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경영자를 양지로 불러낸 ‘야구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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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경영자를 양지로 불러낸 ‘야구본능’
  • 박동준 기자
  • 승인 2011.08.29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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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위기의 KBO 구원투수로 등판

[매일일보=김경탁·박동준 기자] 장기간 공석이던 한국야구위원회(KBO) 수장에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취임했다. 유영구 전 총재가 명지학원 이사장 시절의 횡령 및 배임혐의로 구속된 뒤 사퇴 의사를 밝힌 지 3개월 만이다.

지난 8월2일 2011년 제6차 KBO 이사회에서 만장일치 지지를 받은 구본능 신임 총재는 총회, 문화체육관광부 보고 등의 총재 선임 절차를 마친 22일 총재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KBO측은 이사회가 구본능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한 이유에 대해 그가 ‘경영 마인드’를 갖춘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프로야구는 관중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지만, 아직도 많은 구단들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본능 회장의 희성그룹 계열사들이 성장해온 과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할 때 ‘경영 마인드’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연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산증인일 뿐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 지난 8월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야구회관에서 열린 제19대 KBO총재 취임식에서 구본능 신임 총재가 취임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재계 숨은 실력집단 희성의 ‘땅 짚고 헤엄치기’ 경영 노하우는 혈연?

 

LG전자·LG디스플레이가 해외법인 설립할수록 매출 덩달아 성장해

‘구씨’라는 성과 '본'자 돌림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형인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동생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 비해 대중에게는 안 알려졌지만 재계에서는 범LG가의 숨은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구본무 회장이 불행하게 외아들을 잃은 데다 추가 득남에 실패한 후 양자(구씨 집안의 종손)로 들인 구광모 LG전자 차장의 친부가 구본능 회장으로, 구광모 차장은 LG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돼 승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간 형제들에 비해 잠행 행보를 지속했던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이번에 KBO 총재직을 수락한 것에 대해 재계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번 총재직 수락을 기점으로 희성그룹이 수면위로 부상할지도 재계의 관심사이다.

범LG가 숨은 실력집단 ‘희성’

범 LG가의 가계도를 나열하다 보면 낯선 이름의 그룹들이 LG가와 명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GS와 LIG, LS 3개 그룹 외에 LG패션 같이 LG를 직접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그룹도 있지만 E1, LB, 범한, 아워홈, 엑사이엔씨, 예스코, 한국SMT, 희성처럼 쉽게 LG가 연상되지 않는 기업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

이들 방계기업들 중에 상당수는 계열분리 이후에도 범LG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희성전자를 비롯한 희성그룹 계열사들은 그 중에서도 기업규모나 수익성 및 사업 외적인 측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군으로 손꼽힌다.

희성그룹은 지난해 매출액이 3조 4355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도 규모지만 희성그룹 구본능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씨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자로 입양됐다는 것이 가장 눈길을 끌고 있다.

원래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슬하에 1남 1녀의 자식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1994년 고등학생이던 아들 구원모가 불의의 사고로 요절 하고 뒤이어 늦둥이로 얻은 자식이 딸(차녀 구연수)이자 지난 2004년 가족회의 끝에 조카 구광모를 양자로 입적하게 된다.

요즘 재계 일각에서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차기 ‘LG그룹의 핵심’이라는 설(說)이 자주 들린다. 물론 구광모 차장을 양자로 보낼 때부터 나온 말이어서 흘려들을 수도 있지만 지분 보유 현황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말도 아니다.

구본능 회장 일가는 현재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의 지분을 9.76%(구광모 차장 지분 포함)나 보유하고 있다. 이는 형인 구본무 회장 직계가족 다음으로 많은 규모이고, 일찍부터 그룹 경영에 참여해 온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일가(8.34%)에 비해서도 많은 것이다.

구본능 회장은 지주회사인 (주)LG 지분 외에도 희성그룹 9개 계열사의 확고한 대주주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희성전자 지분은 42.1%, 희성금속은 28%, 희성화학은 23.4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잠행과 ‘식은 죽 먹기’ 경영

희성그룹은 구본능 회장의 아들을 LG가의 후계자로 입양시키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그룹 자체로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왔다.

그룹의 주요 매출처가 LG관련 기업들이고 그룹 내 계열사 중 단 한곳도 상장사가 없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희성그룹은 희성전자·희성정밀·희성금속·한국잉겔아드·희성화학·삼보지질 등 6개 계열사를 가지고 있고, 구 회장은 실질적 지배회사인 희성전자의 대주주다.

희성전자는 디스플레이 핵심부품인 BLU(Back Light Unit), 램프 및 LED 제조 전문회사다. 희성전자는 이들 부품 및 제품을 생산해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고 있으며 이 중 BLU를 LG디스플레이에 독점공급하면서 확장일로를 걸어왔다.

희성전자는 1999년 LCD용 BLU 사업에 진출한 이후 LG디스플레이의 외형이 성장함에 따라 이에 편승해 손쉽게 외형을 키워나갔다.

지난 2000년 684억원을 기록했던 희성전자의 매출액은 2001년 1245억원, 2002년 2364억원, 2003년 4588억원, 2004년 7004억원, 2005년 9280억원 등 매년 두 배 가까운 성장을 거듭해왔으며 지난해에는 1조 5168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해외법인을 설립할수록 희성전자의 매출액도 동반 성장하는 추이를 보여왔다. 자산규모보다 매출액이 2~3배 많을 정도로 희성전자의 매출액은 급신장했다.

상법 개정과 상장의 상관관계

상법 개정으로 정부당국 관리·감독 강화예상 되자 상장 검토
LG家 종손 구광모의 친부…4세 후계 상속의 종잣돈 전망

 

아들을 형에게 입양 보낸 이후 대중에게 잊혀져갔던 희성그룹 구본능 회장은 최근 KBO 총재직을 맡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다.

 

사실 올해 초부터 구 회장은 언론에 살짝 살짝 희성전자의 상장 가능성을 흘리면서 얼굴을 내비추곤 했다. 매출액 규모만 따지고 봤을 때 희성그룹이 보유한 계열사 중 상장사가 단 한군데도 없다는 것은 그동안 의문점으로 존재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출자총액대상에 미포함되기 위함이라는 해석을 제기해왔다. 현행법상 자산규모가 5조원 미만인 그룹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을 안 시키기 때문에 각종 규제와 감시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올해 3월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상법이 내년 4월부터 발효되면 지금의 상황과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일까, 올해 3월부터 희성그룹이 계열사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달됐다.

올해 3월부터 희성그룹은 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희성전자를 거래소에 입성시키기 위해 증권사들에게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금이 부족해서 IPO를 추진하는 걸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최대주주 등 특수관계자들이 회사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상장하려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희성전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구본능 회장이 42.1%, 구본무 회장의 막내동생인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이 29.4%의 희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구씨 일가 지분을 합치면 전체의 8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5%도 범LG가인 허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어 희성전자 상장으로 범 LG가는 상당한 지분가치 상승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이 15%는 구광모씨로부터 허씨 일가가 매입한 지분이다.) 

4세 후계 종잣돈 될듯

이번 상장으로 기대되는 또 다른 효과는 향후 이 자금이 LG그룹의 4세 경영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자로 입적돼 후계자로 낙점받았지만 사실상 회사를 소유할 수 있는 지분은 확고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LG그룹의 가풍이 재계의 모범이 될 정도로 ‘가족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갑작스런 적통의 요절로 인한 양자의 입적이 추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LG의 4대 주주로 있는 구광모로서는 향후 경영승계에 있어 지분을 확보할 실탄이 필요한데 이 실탄이 희성그룹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 2007년 3월24일 서울 장충동 리틀야구장에서 열린 새단장 기념식에 참석한 신상우 KBO총재(왼쪽)가 전광판을 기증한 구본능 희성그룹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본능의 뿌리깊은 ‘야구본능’

50년 전 중학교 야구부 활동…진한 ‘야구사랑’ 정평

지난 2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사회를 열고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유영구 전 총재를 이을 19대 총재를 포함해 향후 KBO 총재를 구단주 또는 구단주 대행 중에서 선출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이사회는 자신들이 정한 원칙을 곧바로 지키지 못하게 됐다.

“프로야구가 흑자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사업가적 마인드를 가진 전문경영인이 총재로 뽑혀야 한다”고 강조해 왔던 KBO와 이사회의 뜻에 따라 8개 구단의 구단주들이 총재직에 대한 고사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결국 KBO 이사회는 이번만 ‘구단주 또는 구단주 대행 중에서 총재를 선출한다’는 원칙을 어기기로 합의하고, 이용일 총재 직무대행이 제청한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만장일치로 제 19대 KBO 총재로 총회에 추천하기로 했다.

KBO가 19대 총재로 구본능 회장을 추대한 것으로 알려지자 한국 야구계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구본능 희성그룹 총재가 가진 야구에 대한 애정에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대한야구협회는 “30주년을 맞은 프로야구는 물론 아마추어까지 한국 야구 전체가 일대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수장을 택했다”며 “야구 전반에 걸쳐 한국 야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발전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대한야구협회 강승규 회장은 구본능 회장에 대해 “야구 선수로 직접 활동한 야구인 출신일 뿐 아니라 야구에 대한 열정 자체가 대단하신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라며 “그 열정에 이미 재계는 물론 우리 사회,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전문 경영인으로서 능력까지 더해지면 한국 프로야구가 최고의 성장 산업으로 주목받게 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구 총재는 22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야구회관 7층 기자실에서 열린 KBO 총재 취임식에서 “야구와 나의 인연은 깊은 것 같다”며 “50여 년 전 야구의 매력에 빠져 중학 야구팀의 볼보이로 시작했던 내가 오늘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어가는 막중한 자리인 KBO 총재에 취임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 총재는 경남중학교 시절 야구 선수로 그라운드를 뛴 바 있다.

구 총재는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과 함께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LG그룹 3형제’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구 총재는 자신이 보유한 12만장의 야구 관련 소장 사진 가운데 800여점의 사진을 추려 『<사진으로 보는 한국야구』(2005)라는 책을 발간한 적이 있을 정도다.

구 총재는 총재직을 맡기 전까지 LG 트윈스 고문을 맡았으며, 한국 스포츠 사진연구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또한 2006년 원로 야구인 모임인 일구회로부터 최고 영예인 ‘일구대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에는 장충리틀야구장 전광판 설치를 위해 선뜻 3500만원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구본능 총재는 제 19대 총재로 올해 12월31일까지였던 유 전 총재의 남은 임기를 수행하게 됐으며, 내년 초 재선임 절차를 거쳐 2012년~2014년 제 20대 총재를 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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