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도, 노숙도 삶의 구렁텅이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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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도, 노숙도 삶의 구렁텅이는 아냐”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1.01.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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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겨울 밤 영등포역에서 만난 삶과 희망 이야기

[매일일보=송병승기자] 올 겨울이 작년에 비해 평균기온은 오히려 조금 높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최근 서울지역 최저기온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뜨린 한파가 10여일 째 이어지면서 체감 기온은 그 어느 때보다 춥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지독한 한파에 얼어 죽은 사람이 나왔다는 보도가 귓전을 때린다. OECD 회원국, G20정상회의 주최국으로서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했다는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 디자인수도’라는 서울의 뒷골목은 여전히 춥고 고달프다.

역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혹은 돌아오기 위해 찾는 유동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 유동의 공간에서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일보>은 19일과 20일 이틀 밤에 걸쳐 영등포역 주변에서 한파와 싸우며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한겨울, 쪽방 구할 능력도 안 돼 노숙하는 사람들…

“이들도 서로 배려하며 자기 영역 안에서 살아간다”

해가 지고 어둠이 어스름하게 내려앉는다. 영등포역과 백화점들의 화려한 조명이 켜진다. 이내 다시 해가 뜬 것처럼 주변은 밝아진다. 하지만 햇볕처럼 주변을 밝힌 화려한 조명에 햇볕이 전해주는 것과 같은 온기는 단 한 줌도 없다.

쪽방도 못 구하는 사람들

영등포 역사 왼쪽 편은 이른바 쪽방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쪽방촌은 이미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겨울철만 되면 정치인들과 많은 언론들이 방문해 그곳의 현실을 알리고 있다.

인근에 자리한 광야교회에서는 쪽방촌 사람들에게 식사와 옷가지 등을 제공하며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 저녁시간이 되자 광야교회 앞에는 사람들이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식사가 끝나자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쪽방조차 구할 능력이 되지 못하는 서너 명의 사람들은 인근에서 쓰레기더미를 태우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 한파가 다시 찾아 온 밤. 작은 불씨의 온기에 의존해 밤을 보내고 있는 영등포의 노숙자들. 처연한 그들 뒤로 보이는 대형 쇼핑몰의 빌딩이 더욱 높아 보인다.


옆으도 다가가 “같이 불을 쬐도 될까요”라고 묻자 “아 그럼 쬐슈. 인제 불도 다 죽었구만”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동네 사는 사람 같지는 않은데 뭐하는 사람이슈? 딱 보니 기자 양반이시구만”

많은 취재진이 거쳐 갔는지 먼저 말을 꺼내고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흔 두 살의 김씨는 7년전 이 곳에 왔다. 한식 주방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1998년 IMF 당시 직장을 잃고 카드빚이 불어 강원도에서 이곳으로 도망치듯 왔다고 했다. 그는 돈이 생기면 찜질방 등에서 잠을 자고 그조차도 못하게 되면 노숙을 한다.

쪽방촌 인근에서는 젊은 나이 축에 속하는 김씨는 일용직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일용직조차 구하기 어렵다.

“새벽에 노가다라도 뛰려고 나오는 거지. 하지만 날이 추워지니까 요즘은 그것도 없어. 그냥 여기 마실 와서 형님들하고 소주나 한잔 먹고 들어가는 거지. 사는 게 쉽지 않아”

쓰레기 더미를 태우며 불을 지피는 일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작은 가스통이라도 들어있다면 사고는 순식간이다. 이날 밤도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인근 파출소에서도 노숙자들이 불을 지피며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온기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을 두고 매정하게 불을 끄고 올 수 있는 입장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모와 오천원

김씨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한 중년의 여성이 팔을 잡는다.

“삼촌 놀다가. 아가씨 있어” 쪽방촌 인근에는 홍등가가 형성되어 있다. 그곳에서 호객 일을 하는 이모다.

“이모 갑자기 또 날씨가 추워졌죠?”

“말도 못해 칼바람 부니까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근데 나 이모 아니야. 내가 벌써 육십 두 살인데”

예순 둘의 이모는 화곡동에서 매일 밤 7시에 영등포로 나와 11시 30분까지 호객 일을 한다. 한번 손님이 생길 때마다 이모에게 돌아가는 돈은 오천원.

“요즘은 공치는 날이 더 많아. 차비나 벌면 다행이지”라며 이모가 한숨을 쉰다. “한 오년 전만해도 살만했어. 요즘은 백화점 들어서고 뭐 들어서고 더 좋아졌는데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더 죽을 맛이야”

대화를 끝내고 역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이모 쪽으로 가는데 이모가 걸어온다. 발걸음이 가볍다. 이모의 뒤엔 한 청년이 따르고 있다.

이모는 그 밤 오천원을 벌었다.

영등포역사, 그들의 문화

영등포 역 안으로 들어가자 더 많은 노숙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역사 안 의자에 앉아 있거나 이미 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도 있다.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역사 안에 활기가 돌며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여 든다. 매주 목요일이면 이곳에 나와 노숙자들에게 따듯한 커피를 나눠주는 사람들이다. 한 교회 교인들이 시작한 봉사활동은 이제는 교회를 떠나 봉사의 마음을 가진 이들이 모여 3년째 진행 중이다.

커피를 나눠주던 한 남성은 “3년 동안 이 일을 하다 보니 늘 보이던 분이 안계시기도 하고 또 안보이시던 분이 나타나기도 한다”면서 “그래도 예전 보다 노숙하시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다행이다”라고 설명했다.

갈 곳 잃은 노숙자들이 많이 생활하는 영등포역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여성이나 장애인에게는 시비를 걸거나 술주정을 부리지 않는 것, 무료 배식 시간이 되면 노인들의 밥을 먼저 챙겨 주는 것 등 무질서해 보이는 그 곳에서도 서로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영등포 역사 내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노숙자들.

밤 11시가 지나자 많은 노숙자들이 잠을 청했다. 의자에 앉아서 쪽잠을 자는 사람. 냉골바닥에 그대로 몸을 누인 사람. 그나마 이부자리가 있어 그 바닥에 박스를 깔고 침낭을 덮은 사람. 각자 가지고 있는 삶의 짐과 행색은 각양각색으로 달랐지만 잠든 이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고된 삶의 모습이 묻어났다.

인근 상담보호센터 주 3회씩 영등포역에 나와 거리 상담을 해주고 노숙자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사회복지사는 “이들이 근본적으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했다.

그는 특히 “이곳은 언론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삶의 구렁텅이가 아니”라며, “많은 사람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이곳의 노숙자들을 바라보지만 이곳 사람들도 서로 배려하며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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