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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기요금 누진제 생활적폐 아닌가요
송병형 정경부장

[매일일보 송병형 기자] 요즘은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닌 생활담론의 시대다. 거창한 화두보다는 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관심사가 된다. 경제문제로 치면 재벌개혁을 둘러싼 논란은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에게나 화두가 될 뿐이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폭염 속 전기요금 폭탄과 같은 생활 속 고충이 진짜배기 화두다.

물론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야 생활민원보다는 재벌개혁과 같은 거대담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 국가의 경제, 더 나아가 정치를 포함한 체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거대담론과 생활담론이 맞닿는 부분도 있다. 바로 전기요금 누진제가 그것이다.

2017년 1월 10일 대선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개혁 공약을 담은 연설을 한 적 있다. ‘재벌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연설이었다. 당시 연설 말미에서 문 대통령은 재벌대기업에 대한 특혜와 관련해 전기요금 문제를 거론했다.

“2015년 15대 대기업의 한 해 전력소모량은 국가 전체 전력소모량의 15.5%로 5000만 국민의 가정용 전력소모량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이 15대 대기업은 가정용 전기료보다 매년 평균 2조 5000억 가량 적게 내고 있습니다. 수 조에서 수 십 조의 이익이 나는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고 있는 값싼 산업용 전기료를 현실화해서, 전기료부담을 공정하게 하고,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를 개선하겠습니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도입되고 강화됐다. 국가는 경제개발이라는 최고선을 위해 산업용 전기를 헐값에 제공했고, 서민들의 삶을 희생양 삼았다. 서민들은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워 감히 맘 편히 전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수 십 년이 지나 개발독재 시대는 먼 과거가 됐고, 불합리한 제도도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하지만 전기요금 누진제라는 괴물은 여전히 서민들의 삶을 괴롭힌다. 올해 역대급 폭염에도 서민들은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대통령이 재벌개혁 차원에서 값싼 산업용 전기료를 현실화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정부 안팎에서는 ‘누진제를 풀게 되면 가정의 전력 과소비를 부추겨 전력 수급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심지어는 ‘전기를 적게 쓰는 저소득층의 요금을 인상해 전기를 많이 쓰는 고소득층의 요금을 깎아주는 부자 감세 구조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기 에너지 문제의 주범인 산업용 전기를 고려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한 논리다. 산업용 전기를 최우선 보호대상으로 삼았던 개발독재 시대와 달라진 게 없다.

게다가 이런 논리 자체가 허구라는 지적이 2년 전 이미 나온 상태다. 2016년 국회예산정책처의 ‘공공기관 요금체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이라도 식구 수가 많으면 전기 소비량이 많아질 수 있어 누진제는 식구 많은 저소득층 가정에 무척이나 불리한 제도다.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겨울 난방까지 전기 의존율이 높아 여름 폭염은 물론이고 한겨울 혹한에도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해야 한다. 반면 유리한 것으로 치면 혼자 사는 고소득자야말로 누진제의 최대 수혜자다.

문 대통령은 작년 ‘재벌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 연설 이후 정확히 일 년이 되는 올해 1월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공정경제를 말하면서 재벌개혁과 함께 생활 속 적폐 근절도 함께 약속했다. 필자가 보기엔 전기요금 누진제야말로 생활 속 적폐다.

송병형 기자  byhyso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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