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한국 영화계는 도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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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이단아 김기덕 “한국 영화계는 도박판”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1.06.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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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아리랑’으로 살풀이, 상업영화 ‘풍산개’로 부활 시동

[매일일보=김경탁·변주리 기자] 영화감독 김기덕은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이자 ‘문제아’이다. 학벌과 연고 없이 1996년 영화계에 본격 데뷔한 김기덕은, 한국 주류 자본과 대다수 관객들에게 줄곧 외면을 당했지만 국제영화제 수상을 통해 세계가 인정하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짧은 시간에 다수의 영화를 쏟아내던 김기덕은 최근 3년간 칩거생활을 가졌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김기덕필름이 제작했던 흥행작 <영화는 영화다>의 감독이자 그의 수제자였던 장훈 감독 등으로부터 인간적 배신을 겪은 것 때문이었다.

3년간의 칩거 생활을 끝내면서 칩거생활 자체와 배신에 대한 복수를 다룬 그의 컴백작 <아리랑>이 칸느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김기덕의 컴백과 영화 <아리랑>은 대한민국 영화계에 다시 한 번 파문을 낳았다.

권력과 자본주의로 흔들리고 있는 한국 영화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아리랑>을 통해 살풀이에 성공한 김기덕. 그리고 김기덕필름의 첫 상업영화인 <풍산개> 개봉을 앞두고 그가 마침내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베를린과 베니스에서 상 탔더니 대통령 표창하고 훈장도 줘
국위를 선양했다는데 실제 영화를 보고나 주는 건지 모르겠다”

<아리랑>이 제64회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타면서 김기덕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 베를린, 칸을 모두 석권한 첫 한국 감독이 됐다.

▲ 64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고 기념촬영하는 김기덕 감독.

고학력자 출신 감독이 즐비하고, 충무로 도제시스템을 거치지 않으면 입봉(감독 데뷔)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폐쇄적이면서 권위적이었던 대한민국 영화계에게 있었던 김기덕의 수상 소식은 ‘기쁨’보다는 충격과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장에서 일했고, 해병대 제대 후에는 파리로 가 3년 동안 거리의 화가로 살았던 김기덕은 30대 초반까지 영화와는 인연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오해, 편견 그리고 실험

1996년 <악어>를 통해 영화계에 공식 데뷔한 이후 그의 낯선 영화 구성과 내용, 제작방식은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었고, 그와 그의 작품들은 늘 오해와 편견으로 인한 논란에 시달려야만 했다.

한국 영화계가 거부했던 김기덕을 세계 영화계는 껴안았다. 그의 도전과 실험에 열광한 세계 영화계는 국제영화제에서의 갖가지 수상으로 김기덕 영화의 가치를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국제영화제 수상도 그의 작품 흥행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대중에 대한 원망을 토로하면서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쏟아지는 비판과 격려로 은퇴선언을 접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의 영화들은 영화문법을 뛰어넘는 작품 자체의 생경함과 함께 제작방식 자체도 실험적인 경우가 많았다.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영화를 제작하는 그만의 방식은 그가 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지만 제작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시도이기도 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란 이런 것이다 할 정도로 독특하고 충격적인 영화들을 연이어 만들어온 김기덕 감독이지만 오히려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배우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자 도약의 기회로 작용했다.

주진모(실제상황), 장동건(해안선), 이승연과 재희(빈집), 하정우(숨, 시간), 성현아(시간), 이나영과 오다기리 조(비몽), 소지섭과 강지환(영화는 영화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수많은 스타들이 김기덕이란 이름만 믿고 그의 영화에 출연을 자청하는 일이 이어져왔다.

특히 김기덕의 작품 중 <영화는 영화다>는 제작비 15억원 안팎의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흥행을 기록했고,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소지섭과 강지환은 영화에 1억씩 재투자를 하기도 했다.

23일 개봉을 앞둔 <풍산개>의 남녀 주인공인 윤계상과 김규리(옛 김민선)도 출연료를 전혀 받지 않고 참여해 주목을 받고 있다. 윤계상은 “꼭 하고 싶은 좋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개런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고, 김규리도 스케줄 문제로 촬영이 힘들 상황임에도 시나리오를 읽은 뒤 곧바로 노개런티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조연, 단역 배우들도 전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참여했다. 스태프들은 30일 동안 25회 촬영이라는 강행군을 묵묵히 소화해 냈지만, 수당은 받지 않았다. 대신 스태프들은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조감독, 촬영감독 등 주요 스태프는 물론 연출부, 제작부원들도 <풍산개>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지분을 갖기로 한 것이다. <풍산개>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김기덕이라는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본과 시스템 대체할 영화”

8일 <풍산개> 배급사인 뉴엔터테인먼트월드사가 배포한 김기덕 감독의 서면인터뷰 보도자료에서 김기덕은 “<풍산개>는 자본과 시스템을 대체할 첫 영화”라며 이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기덕은 “나는 영화인의 열정과 영화의 주제, 그리고 영화의 가치를 통해 벽을 넘어설 것”이라며 “<풍산개>는 그 첫 단추”라고 장담했다.

▲ 영화 <풍산개> 스틸컷.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그동안 자신이 겪고 느껴왔던 한국 영화계의 부조리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 영화계가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본격적 정면 도전인 셈이다.

김기덕은 “지난 15년 동안 19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각본과 제작을 맡아 오면서 한국 영화계의 모순을 보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다. 한국영화계는 그냥 도박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 <아리랑>을 통해 폭로했던 한국 영화계의 어두운 단면의 일부분을 드러낸 것이다. 김기덕 영화로 대표되는 소자본 영화들이 흥행을 거두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은 한국영화계의 배급시스템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포커판에서 배팅할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구조인 것처럼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메이저배급사 영화의 와이드릴리즈(한꺼번에 많은 상영관을 확보해 초기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 가진 폭력성은 김기덕 영화에서 표현된 사적 폭력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와이드릴리즈방식은 헐리우드에서 생겨난 영화마케팅기법이지만 시장 자체가 좁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소자본 영화의 씨를 말리는 역할을 해왔다.

영화 투자자는 수익을 최대 목표로 영화의 예술성보다 흥행성을 보고 투자를 하고, 배급사와 극장주들은 관객이 들 것 같지 않은 영화에 스크린을 내주지 않는 것이 관행화 되어 있기 때문에 신인 감독이나 독립영화 감독이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온 것이다.

김기덕은 이 벽을 깨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흥행실패였다.

“신임감독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이런 시련을 겪어온 김기덕은 <풍산개> 연출을 맡은 전재홍 감독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직 한국영화 현장은 신인감독에 대한 배려가 조금 아쉽고, 전재홍 감독도 그 고통 속에 굉장히 외로운 작업을 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전재홍은 김기덕이 제작한 영화 <아름답다>의 감독으로 데뷔한 김기덕의 제자이다. 김기덕은 “<아름답다> 이후 영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한 감독의 의지가 지금 현재 한국 영화의 제작 환경에서 서서히 불가능해졌으며, 전재홍 감독은 <아름답다> 이후 3년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어 “전재홍은 유럽과 미국에 오래 살아 한국 영화계에 적응은 다소 어려웠지만 분명히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혼자 작업한 단편 영화 <물고기>가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되었고, <아름답다>도 베를린 영화제 파노라마에 출품됐다”며 “그럼에도 국내 흥행에 부진했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전재홍은 이번 <풍산개>로 자신의 가치를 분명히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가 겪은 고통은) 모두 약이 되어 고스란히 그의 발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김기덕은 전재홍에 대해 “순수하고 깨끗하다”며 “현재 나를 마지막으로 지켜주는 사람이다. 아마 전재홍 감독이 없었다면 나는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신 그리고 마지막 제자

김기덕의 이 발언은 그의 제자인 장훈 감독을 떠올리게 만든다. 장훈은 김기덕이 각본을 쓴 <영화는 영화다>로 감독 데뷔했지만 <영화는 영화다> 이후 메이저 투자사와 계약하면서 ‘김기덕 감독을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 영화 <아리랑> 포스터.
김기덕 감독은 공식적으로 장훈 감독과 화해했다는 뜻을 밝힌 바 있지만, <아리랑>에서 “<영화는 영화다>가 끝나고 의리를 지킨다며 나와 2편을 더 한다고 했는데, 영화 <풍산개>를 같이 준비하다 떠났다”며 “장훈은 나도 모르게 메이저와 계약을 했다. 자본주의 유혹에 빠졌다”며 앙금이 남아있음을 실토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은 배신이라고 하지만 떠난 거다. 원래 삶이 그렇다. 유명 배우들이 캐스팅 됐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회주의자처럼 행동했지만, 나는 떠난 후배를 따뜻하게 격려했다”며 어쩔 수 없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도 인정했다.

장훈 감독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며, 6월 중으로 예정된 자신의 작품 <고지전>의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소리만 있고 실천이 없다”

김기덕은 <아리랑>에서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고 자신에게 훈장을 주는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탔더니 대통령이 표창을 하고 훈장도 줬다”며 “국위를 선양했다고 줬다는데 실제 영화를 보면 한국에 대해 좋지 않게 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를 보고나 주는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영화 <풍산개>에서도 현재 남한과 북한이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담았다. 김기덕은 “남북은 서로 정치적인 싸움으로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고, 현재 남북은 통일에 대한 소리만 있고 실천이 없다”며 “<풍산개>는 60년 남북의 역사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로서, 앞으로도 계속 암울할 수밖에 없는 남북의 미래에 대한 경고”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남북은 언제까지 이렇게 세계열강들의 틈에서 이용당하고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 할 것이냐”며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한 평화 통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 잊고, 덮고,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며 한국이 가진 장점과 북한이 가진 장점을 서로 발전시켜 세계 속에 떳떳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충고했다.

<풍산개>는 지혜로운 한반도 토종개를 남북을 오가는 밀수꾼과 브로커로 상징화시킨 영화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무엇이든 3시간 만에 배달하는 정체불명의 주인공(풍산개)이 북에서 망명한 고위층 간부의 여자를 배달하는 미션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김기덕은 “<풍산개>는 남북을 오가며 단순히 이산가족 편지를 전해주고 사람을 빼오는 인물이라기보다, 60년 분단의 한 맺힌 유령 같은 존재이며 상징이고 또한 통일을 열망하는 많은 남북의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캐릭터로, 그가 남한 사람이거나 북한사람이냐는 중요하지 않고 우리 남북 평화통일에 대한 모든 이의 기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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