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에 쓸려간 민심…‘수도권 전멸’ 걱정하던 한나라, 영남도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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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살에 쓸려간 민심…‘수도권 전멸’ 걱정하던 한나라, 영남도 빨간불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05.13 1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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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임시 제방 유실, 구미·김천·칠곡 5일간 단수 파문

[매일일보=김경탁·변주리 기자]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 지역이 심상치 않다. 시작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사업이던 동남권 신공항 사업을 전면 백지화한 일이었다. 신공항 입지 후보지였던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가 이명박 대통령의 백지화 발표에 드러내놓고 반발하면서 영남 민심 이탈이 가시화됐다.

이어서 터진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정부의 금융감독 체제 전반에 대한 불신과 함께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의 부도덕성에 대한 극심한 혐오감을 확산시켰고, 지역 국회의원들이 통과 가능성도 없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쇼를 하는 지경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단수 대란’이 발생했다. 4대강 사업 낙동강 구역 내에 설치된 광역취수장 가물막이가 무너지면서 5일간 수돗물공급이 끊겼고, 수습과정에서 황당한 일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텃밭이던 경기도 분당 패배로 한나라당 수도권 지역구 의원들이 패닉상태에 빠진 바 있는데 연이은 악재와 민심이탈로 당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영남권에서도 몰살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종말론적 전망마저 확산되고 있다.

구미경실련 “구미가 ‘부실 국책사업’의 전시장이냐?” 대구취수장 구미 이전 강행,
영남물류기지에 희생된 구미철도화물적치장, 수질 악화 등 악재 연발에 민심 폭발

일본 지진 때 생수 보내주던 정부, 단수사태 방치…보다못한 네티즌 자활 움직임
김주하 “옆집 아이 챙기면서 정작 우리 아이가 다쳤을 때는 나 몰라라 하는 부모”

지난 8일, 낙동강 구역 28공구 내에 설치된 광역취수장 가물막이가 수압을 이기지 못해 전체 200m 구간중 50여m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4대강 정비 사업으로 강바닥을 준설하자 수량이 늘고 물 흐름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반이 침식된 것이 원인이었다.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물막이에 박아 놓았던 파일이 빠지자 구미 일대 지역에 취수가 중단돼는 사태가 벌어졌다. 구미 지역에선 이전에도 수차례 단수가 발생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곧 정상화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예고 없이 벌어진 단수사태가 5일이나 지속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 5일째 계속되고 있는 구미 단수대란 사태가 한국수자원공사의 늑장대응이 빚은 인재라는 점에서 시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11일 오후 경북 구미시 인동 주민들이 물 공급을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대응, 무대책, 무책임

예고 없이 벌어진 단수 사태와 더불어 이 사태를 둘러싼 책임자들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는 주민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켰다. 구미시와 수자원공사는 단수 소식을 뒤늦게 통보한 데다 그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해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구미와 김천, 칠곡 등 17만 가구에 물을 공급하는 구미광역취수장에 취수를 중단한 때는 8일 오전 7시였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이날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안내 방송을 접해 단수가 시작된 지 6시간이나 지나서야 단수 사실을 통보받았다.

광역취수장을 운영하는 수자원공사는 12일 오전 7시30분부터 물막이 복구 작업에 나섰고 이 사실을 7시40분에 구미시에 통보했다고 주장했지만 구미시는 오전 9시가 넘어서야 최초 연락을 받았고 오전 10시30분께 공문으로 내용을 받았다고 반박해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구미시와 수자원공사가 수돗물 공급을 정상화하겠다고 발표한 예정 시간도 계속해서 번복돼 주민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수도요금과 지방세를 받는 구미시가 사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단수 사태의 책임을 피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물살에 쓸려 나간 민심

지역주민들의 불만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으로 번져갔다. 구미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주민들의 민원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공아무개씨는 “이번 사태는 4대강 공사로 인한 인재”라면서 “4대강 공사를 주도한 정부에게 구미 시민을 대표하는 시장님이 책임 물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김아무개씨는 “낙동강은 우리의 생명”이라면서 “그 생명의 젓줄을 이렇게 파헤쳐놨으니 이런 사고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탄식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10일부터 구미시청, 구미수도사업부,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단수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달라는 청원이 시작됐다. 처음 서명 목표는 2000명이었으나, 동참하겠다는 이들이 많아 5000명으로 늘렸고, 13일엔 4000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했다.

구미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구미경실련)은 9일 성명서를 통해 “구미시가 ‘부실 국책사업’ 전시장인가”라며 구미시에서 벌어져온 국책사업에 대해 전반적인 문제제기에 나섰다.

구미경실련은 “4대강 사업 때문에 만든 가물막이가 유실되면서 낙동강 구미취수장의 취수가 중단된 모든 원인은 환경영향평가부터 국민여론 수렴, 공사 진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부실’ 그 자체였다는 잘못된 국책사업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구미경실련은 특히 “국토해양부는 대구시와 짜고서 구미시에 말도 안하고 대구취수장 구미 이전을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라며 “구미시는 4대강 사업 피해지역의 대표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취수원 구미이전 문제는 이전 예정지인 구미보의 하류 구간 수량이 줄어들어 수질도 악화되고, 이로 인해 오염총량제에 발목이 잡혀 공장 입주가 제한을 받으면서 개발효과도 감소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 밖에 구미경실련은 “대형 지역현안이 된 국책사업들이 한결같이 4대강 사업처럼 ‘부실 국책사업’이란 데 있다”며 정부가 영남 물류기지를 살리기 위해 구미철도CY를 지난달 3월 폐쇄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야당들도 공격에 나섰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구미식수대란은 4대강 속도전에 안전시설조차 갖추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다가 벌어진 사태라는 점에서 중앙정부 책임이지만, 주민들이 물을 찾아 분통터지는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무엇을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차영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잘못된 4대강 속도전을 중단하고 파괴된 금수강산을 되돌려놓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4대강에 휩쓸려 내려가고 마는 것은 결국 이명박 정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뿔난 민심, 다독일 수 있을까?

▲ 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12일 영산강 6공구 승촌보 설치를 위한 가물막이가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가물막이가 무너진 것으로 추정되는 승촌보. <사진=김진애 의원실 제공>
수자원공사는 12일 “구미지역의 단수사고는 용수공급을 위하여 설치한 가물막이의 하단이 지속적인 물 흐름에 의해 패여 일부 구간이 유실된 것”이라며 4대강 사업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4대강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국토해양부는 단수사태가 종료된 12일까지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구미 지역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 공사장 곳곳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했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12일 영산강 6공구 승촌보 설치를 위한 가물막이가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현장 관계자는 “물막이가 붕괴된 것이 아니라 비가 내려 물이 잘 흘러가도록 가도를 자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김 의원실 측은 “확실한 제보를 받았고 현장이 이미 정리돼있어 사실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며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대구환경운동연합도 대구 달성군 낙동강 강정보 공사현장에서 지난 달 말 내린 봄비로 대규모 제방 붕괴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수자원공사는 “공사현장에 제방을 설치한 적도 없다”며 사실관계를 부인했다.

하지만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국장은 13일 “물길이 아닌 땅에 인공수로를 파면서 수로 양쪽에 쌓아 둔 것이 임시제방”이라며 “제방이 무너진 이후인 지난 4일에 제방을 다시 쌓은 것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애써 외면하던 한나라당 뒷북

‘모르쇠’로 버티기에 들어간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번 단수사태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으면서 애써 외면하던 한나라당도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 민심 다독이기에 나섰지만 뿔난 민심을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구미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비상대책위 위원)은 12일 “구미 인근 지역이 5일째 단수가 돼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지만,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이가 없다”며 “수자원공사 사장은 56만명의 주민에게 피해를 입힌 책임을 안고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도 13일 “구미 지역의 단수 문제가 국민들의 걱정거리인 만큼, 오는 17일에 구미취수장 현장방문을 계획 중”이라며 “구미를 포함해 필요하면 나머지 4대강 사업 현장에 대해서도 소홀함은 없는지 당에서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이 단수사태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정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자 네티즌들은 직접 성금을 모아 생수를 보내주는 등 구호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사진=뉴시스>

이와 관련 MBC <뉴스24> 앵커를 맡고 있는 김주하 아나운서는 지난 10일 “옆집 아이가 다쳤을 때는 위문이다 약이다 챙겨주면서 정작 우리 아이가 다쳤을 때는 나 몰라라 하는 부모 어떠세요”라며 정부의 태도를 꼬집어 화제를 모았다.

이날 클로징 멘트로 김주하 아나운서는 “일본에서 지진 피해가 나니 생수다 생식품이다 보내주면서 4일째 물이 나오지 않는 구미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지난 4월 하순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4대강사업 현장에서 18명의 인부가 사망한 것에 대해 “(4대강 사망 사고 중) 사고다운 사고는 몇 건 안 되고 거의 본인의 실수에 의한 교통사고나 익사 사고였다”고 말해 질책을 받은 바 있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의 탓을 한다. 그런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못 봤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최장수 장관으로서 곧 물러나는 정 장관을 비롯해 단수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부 관계자들이 함께 새겨들어야할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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