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개혁 4년의 최대 결과는 ‘KAIST 한국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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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개혁 4년의 최대 결과는 ‘KAIST 한국化’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1.04.18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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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다섯 천재의 죽음=다섯 가능성의 소멸…‘카이스트’의 당당한 수장 ‘서남표’

[매일일보=김경탁·송병승기자] 자수성가형 인물들에게 일반적으로 발견되곤 하는 ‘인간적 약점(?)’은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잔혹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내가 더 어려운 상황에서 해낸 일을 너희들은 왜 못하냐’는 심리가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내재돼있기 때문이다.

2011년 들어서만 네 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경쟁위주 정책은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학내를 넘어 사회 각계로부터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서 총장이 보여주는 당당한 태도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능하다.

서 총장은 이번 사태로 인해 불려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자평하자면, 잘했지만 고칠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차등등록금은 폐지하기로 결심했지만 사퇴에 대해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세상은 그를 ‘경쟁주의에 빠진 노인’ 이라 비판하지만 너무도 초연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있는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그는 해외 유명 대학 명예박사,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신성장동력기획단 단장,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원장 등의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카이스트 총장이 된 후 그가 학생과 교수들에게 강요한 ‘무한경쟁’시스템에 대해 ‘혁명적인 개혁’이라는 추앙을 바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천재들을 모아놓은 카이스트 구성원 5명의 죽음은 대한민국이 가진 ‘거대한 가능성’ 5개의 소실을 의미했다.

취임 일성 “세계 최고만 살아남는 시대…국내 1등은 무의미”
다섯 죽음에 초연한 태도 보인 이유가 ‘세계 최고’ 아니라서?

서남표의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4년간 이어진 ‘광란의 춤사위’

결과는 KAIST의 한국화…창의력과 적성보다 학점관리, 친구는 적

▲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로 논란의 중심에 선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12일 국회 교과위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학자 서남표’의 성공신화

1936년 4월22일생. 올해 나이 75세인 서 총장은 195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아버지를 따라 1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55년 미국 브라운 앤 니콜스 스쿨을 졸업한 그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이하 MIT) 기계공학과에 입학, 1959년 학사, 1961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은 뒤 카네기 멜론대학교에서 기계공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1965년 미국 사우스 캐롤리나대 교수를 시작으로 1970년 MIT 기계공학과 부교수로 부임, 동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장, 기계공학과 학과장, 석좌교수를 거쳤다.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을 10년 이상 역임하면서 교수진 40% 가량을 새로 임명하고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등 대대적이고 혁신적인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과학재단의 공학담당 부총재를 역임하면서 미국 정부의 공학담당 연구개발 총책임을 맡아 당시 일본에 비해 뒤쳐졌던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밖에도 국제적 기업과 미국 정부기관, UN, 세계은행 등에서 기술자문으로 활동했고, 스웨덴 왕립공학아카데미의 해외회원, 미국기계학회 생산성 위원장, 미국 기계공학회 평생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평생회원 등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경력사항만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화려함을 지닌 서 총장의 학문적 업적도 과히 걸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마찰공학, 제조과학기술, 설계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업적을 이뤄 냈으며 공리적 설계이론인 ‘소비자로부터 받은 요구를 분석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를 만들었고 3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 50여 개의 특허도 보유한 상태다.

더불어 미국기계공학회 블랙올 상 공동수상(1982), 미국과학재단 올해의 국가공학자상(1987), 영국 공학설계원 힐스밀레니엄상(2001), CIRP 최고 영예상(2006), 2011년 자랑스러운 한국계 미국인상(2011)을 수상하기도 했다.

▲ 카이스트 임시 이사회가 열린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서남표 총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총장 서남표’의 등장

카이스트는 2006년 6월23일 이사회에서 총장후보선임위원회가 추천한 서남표 MIT교수, 신성철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 강성모 미국 UC산타크루즈 공대 학장 등 3명의 총장 선임자 중 서남표 교수를 13대 카이스트 총장으로 선임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생활이 한국 생활에 비해 2배 이상 길었고 국내 학연 등에 있어서도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부족했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한 것이다.

서 총장은 그해 7월14일 카이스트 총장취임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세계 최고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 1등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서 총장의 ‘카이스트 무한경쟁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서 총장은 “5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중책을 맞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카이스트가 한국 최고 과학기술계 대학을 넘어 세계 최고 대학이 되도록 하는 시험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 첫 번째 화살은 교수들에게 돌아갔다. 우선 대학에서 교수의 평생고용 즉 종신재직권을 보장해주는 ‘테뉴어’ 심사제도를 강화했다.

테뉴어 심사제도가 강화되면서 교수의 연구 실적이 좋지 않을 경우 정년이 보장되지 않았고 2007년부터 4년간 정년 심사를 받은 카이스트 교수 140여명 중 23%가 탈락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교수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해 왔고, 급기야 2010년에 2명의 교수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카이스트 학부의 한 교수는 “제도 도입 이후 교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과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 속에 있는 고민을 쉽사리 서로 상의하지 못한다”는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 카이스트 대학의 학생과 교수의 연이은 자살로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서남표 총장이 12일 오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에 앞서 의원들에게 허리굽혀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세계적 경쟁력을 기른다는 취지로 시작된 ‘100% 영어 강의’는 교수들과 학생들 모두에게 스트레스였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교수들도 강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일부 학생들도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완벽히 강의를 소화할 수 없게 됐다.

지난 4월10일에는 학내 커뮤니티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교수가 전과목 영어 강의 의무화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교수는 “고등 학문을 자국어로 배우지 못하고 외국어로 사유한다면 미개인 취급을 받을 수 있다”면서 “한국 과학대표 대학인 카이스트가 자국어가 아닌 영어로 100% 학문을 한다는 것은 국가의 수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전공 실력을 탄탄하게 갖춘 뒤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게 진정한 교육”이라면서 “일정 수준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 과목 영어 강의는 ‘체계적인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 총장의 개혁 중 학생들의 가장 심각하게 학생들을 목을 옭죄게 만든 것은 ‘징벌적 수업료’ 제도이다. ‘징벌적 수업료’ 제도는 서 총장이 카이스트를 세계 일류대학으로 만들겠다는 포부아래 계획된 제도로 2007학년도 신입생부터 학점 4.3 만점에 3.3미만이면 기성회비 150여만원을, 3.0 미만인 학생은 0.01학점당 6만원의 수업료를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본래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실행되었지만 제도 실행의 결과는 많은 학생들이 창의적 자기개발보다는 경쟁구도아래서 금전적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게 만든 것이었다.

‘징벌적 수업료’ 실시 이후 학생들은 수강 신청시 자신의 관심사와는 상관없이 ‘학점에 유리한 것인가?’를 가장 먼저 고려하고 선택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대학에서 벌어지는 무참한 일이 마침내 카이스트로 옮아온 것이다.

창의성 증진을 위해 무학년 무학과 제도를 시행해온 카이스트에서 ‘징벌적 수업료’는 모든 것이 성적과 연관되어 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카이스트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99% 대학에서 만연해있던 참혹한 모습들이 ‘혁신적인 서남표식 개혁’ 4년이 가져온 최대 결과였다. 


조국·정두언 “버티기는, 사람의 도리 아냐”

정재승 “교수로서 미안…학생들 일탈·실수에 돈 매기는 철학 참담”

곽영출 총학생회장 “하루하루 과제 틀어막는 톱니바퀴 된 학생들…
학문보다 시험 잘 보는 방법 공부, 친구 힘들어도 삼십분도 못 내”

모두가 경쟁으로 내몰린 한국사회에서 고고하게 ‘창의성’을 꿈꾸는 모습이 배가 아팠던 것일까? 서 총장의 정책은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을 빚었지만 외부에서는 약간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는 세계 최고 대학을 만들기 위한 혁신적 개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연쇄적으로 이어진 카이스트 구성원들의 죽음은 서남표식 개혁이 가진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낳았고, 카이스트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무한경쟁’ 정책으로 인해 그동안 받아오던 고통을 알리고 서 총장의 정책이 잘못됐음을 질타하고 있다.

총학생회장인 곽영출(물리학과. 07학번)군은 11일 본관 앞 기자회견에서 “서남표 총장이 온 뒤 카이스트는 경쟁 위주로 교육 정책을 바꾸었다”면서 “학생들은 숨 막히는 무한경쟁에 등 떠밀려 하루하루 과제를 틀어막기에 바쁜 톱니바퀴가 되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KAIST 학부 총학생회가 11일 오후 행정동 앞에서 'KAIST 학부 총학생회 기자회견'을 열고 서남표 총장이 교육정책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곽영출군은 특히 “학생들은 오로지 높은 학점을 위해 학문 그 자체보다는 시험을 잘 보는 방법을 공부 한다”며 “그 결과 바로 옆의 친구가 힘들어해도 과제 때문에 삼십분도 낼 수 없다”고 밝혔다.

『과학콘서트』 등의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한 정재승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도 3월30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와 경쟁압력 속에서 삶의 지표를 잃은 학생들에게 교수로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토로했다.

정재승 교수는 “학생들의 일탈과 실수에 돈을 매기는 부적절한 철학 때문에 여러분을 내몰아 가슴이 참담하다”며, “학교는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 안에서 학생들이 학문의 열정과 협력의 아름다움, 창의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도록 장학금 제도를 바꾸고 교수-학생, 학생-학생간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내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 인사들과 정치권도 서 총장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8일 “학생을 ‘공부기계’로 만들려고 수업료로 위협하며 비극을 낳게 한 장본인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 역시 12일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 총장 재임중에 다섯 명이나 떠나갔는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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