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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책 성공의 길은 디테일에 있다

[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꼬박 내는 월세 28만원이 아까워 전세족으로 갈아타려고 노력중이다. 차근차근 모은 목돈에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까지 받으면 그래도 지금 있는 곳보다는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요 며칠 전셋집을 알아봤다. 그러나 전세대출을 해주는 괜찮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말에 마음씨 좋은 집주인과 엘리베이터가 있고 정남향에 개별남방까지 되는 집을 찾았다. 그러나 이곳은 ‘전세자금대출’이 불가한 곳이었다. 방문하기 전 이미 대출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집주인을 만나면 동정에 호소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이곳은 등기부등본상에 근린 생활 시설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이나 미용실처럼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 생활의 편의를 돕는 ‘상가’인 근린생활시설일 경우 주택 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을 수는 있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버팀목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는 꽤 오래전부터 원룸을 구하는 세입자들에게 불만 사항 중 하나로 꼽혀왔다. 집주인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어째서 주택으로 등록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집주인은 “지금 상가 임대 수요가 없어 원룸으로 했지만 나중에 상가 건물로 다시 이용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근린생활시설이 주택보다 주차 등 각종 규제가 적고 원룸 수 늘리기에 용이하다는 점도 이유다.

지난 10월 한국도시연구원이 내놓은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및 주거빈곤 가구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1인 청년가구 중 고시원 등 주택이 아닌 곳에 사는 비율이 1995년 0.4%(866가구)에서 2015년 9.8%(3만8000여 가구)로 늘었다. 원룸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느는데 공급자는 나름의 이유로 불법 개조해 주택을 공급하고 있고 지자체는 일일이 단속도 못하고 있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불법 용도변경 건축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든지 규제를 풀어 이들에 대한 전세자금대출 지원도 고려할지 실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취재를 하다 보니 정부 부처에서 구체적인 정책안을 마련하고 이것이 국회에서 통과한 뒤 유예기간 등을 거쳐 국민 실생활에 적용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올해 대폭 인상된 최저임금에 대한 부담을 해소하려 마련한 ‘일자리안정자금’ 정책의 경우도 그렇다. 정부는 안정자금 혜택을 받는 대상을 어디까지 할지, 어째서 4대 보험 미가입자는 안되고 사업 기간은 1년밖에 안되는지, 정책을 소프트랜딩 시키기 위한 향후 대책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 부처부터 국회 상임위,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 정책을 탄생시킨다.

그런데도 막상 정책이 현실에 잘 녹아들기란 쉽지 않다. 안정자금을 신청하러 왔다가 보험 가입 조건으로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 영세 사업자들이 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근로자가 최소한으로 받을 임금 기준액을 올리고 근로시간도 단축하는 정책이 오히려 고용을 위협해 근로자의 눈물로 돌아오기도 한다. 국민의 애로사항까지 귀 기울이는 세심한 정책 구상이 필요한 때다.

박숙현 기자  unon@m-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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