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아파트 미계약분 ‘미성년자 당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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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아파트 미계약분 ‘미성년자 당첨’
  • 송경남 기자
  • 승인 2018.02.18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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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남 건설사회부장

[매일일보 송경남 기자] 얼마 전 세종시에서는 미성년자가 포함된 10대 3명이 아파트 미계약분 당첨자로 선정됐다. 이들의 나이는 각각 19세, 17세, 11세였다. 수억원대의 아파트를 구입할 경제적 능력이 없음에도 느슨한 제도 덕분(?)에 당첨자로 선정된 것이다.

미계약분은 당첨자 정당계약과 예비당첨자 계약까지 마쳤는데도 주인을 찾지 못한 물량이다. 청약 부적격자나 자금 조달 실패 등으로 1순위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할 경우 발생하며 청약통장 유무, 청약 가점, 재당첨 제한 등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미계약분 물량은 사업주체 재량으로 공급할 수 있다. 하루빨리 분양을 끝내려는 사업주체들이 자격조건을 최소화하는 건 당연한 이치.

10대 당첨 사례가 나온 세종시 주상복합 단지의 미계약분은 총 74가구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분양 관계자는 주무관청으로부터 나이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집공고를 냈다. 특히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도록 자격조건을 최소화해 74가구 모집에 약 4만4000명이 몰렸다. 이 과정에서 미성년자와 경제적 능력이 없는 20대가 다수 당첨됐다.

미계약분 분양과 관련한 잡음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선착순방식으로 진행한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견본주택 앞에는 2~3일 전부터 텐트를 치고 기다리는 수요자들로 진풍경이 연출됐다. 또 다른 단지에서는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을 주고 앞 번호표를 사고파는 사태도 벌어졌다.

미계약분에 수요가 몰리는 것은 강화된 청약제도에서 기인한다. 8·2 부동산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서는 청약 1순위 지격을 얻으려면 청약통장 가입 후 2년이 지나고 납입 횟수가 24회 이상이어야 한다. 또 이들 지역에서 분양되는 전용 85㎡ 이하 주택은 전량 가점제로 배정된다. 이렇다 보니 1순위 자격이 안 되거나 가점이 불리한 20~30대 수요자들이 미계약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택청약 제도는 1977년 8월 처음 도입됐다. 투기를 막고 아파트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확충하는 한편, 실수요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도입된 청약제도는 지금까지 많은 변화를 거쳤다. 1980년대 재당첨 금지 기간 연장, 청약통장 전매 금지 등의 내용이 포함됐고, 4개였던 주택청약 통장은 1개로 줄었다. 1순위 자격 조건은 정부 정책 기조와 부동산 경기 등에 따라 강화와 완화를 반복했다. 하지만 미계약분에 대한 기준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세종시 미계약분 분양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실수요자도, ‘로또 분양’을 노린 투자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사회 정서를 무시하고 미성년자의 명의를 동원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같은 허점이 있는 제도를 여태껏 손보지 않았던 정부도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내 집 마련은 무주택자에게 평생소원 중 하나다. 무주택자들이 평생소원을 포기하지 않도록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계약분 물량이 그들에게 우선 배정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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