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검에서 재벌·여당 프랜들리 장관으로 버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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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검에서 재벌·여당 프랜들리 장관으로 버전업
  • 변주리 기자
  • 승인 2011.02.2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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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불법 수사지휘 의혹 제기된 이귀남 법무장관의 ‘지조’

[매일일보=변주리기자] “반으로 줄어들었으나 처음과 같은 향기를 머금은 차와 같이 한결 같은 검사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 14일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불편부당한 자세로 검찰권을 공정하게 행사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이렇듯 좋은 교훈을 선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법으로 수사를 지휘했다는 의혹이 한 언론에서 제기됐다. 스스로 ‘불의와 타협’하여 법무부와 검찰을 욕보이게 한 것이다.

이미 취임 초부터 ‘떡값검사’라는 오명을 얻고 있던 이귀남 장관은 이번 의혹으로 ‘비지니스 프랜들리 장관’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권력과 타협하는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가 머금은 향기는 그리 좋은 향기는 아니었다.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 “살아있는 대통령 수사보다 어려웠다
재벌은 교묘히 수사 방해했고, 법무부도 우리를 지치게 했다”


한나라 “직접 지휘했다는 증거 있나? 상황파악 전화도 못하나?”
야권 “철저한 의혹 규명 필요”…경실련, ‘특별감사청구서’ 제출

▲ 14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종합청사에서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 <사진=뉴시스>

이귀남의 ‘악취’를 밝히다

지난 17일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불법 수사지휘’ 의혹이 제기됐다. 이 장관이 법무부의 한 간부를 통해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 서부지검 남기춘 지검장에게 전 한화그룹재무책임자 홍동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 말고 불구속 수사토록 종용하는 ‘불법 수사지휘’를 했다는 보도가 친정부성향 매체인 <조선일보>를 통해 터져나온 것이다.

당시 서부지검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한 위장계열사 채무 3500억원을 그룹 계열사들에 지급보증하게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홍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간부로부터 이 장관의 ‘지시’를 전해들은 남 지검장은 “수사 지휘를 하려면 검찰총장을 통해 서면으로 하라”며 이를 거부했다. 이후 지난달 20일 홍씨를 비롯한 한화그룹 전· 현직 임직원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검찰청법 8조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검찰에 대해 전반적인 통제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구체적인 개별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에게 문서를 통해 의견을 제시토록 하게 돼있다. 이는 장관의 부당한 간섭을 막고, 정치권 등의 외압을 차단해 검찰의 수사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만약 이 장관이 지시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엄연히 불법이다.

이날 <조선일보> 보도가 나간 뒤, 여러 언론들은 앞 다퉈 이 소식을 전했고 정치권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법무부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어 “서부지검에 그러한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이 없으며, 따라서 조선일보의 이 같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 “추측에 근거한 조선일보 보도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장관의 악취 나는 의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첫 의혹을 제기한 바로 다음날, 이 장관의 또 다른 불법 수사지휘 의혹을 제기했다. 역시 남 전 지검장이 울산지검장이었을 당시 그가 맡았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에 대한 선거법 위반사건 수사에 이 장관이 불법으로 개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6· 2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소속 울산지역 구청장 3명과 한나라당 관계자 시· 구 의원들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는데, 이 사건의 수사 지휘를 남 전 지검장이 맡고 있었다.

한화그룹 수사 관련 의혹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법무부의 한 간부가 남 전 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소시점을 하루 늦춰줄 것을 요청했고, 남 전 지검장 역시 이때에도 요구를 거절했다는 것이 보도의 골자이다.

<조선일보>는 법무부 간부가 이러한 요청을 한 데에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지역 정치권 인사들이 ‘검찰 수사 때문에 선거를 망치겠다’는 말들을 하고 다녔고, 이런 불만이 청와대나 정치권을 통해 법무부에 전달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수사 지휘는 법무부 장관→법무부 간부→남 지검장의 경로로 전달됐지만 장관이 그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입김이나 압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남 지검장은 왜 떠났나?

<조선일보>는 “남 지검장은 한화그룹 전· 현직 임직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인 지난달 28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가 발표되기 전 돌연 사표를 던지고 검찰을 떠났다”며 그가 사표를 내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의혹을 던졌다.

▲ 이귀남 장관 불법 수사 지휘 의혹인 진앙지인 남기춘 전 지검장. <사진=뉴시스>

이와 관련해 다시 이튿날인 18일 이 장관이 법무부 간부들 앞에서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이던 남 전 지검장의 교체를 공공연히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가 터져나왔다. <한국일보>는 남 전 지검장이 홍씨에 대한 영장 재청구 의지를 꺾지 않자, 한화그룹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에 부담을 느낀 이 장관이 남 전 지검장의 교체를 거론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 같은 의혹은 그 다음날인 19일 남 전 지검장의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사실로 확인됐다. 남 전 지검장은 “왜 사표를 냈냐”는 질문에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에 비판이 제기됐다. 지휘관이 자리에 연연할 수 있나. 외길이었다”고 밝혀 외압을 받았음을 암시했다.

한편 이 전까지 입을 다물던 남 전 지검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이 장관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맞다”고 대답해 법무부의 수사 개입 의혹 파문은 더욱 커졌다.

남 전 지검장은 법무부가 수사에 개입했는지 여부를 재차 확인하자 “그렇다고 봐야지”라며 “살아있는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재벌은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했고, 법무부도 우리를 지치게 했다”고 말했다.

경실련, 특별 감사 청구논란

이 커지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지난 22일 이귀남 장관의 불법적인 검찰 수사개입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에 특별 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경실련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 확립을 위해 그리고 법과 정의를 위해서도 이귀남 장관의 검찰에 대한 수사개입 의혹은 그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특별감사 청구의 이유를 밝혔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불법수사 지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는 법을 위반하여 직권남용으로 검찰 수사에 개입한 것이며, 검찰의 수사권 독립을 저해하는 행위로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사항이라고 주장이다.

경실련은 특히 이번 의혹과 관련 일각에서 “보도를 자세히 보면 법무부 장관이 직접 등장하진 않는다”며 이 장관의 개입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이 장관을 둘러싼 두 가지 의혹 모두 법무부 간부가 지시한 것이지만 법조계에서는 검찰과 법무부 조직 특성상 이 장관의 지시 또는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는 행위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실련은 “논란이 된 사건들은 재벌그룹의 로비가 맹렬했거나 선거를 앞 둔 한나라당의 반발이 컸던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였다”며 “외압으로부터 검찰을 보호하고 수사권 독립에 앞장서야 할 법무부 장관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의 뜻대로 검찰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려 했다면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지원사격

그러나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한나라당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이 장관의 불법 수사지휘 의혹이 제기된 후 당 차원에서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던 가운데 23일부터는 아예 소속 의원들의 본격적인 지원 행보가 시작됐다.

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23일 BBS라디오 <전경윤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이번 의혹은) 조선일보가 부추기는 그런 좀 추한 모습”이라며 오히려 의혹을 보도한 언론을 공격했다.

그는 “남기춘 검사장이 울산 검사장, 서부 검사장을 할 때 직접 전한 게 아니라 법무부 중간 간부에게 상황을 파악했다고 볼 수도 있고 조선일보 표현대로 수사 압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보도를 냉정하게 읽어보면 법무부 장관이 직접 등장하진 않는다”고 강변했다.

주 의원은 이어서 “저도 검사 생활을 할 때 그런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사실 관계의 통화내용을 가지고 법률상의 수사지휘라고 단정하면서 법무부 장관이 불법행위를 했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의혹에 대한 물타기를 시도했다.

2월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이 시작된 24일에는 한나라당의 ‘지원’이 더욱 노골적이었고, 이귀남 장관의 태도는 더없이 당당했다.

이날 이군현 의원이 ‘불법’이라는 말을 쏙 뺀 채 “여러 가지 수사지휘와 관련해 말이 많다”며 직접 ‘소회’를 밝혀달라고 하자 이귀남 장관은 “일선 검찰청에 검찰총장을 거치지 않고 수사지휘를 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미리 준비한 듯 “실무자들이 지방검찰청 및 지청과 사안에 대해 협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운을 떼며 이 장관의 입장을 옹호하는 질문을 이어갔고, 이 장관은 “저는 국회 출석을 해서 검찰 사무 전반에 대해 답변할 의무를 지고 있어 수사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업무”라며 불법 수사 지휘가 아닌 ‘상황 파악’이라고 변명했다.

이군현 이원은 한발 더 나아가 “(법무장관을 문제 삼는다면) 다른 장관들도, 교육부 같으면 시도교육청과 협의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 장관의 변명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야권, 질타 한 목소리

반면 야권은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이 장관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이 장관은 검찰총장 몰래 이렇게 수사에 불법 개입하는 것 자체가 불법임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 대변인은 “그럼에도 이 장관이 한화그룹 전 재무책임자를 보호하려고 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한화그룹과 부당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거래가 있지 않고선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법치국가’로서의 국격을 강조하며 “이러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적 탄식이 그치질 않는 것”이라고 탄식하면서 “재벌과 권력에게만 ‘따뜻한 법치’를 실현하는 나라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철저한 의혹규명을 거듭 강조했다.

진보신당 강상구 대변인은 과거 삼성그룹의 불법로비 사건의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가 이 장관을 이른바 ‘떡값검사’로 지목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강 대변인은 “국민이 원하는 건 비즈니스 프랜들리한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며 “이 장관이 왜 유독 한화그룹 사건을 그렇게 꼼꼼하게 챙겼는지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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