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6천에 월세40만원…판자촌에 그런 능력자가 있나?
상태바
보증금 6천에 월세40만원…판자촌에 그런 능력자가 있나?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1.05.06 1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르포] 강남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공영개발 추진 논란

[매일일보=송병승기자] 서울시 강남구 개포2동 567번지 일대. 소위 말하는 강남의 노른자위 땅. 왕복 8차선의 양재대로가 지나는 바로 옆.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인 타워팰리스를 비롯해 대규모 고층 아파트단지들이 드높은 위용을 드러내는 곳.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형성된 판자촌. 여름이면 항상 수해를 입을까 노심초사 하는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이 일용직으로 근근이 하루를 버텨가는 곳. 20여년 동안 주민등록상 주소도 가질 수 없었던 ‘유령마을’. 바로 ‘구룡마을’의 두 모습이다.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으로 잘 알려진 ‘구룡마을’에 대한 공영개발이 최근 결정됐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낙후된 마을 개발에 대한 환영과 함께, 그나마 살던 터전마저 빼앗기고 쫓겨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동시에 번져 나오고 있다.

마을 생기고 20년 만에 겨우 얻은 진짜 주소지…‘위장전입’ 설움 떨쳤지만
주민등록상 등재 시기, 공영개발 시기와 맞물리면서 의심의 목소리도 나와

구룡산 아래, 양재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구룡마을은 강남권 개발로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대책 없는 개발을 일삼았던 1970-80년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구룡마을은 1970년대 대규모 강남 개발 사업으로 인해 자신의 생활 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이 모이면서 형성됐고,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면서 서울 시내 위치한 판자촌을 철거할 때 쫓겨난 사람들이 흘러들어오면서 그 몸집이 커졌다.

현재는 양재대로 변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로수들로 인해 흔적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을의 흔적의 입구나 흔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주변 환경과는 거리감이 있다. 구룡마을에 들어서자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의 분위기가 풍긴다.

▲ 구룡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보이는 타워펠리스가 더욱 높아 보인다.
앞쪽에 보이는 초고층 아파트의 위용이 더욱 높아 보일만큼 산 아래 위치한 구룡마을의 집들은 낮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허름한 쪽방들이 보인다. 현재 사람이 사는 곳과 살지 않은 곳을 구분하기 위해 집집마다 주인의 존재여부가 문 앞에 붙어있다.

찢어진 플랜카드, 폐타이어, 문짝, 버려진 천막 등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들이 쪽방의 지붕위에 올려져있다. 내리는 빗물이 쪽방 안으로 흘러내림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함이다.

‘재개발 반대’라고 써진 깃발을 세우고 대립의 각을 형성하고 있는 여느 재개발 예정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인 구룡마을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자 몇몇의 주민들이 원두막처럼 된 건물 안에 모여 있다.

그 원두막은 골목 통행로 쪽으로만 유리를 설치해 밖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강남 노른자위 땅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최근 개발 결정 소식을 먼저 듣고 기승을 부리자 이를 감시하기 위해 주민들이 내부적으로 당번을 정해서 주변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주민등록 등재 고맙죠~”

구룡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짓고 전기와 수도를 연결해 공동으로 전기세와 수도세를 걷어 생활해왔다. 하지만 이 마을은 얼마 전까지도 주소 없는 ‘유령마을’이었다. 강남구청에서는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구룡마을을 주민등록상 등재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20여년 동안 친척, 혹은 지인들의 주소지에 위장전입을 해놓은 상태로 살아왔다. 그로인해 구룡마을 주민들은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어야 했고 학생들은 위장전입된 주소지로 전학을 일삼아야 했다.

다행히 지난 5월2일부터 강남구청에서 구룡마을을 주민등록상 등재하기로 결정하면서 구룡마을 주민들은 20여년 만에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슈퍼 앞에는 노인 몇이 모여 있었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에게 “이곳에서 얼마나 사셨나요?”라고 묻자 “오십에 들어와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으니 20년 넘게 살았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다른 한 분은 모여 있던 노인들 틈에선 아직 젊은 나이 축에 속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나이도 벌써 60세. 노인은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지팡이를 짚고서야 조금씩 거동을 옮길 수 있다.

“재개발이요? 그런 거 잘 몰라요 우린. 못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데 그거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지요. 그나마 요즘엔 주민등록증에 주소 등재 해준다고 하니까 그거라도 그냥 고마울 따름이지요”

황혼의 시절을 구룡마을에서 보낸 노인의 느릿한 걸음만큼 구룡마을 역시 개발의 틈 속에서 느릿한 변화를 보여왔다.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주민등록증 주소 등재에 관련된 내용의 게시물과 투기꾼들로부터 구룡마을을 지켜내자는 강남구청장 명의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세 가족과 함께 살던 노인은 2년 전 집이 마을 위쪽으로 옮겨지면서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은 친구의 집에, 자식들도 따로 나가 살고 있는 상황. 6평 남짓한 노인의 집 중 주방을 제외하면 겨우 세 사람이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뿐이다.

“이 좁은 집에서 네 식구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가족이 그나마 같이라도 살면 좋을 텐데 그럴 상황도 못되니 다 따로 살고 있는 거지요”

20년간 안 해주더니…“왜?”

▲ 구룡마을 곳곳에 보이는 허름한 골목길.
주민등록 등재 시작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이제야 주소지를 얻을 수 있어 기쁘다”면서도 “이렇게 쉽게 해줄 수 있는 건데 그동안은 그렇게 해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민등록 등재 시작의 표면적 계기는 구룡마을의 한 주민이 강남구청을 대상으로 제기한 주민등록 등재에 관련 소송 승소이다. 이에 따라 강남구청이 5월2일부터 구룡마을 주민들을 주민등록상 등재해 주기로 결정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20여년 만에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마을회관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등재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대부분 그간의 위장전입으로 인한 설움을 떨쳐낸다는 것에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주민등록상 등재 시기가 공영개발 시기와 맞물리면서 의심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김원심 부회장은 “20년 동안 그렇게 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다가 개발이 결정되고 나서야 등재해준다고 하니 소송판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이상하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임대아파트 분양 시 걸러낼 사람들 다 걸러내려고 이제 등재해주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청은 20여년 동안 거부하다가 이제 와서 시작된 주민등록상 주소지 등재에 대해 “얼마 전 주민등록 등재와 관련한 재판에서 졌기 때문에 해주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주민들의 의구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강남구청 관계자는 “개발이 결정됐기 때문에 해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 “개발은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서울시 “논란 많던 민영개발 대신 공영개발”

 

자치회 “공영개발, 원주민 아니라 서울시와 SH공사 배만 불릴 것”

서울시가 ‘구룡마을’ 정비방안을 확정 발표한 것은 지난 4월28일. 강남구청의 주민등록 등재가 시작되기 나흘 전의 일이다.

“20년 이상 방치되어 있던 강남구 개포2동 567번지 일대 구룡마을이 쾌적한 주거단지로 탈바꿈한다. 25만2777㎡에 총 2793세대(임대 1250세대 분양 1543세대)의 주택과 학교, 문화·복지노인시설, 공공청사, 도로, 공원·녹지 등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이번 구룡마을 개발을 공영개발로 시행하면서 “그간 논란이 많았던 민영개발에 대해서는 개발이익 사유화에 따른 특혜논란, 사업부진시 현지 거주민들의 주거대책 미비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본다”며 “공정한 공공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서울시 SH공사 주도의 공영개발로 도시개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전체 주민 10%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자 빼면 대부분 공공임대 살 텐데
하루하루 일용직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6천만원 마련할 수 있겠나”

하지만 구룡마을 주민 300여명은 이날 강남구청으로 몰려가 “공영개발이 아닌 민영개발로 해달라”면서 “공영개발은 원주민들을 위함이 아니라 개발자들(서울시와 SH공사)의 배만 불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에 따르면 ‘중원’이라는 부동산개발업체가 구룡마을 일대 민간 개발을 유도해 오고 있었으며 중원 측은 민간개발 결정시 구룡마을 원주민들에게 1000여가구를 건축비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받고 분양해 주기로 약속이 돼 있다는 것.

▲ 구룡마을 입구에 주민자치회가 걸어 놓은 플랜카드.
중원 측이 제시한 금액은 5년 간 임대로 살고 이후 건설비 명목의 1억원 정도이지만 공영개발로 SH공사가 아파트를 짓고 영구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면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6만원, 공공임대로 살게 될 주민은 보증금 6천만원에 월세 40만원 가량을 내야 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전체 주민의 10%도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공공임대로 살게 될 텐데, 하루하루 일용직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6천만원이라는 돈을 마련할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책임 미루는 책임기관들

한편 구룡마을 원주민들은 서울시가 발표한 공영개발 확정안에 대해서 현재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심지어 서울시나 강남구청으로부터 공영개발에 관한 일체의 말도 들은 바 없고 모두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주민들 중 일부는 공영개발이 결정됐다는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혹은 알고 있어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구룡마을 개발사업 담당기관인 서울시와 SH공사는 “아직은 제반 사항에 대해 일체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구룡마을에 들어서게 될 공영주택의 영구·공공임대 입주에 대해 “영구·공공임대로 입주할 대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아마도 영구임대 입주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것”이라면서 “세부 사항과 결정권은 SH공사에 있으니 그쪽에 문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SH공사는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고 구룡마을 개발 담당자 역시 배정받지 않은 상황으로,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서 결정할 것”이라며, “공공임대로 입주하는 사람들의 입주금은 임대주택법에 준해서 결정할 예정인데, 예외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