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이 청와대에 건네고 간 ‘평양 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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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이 청와대에 건네고 간 ‘평양 초청장’
  • 박숙현 기자
  • 승인 2018.02.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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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전달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뒤 읽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북한 김씨 일가를 뜻하는 '백두혈통'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은 김여정 특사가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국내외 이목이 집중됐다. 개회식 참석부터 남북 단일팀 응원까지 2박 3일간의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북한으로 돌아간 그녀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을 공식 요청하는, 오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를 남겼다.  이 친서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정하는 것이 우리 정부에게 남겨진 숙제다.

북한의 ‘건군절’ 기념 열병식 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인 7일 김 특사의 방남이 확정됐다. 북한은 열병식을 축소하고 생중계도 하지 않는 등 김 특사 방남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힘썼다. 김 특사가 '특별한' 메시지를 들고 청와대를 찾을 것이라는 예고나 다름 없었다. 이때부터 9일 오후 1시 46분께 김 특사가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전세계 언론은 그녀가 김 위원장의 친서를 가져올지, 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접촉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집중했다.

인천공항에 내린 김 특사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과 함께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20여 분간 환담을 갖고 평창행 KTX에 탑승했다. 명목상 북한의 국가수반인 김 상임위원장이 김 특사를 예우하는 모습은 김 특사의 특별한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들이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북측 경호요원들이 김 특사 주변을 삼엄하게 경호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김 특사는 평창올림픽 개회식 직전 문 대통령이 각국 정상급 인사들을 초청해 마련한 리셉션 행사에는 자리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김 위원장의 특사란 사실이 알려지기 전이라 명목상 대표단 단장인 김 상임위원장만 참석했다. 대신 개회식 본부석에 미리 앉아 있다가 문 대통령 내외가 본부석에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와 함께 가볍게 인사하며 악수했다. 남녘 땅에서 김일성 일가가 우리 정상과 나눈 첫 악수였다.

리셉션 늑장 출석에 5분만 머무르고 떠나 '외교적 결례' 논란을 부른 펜스 부통령은 김 특사 앞줄에 앉아 있었지만 양측은 눈길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반면 김 특사는 선수단 입장 마지막 순서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에 들어오자 문 대통령 내외와 함께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남북미 3자의 입장 차이를 단적으로 세계에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10일 김 특사는 이보다 더욱 결정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오빠의 친서가 담긴 파란색 파일을 들고 청와대를 찾은 것이다. 김 특사는 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자신이 오빠의 특사임을 밝히며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에는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김 위원장의 초청글이 담겼다.

2시간 40분여분간 진행된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김 특사는 "남북한 언어의 억양이나 말은 어느정도 차이가 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데, 오징어와 낙지는 남북한이 정 반대더라"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우스개 소리에 "그것부터 통일을 해야겠다"며 웃음 지었다.

그녀는 문 대통령에게는 "이른 시일 내에 평양에서 뵈었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고 했다. 또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오기가 힘드니 안타깝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 후) 한 달하고도 조금 지났는데 과거 몇 년에 비해 북남관계가 빨리 진행되지 않았나. 북남 수뇌부 의지 있다면 분단 세월이 아쉽고 아깝지만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특사는 앞서 청와대 방명록에 "평양과 서울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서 더 가까워지고 통일 번영의 미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양측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후 일정에서도 이어졌다. 김 특사는 자리를 이동해 저녁 9시 10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첫 경기를 문 대통령 내외와 나란히 앉아 관람했다. 경기 중 단일팀 선수가 일대일 찬스를 만들다 골 획득에 실패했을 때는 문 대통령 내외와 김 특사가 자리에 일어나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김 특사는 11일 출국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와도 오찬을 가졌다. 이날 김 특사 일행은 인천공항에서 자신들이 타고 온 김정은의 전용기 '참매-2'호를 다시 타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2박 3일의 짧은 남행은 이렇게 끝났다. 외신, 특히 북한으로부터 핵미사일 공격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미국의 언론은 "북한의 이방카 트럼프가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워싱턴포스트)라거나 "외교적 댄스라는 종목이 있다면 금메달감"(CNN)이라고 평했다. 이제 세계의 이목은 우리 측의 대북 특사 파견 여부와 3차 남북정상회담의 실현 여부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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