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당국, 금융권 관치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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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당국, 금융권 관치 어디까지?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8.06.0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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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수진 기자] “저희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당국에서 하라면 해야죠.”

최근 입김이 거세진 금융당국의 행보에 민간은행으로써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드냐는 질문에 한 시중은행 관계자의 답변이다. “회장님이 시키면 당연히 해야죠”처럼 마치 한 기업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의 말투처럼 들린다.  

최근 금융당국의 시중은행에 대한 행보를 보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간섭을 하고 있다. 

우선 최근 논란이 된 ‘희망퇴직’ 강요가 대표적인 예이다. 금융당국의 수장인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4월 한 기자간담회에서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퇴직금을 많이 주면 10명이 퇴직할 때 젊은 사람 7명을 채용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은행권을 압박했다. 이어 지난달 28일 시중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는 희망퇴직을 적극 단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최 위원장이 “자발적으로 하라”고 전제를 붙였지만 거듭 강조하는 당국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듣는 시중은행장은 없을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늘어난 퇴직자만큼 신규채용을 늘리긴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단 당국의 주문대로 채용규모는 늘렸다. 다만 중·장년층의 고용 안정성 악화와 퇴직금 등의 일시적 비용 부담은 풀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금융권 주 52시간제 시기에도 당국의 강한 입김이 미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정부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단축하기로 한 데 따른 것으로 금융업은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내년 7월에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근로시간 단축을 원활하게 시행하고자 은행권이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하면서 은행권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도 지난달 4일 내년 7월로 예정된 은행권의 주 52시간 근무제의 시행 시기를 올해 7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노조, 회원 은행들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은행권 가운데 가장 먼저 올해 시행 의사를 밝혔다. 이르면 7월, 하반기 내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겠다는 것. 하지만 시중은행에서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특수업무나 특정시즌에 업무가 몰리는 부서들에 대한 조율도 필요한 만큼 내년 시행 일정에 맞게 계획성 있게 시도할 방침이었지만, 갑작스런 주문으로 짧은 시간 내에 제대로 시행될지 미지수라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적절한 간섭은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채용비리 적폐를 해결하고자 적극 나서는 모습이 그 예이다. 하지만 민간은행의 채용 및 퇴직 시기, 근무시간까지 간섭하는 것은 지나친 관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이 당국에 속해 있는 개인 부서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와 당국의 역할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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