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미친 등록금의 나라여”
상태바
“아! 미친 등록금의 나라여”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1.04.11 0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B정권 말 뿐인 공약에 ‘학생들 뿔났다’

[매일일보=송병승기자]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주호 당시 한나라당 제4정책조정위원장(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정부가 4조원에 가까운 돈을 대학 당국에 지원하고, 10만원 이하 기부금을 내면 세금을 공제해주는 등의 방안으로 대학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반값 등록금’은 이듬해 이명박 대통령의 2007년 대선공약으로 채택됐다. 이 대통령이 경선 후보로 참석했던 한나라당 ‘교육복지 분야 정책비전대회’에서 이주영 당시 정책위의장은 “반값 등록금을 통해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대학생들과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 공약을 반겼다. 1000만원에 달하는 1년치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여준다는 말은 등록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대학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어느덧 3년 4개월이 흘렀다.

‘반값 등록금’으로 대학생 마음잡은 MB “내가 직접 말한 적 없다”
대안으로 제시된 ‘취업후 학자금상환제’ 실패…그나마 예산도 삭감

등록금 인상률, 물가상승률의 2.6배…공부·연예 뒷전, 알바하기 바쁘다

산발적이던 각 대학별 등록금 투쟁 동시다발적으로 확산…조직화될까?

▲ 3월 1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정문에서 한 학생이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세종시, 동남권 신공항, 과학벨트가 그랬듯이 ‘반값 등록금’ 역시 말뿐인 공약이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 등록금’ 공약을 자신이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면서 발뺌하는 모습을 보이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9월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대선후보 시절 반값 공약을 내놓으셨는데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정치적으로 공약이 많이 나왔었지만 내 자신이 반값으로 공약을 한 적은 없다”고 말해 참가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장학금 제도를 더 확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자 없이 학자금 융자를 받을 수 있는 쪽으로 확대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등록금 인하와 관련한 내용 보다는 학자금 대출을 늘리는 방안을 강조했다.

‘반값 등록금’의 최초 입안자였던 이주호 제4정조위원장이 방송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한나라당이 2007년부터 추진했던 바 있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자신이 말한 바 없다”는 이유로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반값’의 대안이던 ICL도…

‘반값 등록금’ 공약과 관련해 발을 뺀 정부는 대신 2009년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해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ICL)’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ICL제도는 학자금대출을 원하는 대학생에게 등록금 실소요액 전액(한도 없음)을 대출해주고, 취업으로 일정기준 이상 소득이 발생한 시점부터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는 제도로, 한 학기에 100만원(연간 200만원 한도)씩 생활비 대출도 가능하다.

이 제도 시행 당시 정부는 “ICL 이용자가 1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010학년도 2학기 기준 ICL 이용 학생은 11만7168명으로 같은 해 1학기 보다 겨우 2446명이 증가하는데 그쳐 일반 상환 학자금대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지난해 12월, 30분 만에 307조에 해당하는 예산안을 통과시킨 ‘예산안 날치기’에서 대학생 등록금과 관련한 예산안을 대폭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참여연대와 등록금넷, 민주당 안민석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3대 친서민 정책’ 중 하나로 내세운 학자금 대출 제도인 취업 후 상환제 이자대납 예산안이 지난해 3015억원에서 1898억원 줄어든 1117억원으로 파악됐다.

참여연대는 예산 삭감과 관련해 “정부는 한 해 100만명 이상도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복리 이자난 연령 제한, 상환액 등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이용자가 매우 적자 대상인원을 최소한 (22만 5천여명)으로 추정해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학자금 대출 이자율을 낮출 수 있는 한국장학재단 출연금 1300억원도 전액 삭감 됐으며 대졸 미취업자에 대한 이자지원 사업도 폐지, 취업 후 상환제를 이용하는 학생들에게는 군 복무 중 이자를 면제해 주는 방안도 무산됐다.

차상위계층 대학생 장학금도 2011년 2학기부터 폐지하기로 하면서 예산 배정은 2009년 805억원에서 517억 5000만원(64.3%)이나 줄어든 287억 5000원으로 책정됐다.

참여연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을 공약했지만 반값 등록금 관련 예산은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면서 “지난해 학자금 이자지원 예산도 1000억여원이나 미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 3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우리은행 앞에서 '서울지역 등록금 인상대학 공동행동'에 참석한 한 학생이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뉴시스)
등록금 인상률, 물가상승의 2.6배

지난 10년 동안 국립대학교 등록금은 1.8배, 사립대학교 역시 1.5배 이상의 증가 폭을 보였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학생 1인당 등록금 변동 추이’를 살펴보면 2001년 국립대와 사립대의 1년 평균 등록금은 241만원과 479만원 이었으나 2010년에는 각각 444만원과 753만원이었다.

10년 새 국립대 등록금은 82.8% 사립대 등록금은 57.1%가 오른 것으로 이는 같은 기간 31.5%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무려 2.6배나 더 가파르게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보신당 심재옥 대변인은 “최근 10년 간 숨 쉴 틈 없이 올랐던 대학등록금은 학생과 학부모를 넘어 국민을 옭죄어 왔다”면서 “봄날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기는커녕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던 젊은 영혼의 울음 앞에 모든 기성세대는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심재옥 대변인은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걸고도 발뺌하는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한 책임의 최정점에 있다”며 “‘대학등록금이 너무 싸면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겠냐’며 대학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이 대통령조차 아무 발언이 없으니 스스로 민망한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심 대변인은 “대학교육을 ‘교육’으로 접근하지 않고 ‘상품’으로만 다뤄왔던 국가의 무책임에 대한민국은 ‘미친 등록금의 나라’가 돼버렸다”면서 “부자감세와 4대강사업 등을 철회해 획기적인 교육재정 확충으로 대학등록금을 인하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밝혔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아무 실효성 없는 정부 정책과 해마다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의 횡포를 참지 못한 대학생들은 행동에 나섰다. 4월2일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등록금넷 회원 2000여명은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4·2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를 진행했다.

▲ 3월 11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서울지역 등록금 인상대학 공동행동'에 참가한 각 대학 학생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반값 등록금’이 당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이행할 계획이 없어 보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대련과 등록금넷은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반값 등록금 공약으로 대학생들을 사로잡았지만 4년째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표를 받고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국민 기만을 넘어선 사기”라고 주장했다.

또한 “연간 1000만원의 등록금으로 고통 받던 부모와 자녀들에게 반값 등록금 공약은 희망이었다”며 “즉시 반값 등록금을 구현하고 교육복지를 확대하라”고 강조했다.

매년 각 학교마다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이 올해는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학교에서 일어나면서 조직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4일 교내 대강당 앞에서 ‘채플거부 선포식’을 진행했다. 기독교 미션스쿨인 이대는 채플수업을 ‘훈련학점’으로 지정해놓고 있어 학부생들은 8학기를 수강해야만 졸업할 수 있다.

앞서 이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15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의결된 ‘이화인 6대 요구안’을 학교가 거부하자 31일, 5년 만에 전체학생총회를 얻어 채플 수업 거부에 대한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고려대 총학생회도 지난달 31일 6년 만에 전체학생총회를 열었다. 이날 총회에는 2천여명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등록금 2.9%인상 철회 등 10대 요구안을 결의했다. 이후 고대 총학생회는 지난 4일 요구안 실현을 위해 처장단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면서 총장실이 있는 본관 1층 복도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서강대 총학생회 역시 등록금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30일 22년 만에 열린 학생총회에서 총학은 학교 측 협상안을 거부하는데 합의했다. 학교 측은 2.9%의 인상안을 유지하는 대신 장학금과 학생지원금 확충안을 제시했지만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률이 유지될 경우 누적효과가 발생해 학생들의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해 이를 거부했다.

이밖에 숙명여대 총학도 등록금 문제 등 요구안 실현을 위한 문화제를 열었고 동국대 총학은 지난달 29일부터 등록금 인상률 및 총학의 10대 요구안에 대한 지지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등록금 투쟁은 학생운동의 개념을 넘어서 많은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등록금을 더 올리려는 대학과 이를 막아서려는 학생들 간의 대립의 골은 어느 때보다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등록금 고통 ‘매우 심각’…ICL 불만 52.3%

박선영 “재정지원 늘리고 학자금상환제 수정해야”

대학생들은 등록금 문제로 직·간접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과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이 9월부터 한 달 동안 전국 52개 대학생 162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등록금 문제로 인한 직·간접적 고통의 유형은 ‘부모님이 힘들어 하신다’는 응답이 28.9%를 차지했고 ‘등록금 외 가계지출 감소’가 15.1%, ‘휴학 고민’이 8.8% 등으로 나타났다. 35.8%는 등록금 문제로 인한 고통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시행한 ICL 제도에 대해서도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52.3%로 ‘만족한다’는 응답 비율인 8.9%를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자유선진당은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재정지원을 늘리고 학자금 상환제를 수정하라”며 “교육은 국가와 개인의 미래를 좌우 한다. 부모의 부와 가난이 자식에게 세습되지 않도록 재정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선영 정책위원회 의장은 6일 정책위 성명을 통해 “사립대학이 전체 수입의 2/3를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대학 측은 매년 물가 상승률과 교육재투자를 위해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학생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장은 “학생들은 학업보다는 아르바이트 등에 시간을 뺏기며 방황하고 있다”면서 ‘대학재정의 예·결산안에 대한 감시체계 강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 증가’, ‘MB정부에서 도입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대폭 수정’을 요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