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영 “사람 다쳐야 사고?”…사람 죽었을 때도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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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사람 다쳐야 사고?”…사람 죽었을 때도 당당했다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1.03.03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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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코레일 사장 허준영의 ‘혀’, 허철도 vs 헛철도 vs 혀철도

▲허준영 사장 <사진=뉴시스>

[매일일보=송병승기자] 2009년 3월, 우여곡절 끝에 취임에 성공한 허준영 코레일 사장의 첫 마디는 “앞으로 나를 ‘허철도’로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정치권에서는 “뻔뻔한 헛철도의 말장난”이라고 질타했는데, 취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의 별명은 ‘헛철도’보다 ‘혀철도’가 적합하다는 지적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세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관용어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

고작 9cm뿐이 되지 않는 혀의 놀림으로 인해 사람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의 혀 놀림은 후자에 가깝다.

그는 세치 혀의 놀림으로 천냥 빚을 갚으려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칼날이 되어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두 번 생각을 고려하지 않는 허준영이 세치 혀로 시전해온 ‘혀무공’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발언 문제되자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언론 탓
“광명 탈선 사고는 직원의 잘못으로 인한 인재” 직원 탓

“자꾸 불안감 조성하면 진짜 큰 사고를 불러 올 수 있다” 엄포? 예언?
취임 후 전체 인력 15% 감축…짤린 5천명 중 3천명이 유지보수 인력

지난 2월11일 KTX 광명역에서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KTX 개통 7년 만의 첫 탈선사고였다. 이후 26일 KTX-산천호가 기관 출력 고장을 일으킨데 이어 다시 이틀만인 28일에는 경춘선 전철이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코레일이 운영하는 열차 고장사고는 모두 7차례나 발생했다.

사람이 다쳐야만 사고?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잇따라 발생한 열차 사고와 관련해 “사고는 무슨…사람이 다쳤습니까? 좀 이상신호가 들어오니까 그걸 점검하고 다시 출발한 건데 그걸 가지고 무슨 큰일 난 것 같이… 어디까지나 작은 고장인데…”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허준영 사장은 “비행기 같은 것도 출발 전에 약간의 이상이 있으면 지연 출발하는 게 비일비재하잖아요…자꾸 불안감 조성하고…잘못하면 진짜 큰 사고를 불러 올 수 있다니까…”라고 말했다.
 

▲ 지난 2월11일 KTX광명역에서 발생한 탈선사고 현장. <사진=광명소방서 제공>
허 사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허 사장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는 여론이 쇄도했다. 철도노조 홈페이지를 찾은 누리꾼들은 “부끄럽다”며 “국민의 정서를 무시하는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허 사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정치권도 허 사장의 이번 발언에 대해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다”며 질타에 나섰다. 민주당 김현 부대변인은 허 사장의 이번 발언에 대해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코레일 사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위험천만한 발언을 했다니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비전문가 출신인 허준영 코레일 사장이 혹여라도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경찰청장 시절의 사고로 현 상황을 보고 있다면 더 큰 사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덧붙였다.

진보신당 강상구 대변인은 “코레일 사장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하는 발언으로, 정확히 말해 최근 잦은 사고를 초래한 장본인은 허 사장 본인”이라고 지적했다.

강 대변인은 “경찰청장 시절에는 농민을 죽이고 코레일 사장이 돼서는 철도노조 죽이기에 나서더니 이젠 국민 목숨까지 우습게보고 있다”며 “허 사장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면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KTX사고, 별일 아니라는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더 큰사고가 나기 전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규탄했다. 우 대변인은 “허 사장의 무책임과 뻔뻔함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면서 “승객의 안전과 직결된 아찔한 탈선 사고까지 실제로 일어났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냐”며 어이없어했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자신의 세치 혀에서 나온 말이 이처럼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비난이 쇄도하자 28일 오전 정부 대전 청사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안전 운행을 최우선으로 해 국민이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하겠다”고 수습에 나섰다.

그는 이날 “국민이 지나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라고 언론 탓을 하는데 이어 “광명 탈선 사고는 직원의 잘못으로 인한 인재로 생각하며 이에 대해서는 입이 열이라고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탈선 사고의 모든 원인은 직원이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고, 내 잘못은 아니지만 직원이 잘못했으니 사과한다는 이야기인데, 이에 대해서는 그가 취임한 이후 벌여온 경영활동의 내용을 따져봐야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허 사장은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한 후 구조조정을 통해 약 5000여명을 정리해고 했으며 이 중 시설 유지 보수 관련 인원이 전체의 60%인 약 3000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시설 유지 보수에 필요한 인원을 대규모 감축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면 결국 사고원인을 자신의 경영행위에서 먼저 찾는 것이 상식적인 반응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현장 직원 탓으로 모는 듯한 발언을 내뱉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민노당은 “국민의 안전보다 이명박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침에 부응해,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는 자르고, 노조 잡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이런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며, “국민의 생명도, 노동자의 생명도 하찮게 보는 허 사장은 ‘국민의 발’과 다름없는 코레일 사장 자격이 없다”고 성토했다.

진보신당 역시 “코레일 전체 인력의 15%인 5천여명을 감축하고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업체에 넘긴 장본이 허 사장인데 그래놓고 사과를 한답시고 직원 잘못을 거론했다”며 “잘 한 것은 내 탓이고, 잘못한 것은 남 탓하는 습관이 대통령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진보신당은 또한 “근본대책 제시 없이 직원 핑계 대는 사과 시늉으로 이번 일을 넘기겠다는 생각이면 차라리 옷을 벗는 게 좋겠다”고 주장했다.

▲ 지난 2월21일 밤 경북 영천~안동역 간 궤도 검측차에 직접 탑승하여 야간 철도현장 안전점검을 벌이고 있는 허준영 사장. <사진=코레일 보도자료>
사람 죽었을 때도 당당

사실 허준영 사장의 안일한 혀 놀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경찰청장으로 재직 중이던 허 사장은 농민시위가 발생하자 이를 강경하게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시위 농민이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강경진압으로 농민이 사망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사퇴 압력을 받았음에도 그는 “결코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 끝에,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 이어 농민단체와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의 사퇴 요구가 나오고서야 거취를 정리했다.

허 청장은 2005년 12월29일 퇴임사에서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고, 평화적인 집회시위문화 정착과 경찰을 더욱 업그레이드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변했다.

그는 특히 “연말까지의 예산안 처리 등 급박한 정치 현안을 고려, 평소 국가경영에 동참하는 치안을 주창했던 저로서는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퇴를 결정했다”고도 말했다.

끝까지 ‘사퇴불가’를 고수하다가 쫓기듯 자진사퇴한 허준영의 세치 혀는 몇 개월이 못가 다시 발동을 시작했다. 그는 경찰청장 사퇴 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숨진 농민들은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과 70대 노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일로 경찰청장이 물러난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며 “청와대에서 ‘예산안 처리를 위해 민노당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해 사퇴요청을 받아들였다”고 사퇴 사유에 대해 언급했다.

허준영의 말을 풀이해 보자면 시위 때 사망한 사람은 어차피 아프고 늙어서 얼마 안가 죽을 사람들이었다는 것으로, 그런 일로 인해서 경찰청장을 사퇴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퇴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 발언이 지탄 받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시 민노당은 그의 발언에 대해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으로 진정으로 책임지고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라며 “(사망한 사람들은) 경찰의 명백한 폭력에 의한 직접적 사인임에도 단지 정치적 이유로 물러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논리”라고 성토했다. 


간략하게 돌아본 ‘풍운아(?)’ 허준영의 생애

낙하산 논란에 “기차 말고 낙하산 타고 올 걸” 지칠줄 모르는 입담 과시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특이하게 1980년 제14회 외무고시를 통과한 외교관 출신이다. 프랑스대사관과 외무부 정보문화국을 거친 허준영은 1984년 부산 남부경찰서 대공·경비과 과장을 맡으면서 경찰이 됐다.

이후 1988년부터 1993년 사이에 홍콩영사관 영사와 경찰청 국제협력실장으로 외교가에 잠시 컴백하기도 했지만 2005년 12월 경찰청장에서 불명예퇴진하기 전까지 쭉 경찰에서만 경력을 쌓았다.

허준영은 경찰청장 사퇴 이듬해인 2006년 7월 재보선을 계기로 정치에 도전장을 내민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의 선택은 의외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었다. 여기에는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와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는 출신성분이 가장 큰 변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성북을 보선에 공청을 신청한 그는 참여정부 내에서 경찰청장을 지낸 여권출신 인사로 차기 대선에서 전·현직 경찰표를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 때 유력한 ‘카드’로 점쳐지기도 했지만 결국 참여정부 핵심 요직에 몸 담았다는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치러진 2008년 4월 총선에서 그는 서울 중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에 다시 도전했고,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선거캠프에서 실시한 전화설문 방식의 사전선거운동이 선거법 위반으로 적발되면서 다시 그의 발목을 잡는다.검찰은 허준영 예비후보의 선거운동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결국 선거운동원은 실형을 선고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한나라당은 중구를 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 나경원 의원을 내려보냄으로써 허준영의 정치에 대한 꿈은 다시 물거품이 되고 만다.

두 번의 정치도전에 실패한 그는 오랜 낭인생활 끝에 2009년 3월 철도공사 사장의 자리에 앉는다. 철도공사 노조는 “낙하산·코드인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취임식장으로 연결되는 역 입구를 봉쇄해 취임식이 1시간 가량 지연 됐다.

노조의 반발 끝에 어렵사리 취임식을 가진 허준영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기차말고) 차라리 낙하산을 타고 올걸 그랬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철도 비전문가라는 지적에 대해 “기관사하러 온게 아니”라면서 “앞으로 ‘허철도’ 라고 불러달라”고 웃음을 보였다.

잠시 쉬고 있던 그의 세치 혀가 빛(?)을 발산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민노당은 허 사장의 이 발언에 대해 “자격 없는 사람이 뻔뻔하기까지 하면 무슨 소리를 못하나 싶다”며 “그의 허풍은 결국 허철도가 ‘헛철도’ 임을 확인시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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