”며 “몸에 불을 붙인 상태에서도 ‘전기원 파업 투쟁은 정당하다’ ‘유해성을 구속하라’를 외쳤다”고 전했다.

정씨와 함께 파업에 동참했던 조합원들은 정씨를 항상 솔선수범하고 밝았던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조합원은 “정씨는 평소 동생들을 잘 챙겨주고 밝은 성격이었지만 잘못된 것이 발견되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호되게 혼내는 바른 사람이었다”며 “조합비에 보탤 10만원을 벌어왔다며 환하게 웃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노조동계점퍼도 신청해놨는데…”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는 슬하에 자녀도 없고 부인과는 이혼해 노부 정모(72)씨와 단둘이 살았다. 한 조합원은 “정씨가 사건 당일 아침 노부와의 통화에서 ‘노조파업상태가 길어진다. 이 사태가 해결되기 위해선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부양할 가족이 적었던 것도 정씨가 분신을 감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노조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이라도…”

▲ 故 정해진 조합원.
이들의 교섭은 지난 2월 28일을 시작으로 5월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나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6월 7일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지만 13개 협력업체 중 2개 업체가 지노위의 조정안을 거부해 조정은 중지됐다. 결국 노조는 88%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결정하고 오랜 싸움을 시작하게 됐고 총파업 중에도 사측 대표인 유해성 대표와 몇 차례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팽팽한 대립뿐이었다.

20여 년 간 전봇대에 몸을 의지하며 배전현장의 최전선에서 일해 온 정씨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노조측의 파업목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임금인상도 아닌 ▲주 44시간 노동 ▲토요 격주 휴무 보장 ▲고용보장 등의 단체교섭 체결뿐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2만2천볼트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봇대와 철탑에서 감전, 추락사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원노동자들이 이정도 수준의 교섭안을 내놓은 이유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 한 노조원은 “우리는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고 단체협약을 요구한 것”이라며 “기술직이지만 경제가 어려운 만큼 일자리가 모자라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일했다”고 밝혔다.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연맹은 지난 달 31일 정씨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직접적인 관리?감독자인 한전이 전기공사업체의 불법하도급 등 위법행위를 묵인?방조해 왔다”며 “이제라도 사용자들의 위법행위에 대해 엄중히 처벌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노사분쟁의 신속한 해결에 나서야할 노동부는 정씨의 분신이후에야 교섭자리를 마련하는 등 늑장대응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며 “노동부의 안일한 대응은 분신사태를 야기 시켰다”고 맹비난했다.

영진전업 “우리가 피해자다” 

▲ 지난 달 31일 故 정해진 조합원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민노총 건설노조 주최‘비정규 건설노동자 정해진 열사 정신계승 및 향후계획 발표’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와 관련 사측대표인 영진전업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남아있는 노조 조합원 25명 중 영진전업 근로자는 한명도 없으며, 단지 사측대표이기 때문에 모든 총대를 매야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

영진전업 한 관계자는 “파업당시 영진전업의 전기 노동자 11명 중 2명이 노조에 가입했는데 그 중 1명은 복직했고, 다른 한명은 회사로 돌아오기 민망하다며 회사와 노조를 아예 떠났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전기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사무실 안에서 우리 업무를 봐야한다. 그런데 노조원들이 밤낮으로 돌, 참치캔 등을 던지고 낫을 들고 위협하는 통에 일을 할 수가 없다”며 “노조가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고 선전포고한 이후로는 밤에도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고 있는 실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영진전업 유해성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유 사장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 동안 불법행위를 계속해왔던 노조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도 자유권이 있고 노조를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어 “영진전업에는 노조 조합원이 없고 나 역시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없는 사람이라며 노조원들이 회사 정문을 막아서면서 회사일도 제대로 안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동부 한 관계자는 “노사교섭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고 분신사건 발생 후 2차례의 교섭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지 확인결과 영진전업 전기노조 파업투쟁 담당 공무원은 해외출장을 떠나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한전 역시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전기원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문제는 직접적으로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해당업체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한전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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