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 많이 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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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 많이 하는 나라
  • 이우열 기자
  • 승인 2018.03.1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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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우열 기자] 최근 예능프로그램인 ‘윤식당’에서 담아낸 식사를 하는 한 가족의 대화 장면이 화제다. “한국은 일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게 골자다.

이들은 “전세계 노동시간에서 1위가 한국, 2위가 멕시코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하루 12시간 이상씩 평생동안 일한다”, “끔찍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내용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먼 곳의 한 식사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이렇게 비춰진다는 것에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어 딸은 부모에게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 원한다. 하루 내 시간의 대부분을 기업을 위해 일하기 싫다”고 말을 잇는다. ‘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바탕된 말인 듯하다. 

우리나라 직장인이라면 이 말을 쉽게 뱉을 수 있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TV 드라마나 영화 등 많은 매체와 주변 지인들을 통해 늦은 밤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자주 접해왔다. 야근, 회식, 휴일 출근 등은 어느샌가 직장인들을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기자의 주변 지인들만 봐도 많은 회사원들이 그렇다. 업무 공백 및 직장 상사의 눈치에 하루 휴가 조차 엄두도 못내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취업준비생들은 저마다 대기업, 공무원 등을 목표로 한다. ‘취업’을 목표로 고된 시간을 달려온 이들이 그것을 이루더라도, 대부분이 ‘사회’라는 집단 아래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몇 년간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이 최대 화두다. 정부는 일과 삶의 균형 실현을 위해 7월부터 단계적으로 ‘주52시간 근무’를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주52시간 근무 관련 제도를 시범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직원인 한 지인은 최근 기자가 “52시간 근무 어때?”라고 묻자 “그렇게 정해져 있긴 한데, 하겠냐?”며 다소 퉁명스러운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상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물론 아직 시범운영이라는 점이 밑바탕 되지만, 정식 시행 이후에도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 분야에 따라서는 잔업을 집에 가져와야만 하는 다른 의미의 ‘재택근무’가 이어질 수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대기업 이외에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에는 꿈만 같은 이야기며,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결국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각 업계는 저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오랜기간 이어져오며 짙어진 ‘일 많이 하는 나라’, ‘일을 많이 해야만 하는 나라’ 라는 인식을 바꾸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 차근차근 의견을 조율함과 동시에,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일과 삶의 균형’이 많은 이들에게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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