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위한 나라 없다지만…“한국의 노인, 빈곤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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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위한 나라 없다지만…“한국의 노인, 빈곤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05.06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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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새세상 연구소 ‘노인문제와 노인복지 개선방향’ 토론회

[매일일보=변주리 기자] 대한민국이 늙고 있다. 그것도 전 세계 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늙고 있다. 지난 2000년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 2018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한국 사회엔, 그러나 ‘노인을 위한 정책은 없다.’

노인 인구가 점점 증가함에 따라 빈곤, 질병 등 노인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됐지만 이들에 대한 정책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하루 평균 노인 자살율 12명, OECD 국가 평균 노인 빈곤율의 3.5배 등 늙어가는 속도만큼이나 고통도 급격하게 증가하는 한국 사회를 재조명하기 위해 민주노동당 싱크탱크 새세상연구소와 민주노동당 노년위원회가 ‘초고령사회로 가는 한국, 노인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된 노인들, 우울증·자살·범죄 발생 급증”
“곧 노인 되는 베이비붐 세대, 절반 이상이 ‘노인 위기’ 맞을 것”

“급여 낮고 사각 큰 노후보장체계, ‘빈곤유지형’이지 ‘빈곤해소형’ 아냐”
“책임 떠넘기는 ‘재산-소득환산제’와 ‘부양의무자기준’은 악법, 폐지해야”

2010년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점으로는 ‘경제적인 어려움(41.4%)’과 ‘건강문제(40.3%)’가 두드러졌다. ‘소일거리가 없음’이 5.7%로 세 번째를 차지했으며, 네 번째는 ‘외로움 또는 소외감(4.4%)’으로 나타났다. 독거노인의 경우 ‘외로움 또는 소외감’이 9.5%로 ‘소일거리가 없음’보다 크게 웃돌았다.

이날 토론회는 이렇듯 빈곤, 질병, 고독 등 3고(苦)에 시달리고 있는 노인들에게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는 시간이었다.

▲ 민주노동당 노년위원회와 새세상연구소는 지난 4일 ‘초고령사회로 가는 한국, 노인들이 살기 좋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김영준 경기도 노인일자리 지원센터장, 서병수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 최규엽 새세상연구소 소장, 안병선 노인병 전문의, 유영우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상임이사. <사진=새세상연구소 제공>

‘빈곤’ 벗어날 길은 ‘죽음’ 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0년에 낸 ‘회원국 소득분배와 빈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한국 노인인구의 상대 빈곤율은 45%이다. 이는 OECD 평균 13.3%의 무려 3배로 우리나라 다음으로 빈곤율이 높은 아일랜드에 비해서도 15%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상대 빈곤율은 소득이 중위소득(소득순위로 일렬로 세웠을 때 중간 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빈곤층의 비율을 말한다.

▲ 서병수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
토론회의 첫 번째 토론자인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서병수 소장은 이와 관련 “죽는 것이 빈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 사회에선 죽을 때까지 빈곤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병수 소장은 “현재의 노인들은 대다수가 경제 개발 기간 동안 저임금 시절이라는 고난의 시대를 살아왔고, 자녀교육과 집 마련,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의 부재 등으로 노후 준비가 부족했다”며 “은퇴 후에도 일을 해야 하지만 고령으로 인해 취업기회가 부족하고 일을 하더라도 저임금으로 노동을 하는 탓에 빈곤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서 소장은 이어 “명확한 것은 앞으로 정부의 공적 지원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노인빈곤율은 더욱 커진다”고 경고했다. 서 소장은 “성장의 과실은 1차적으로 직접 생산에 종사하는 인구에 배분되며, 2차적으로 가족이나 정부에 의해 사적·공적 이전이 이루어진다”며 “하지만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노인들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노인들이 자녀로부터 받는 부양비의 평균이 월 10만원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이것이 단적으로 말해 주듯 성장의 과실이 사적 이전으로는 노인들에게 거의 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서 소장은 “노인 빈곤율을 줄이기 위한 관건은 정부로부터의 공적 이전 추세”라고 단언했다.

노인의 질병 문제는 빈곤과 매우 깊은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질병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동시에 빈곤에 의해 병이 악화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 소장은 “치아가 약해서 씹기 어렵다고 응답한 노인 57% 중 의치보철이 필요한 100만~130만 명은 아래 위 틀니를 마련할 돈이 없다고 한다”며 “여기에 더해 돈이 부족하여 필요한 음식을 구입하지 못하는 노인이 약 120만 명이다. 이들 대부분이 영양관리의 개선이 시급한 상태”라고 밝혔다.

서 소장은 또 “의사로부터 한 개 이상의 만성 질병을 진단받은 노인은 83.1%로 10명 중 8명”이라며 “치료를 받고 싶어도 사정상 치료를 받지 못하는 노인이 전 노인인구의 24.0%인데 이 중 경제적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는 비중이 절반(2009년 국민건강통계)”라고 밝혔다.

노인의 우울증·범죄·자살 부르는 ‘소외’

보건복지부의 ‘2009년 전국 노인 학대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대를 경험한 노인은 13.5%로 전체 노인수로 환산하면 약 72만 명이다. 이 중 정서적 학대가 57.1만 명, 방임이 11.2만 명, 경제적 학대 3.6만명, 신체적 학대 3.1만 명이고 성적 학대도 5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환산된다.

학대행위자는 자녀(동거 자녀 14.8%, 비동거 자녀 35.7%) 50.5%이고, 배우자도 23.5%에 이르렀다. 하지만 학대받는 노인들의 2.5%만이 신고할 뿐, 93.3%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거나 신세한탄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병수 소장은 “빈고(貧苦), 병고(病苦), 고독고(孤獨苦)를 ‘노인의 3고’라고 하는데, 이중 고독은 사실상 가족 및 사회적 관계에서의 소외”라며 “이러한 가족과 사회관계 속에서 노인 우울증, 노인 자살 및 노인 범죄의 발생이 급증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1년 3월 발표한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에 따르면 노인우울증 환자가 2004년 8만9천명에서 2009년 14만8천명으로 매년 30% 정도씩 증가하여 5년간 1.7배 증가했다. 이는 65세 이상 노인 질환자 비중이 2004년 18.8%에서 2009년 26.0%로 상승한 것이다.

또 경찰대학교 치안정책연구소의 ‘노인범죄 발생 실태분석과 예방대책’ 보고서에 의하면 만 60세 이상 노인 범죄자수는 1997년 3만4211명에서 8만4028명으로 2.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범죄자수와 노인 범죄자수를 비교해보면 노인 범죄자수가 얼마나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했는지 알 수 있다. 인구 10만 명당 전체 범죄자수는 1997년 4322명에서 4107명으로 4.9% 감소한 반면 노인 범죄자수는 같은 기간 810명에서 1329명으로 64.0% 증가했다.

노인 자살의 증가율도 매우 심각했다. 경찰대학교 치안정책연구소의 ‘노인 자살 실태 분석과 예방 대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61세 이상 노인 자살자 수는 1989년 788명에서 2008년 4029명으로 20년 만에 5배 이상 증가했고, 지난 5년간 전체 자살자 수의 30%를 차지했다. 또 2008년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최근 1년 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노인이 약 150만 명(27.6%), 자살시도가 약 30만 명(5.5%)로 나타났다.

이러한 노인들의 위기에 대해 서 소장은 현재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서 소장은 “곧 노인이 될 베이비붐 세대들도 절반 이상이 현재 경제력도 없고 노후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며 “이들 모두 노인 위기를 맞을 것은 불 보듯 하다”고 꼬집었다.

시혜 관점을 인권 관점으로

1994년 도입된 ‘개인연금제도’를 시작으로 정부는 노후보장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 국민연금이 1999년 보편화된 이후, 김대중 정부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2000년부터 운영했으며 노무현 정부는 2006년 퇴직연금제도, 2007년 주택연금제도와 장기요양보험제도, 2008년 초 기초노령연금제도(국민연금제도에서 제외된 65세 이상 노인들의 70%에게 보편적으로 급여)를 각각 도입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 노후보장체계에 대해 서병수 소장은 “급여수준이 매우 낮고, 사각지대가 크다는 두 가지의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현 복지체제는 결과적으로 ‘빈곤유지형’이지 ‘빈곤해소형’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서 소장은 “노인복지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 부담능력은 물론, 인권적 관점에서 노인빈곤을 해소해야 하겠다는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노인복지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을 보면 선심이나 시혜적 관점이 많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서 소장은 이를 바탕으로 현 노인복지체제의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9만 원 정도에 불과한 기초노령연금을 국민최저(기초보장)보다 높여 ‘인간답게 사는 수준’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서 소장은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생계비 계측 방식에 대해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비과학적이고 타당치 않았다”며 “최저생계비 계측 절차와 위탁연구 대상자를 바꾸는 등 과학적으로 산출하도록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근로능력자와 근로무능력자에게 동일한 수준으로 급여를 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그는 “이를 나누어 다차원적 빈곤접근방식에 의하여 급여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재산의 소득환산제는 소득과 재산이 완전대체제 관계에 있다는 공상적 상상을 적용한 대표적인 악례이며, 성년자가 노부모를 떠맡는 것은 당사자 선택문제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며 ‘재산의 소득환산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주장했다.

특히 서 소장은 “노인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대량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노인친화형 일자리는 참여 노인들의 빈곤율 감축 효과가 6%p 이상에 이르고 건강 향상, 우울증 해소 등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복지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이를 양적 및 질적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 김영준 경기도 노인일자리지원 센터장
한편 경기도 노인일자리지원센터 김영준 센터장은 노인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 김영준 센터장은 먼저 “노인 일자리 사업이 사회적으로 더욱 긍정적인 인식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세대통합을 위한 사업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직도 노인은 늙고 나약한 복지 수혜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앞으로의 일자리 사업은 단순히 공공 재원으로 사회 복지 수혜적 차원에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노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센터장은 “무엇보다도 노인들의 주체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인 일자리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노인이 주체가 되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일을 통해 자아실현과 자존감을 정립할 수 있도록 기회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노인연대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조직화하여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형성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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