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삼성전자 ‘부당해고’ 1인 시위하는 박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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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삼성전자 ‘부당해고’ 1인 시위하는 박종태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1.01.13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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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게 정의’인 나라에서 “정의가 이긴다” 믿는 이들

[매일일보=송병승기자] 한국인 중에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故이병철 창업주 시절부터 시작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현재까지도 삼성의 ‘포기할 수 없는 끈’이다.

하지만 거기에 ‘조약돌’을 던지던 사람은 계속 있어왔고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였다. 최근 철옹성 같은 삼성에 돌을 던지는 이가 또 한 명 늘었다. 지난해 11월 말 삼성전자에서 해고된 박종태씨다.

삼성에서 23년간 근무하며 젊음을 바친 그는 지난해 ‘징계해고’를 당했다.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복직을 외치고 있는 박종태씨는 현재 수원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1월12일. 그 현장에 <매일일보>이 함께 했다.  

노사협의회 사측위원 뽑힌 게 화근? ‘여행’ 불참했다고 징계
사원들 고충·애로사항·복지 개선 건의 계속하자 위원직 박탈

해외 보내려다 여의치 않으니 ‘왕따’ 시작, “노조 만들자” 글 올렸더니
곧바로 징계 해고…삼성 “재고 여지없고, 징계해고이니 복직은 어렵다”

박종태씨는 지난해 12월23일부터 수원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해고된 지 한 달여 만에 시작한 1인 시위. 그는 자신의 ‘부당해고’ 주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원들의 점심, 저녁시간에 맞추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겨울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고 눈까지 내려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피켓을 들고 현장에 서 있다.

▲ 수원 삼성전자 중앙문 앞에서 '부당해고'를 외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박종태씨

발단은 ‘여행 불참’이었다

박종태씨는 1987년 3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수원사업장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에서 근무했다.

2003년 3월 대리로 승진한 박씨는 2007년 11월 삼성전자의 ‘한가족협의회’ 사원측 위원에 뽑혔다.

한가족협의회는 삼성전자 사원들과 사측간의 복지개선, 근무환경 개선 등의 의견을 교환 할 수 있는 협의체로, 다른 회사에서 노조와 사측 간의 협상 채널인 노사협의회에 준하는 조직이다.

박씨는 2008년 6월 경 한가족협의회에서 1년에 한번 꼴로 진행하는 협의원 사기 증진 차원의 여행에 불참했다.

당시 조직 개편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불필요한 돈을 쓰면서까지 여행을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 돈으로 차라리 어려운 동료들을 돕자는 것이 박씨의 여행 불참 이유였다.

하지만 회사 측은 여행 이후 8월 경 징계 위원회를 열고 위원인 박씨가 여행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위원 자격을 2달간 정지했다.

박씨는 자격 정지에 개의치 않고 사원들의 고충이나 애로사항 복지 개선 등을 건의했고 이를 경영진에게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결국 박씨는 2009년 2월 협의회 징계에서 위원직을 상실했다.

브라질, 러시아 그리고 ‘왕따’

한가족협의회 사원위원 자리에서 쫓겨나고 반년이 지난 2009년 8월. 박씨는 갑작스럽게 브라질 출장 업무지시를 받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불가 의사를 밝혔으나 회사는 그에게 감봉 6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징계에 불응한 박씨는 지난해 5월 삼성과 한가족협의회를 상대로 감봉처분과 근로자 위원면직 결정에 대한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이 진행되던 그해 7월 회사는 러시아 출장을 지시했다. 박씨는 다시 한 번 건강상의 이유로 불가 의사를 밝혔고 그러자 7월28일 그에게 직무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 이른바 '왕따근무' 중이던 박종철씨. 책상 위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직무정지 처분과 함께 그의 자리는 그룹장 옆으로 옮겨졌다. 사내 메일은 차단되었고 개인 사무용 컴퓨터 또한 지급되지 않았다. 동료들과의 접촉도 원천 차단되어 화장실을 갈 때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박씨에 대해 ‘권고사직’을 하는 대신에 ‘알아서 나가라’는 회사차원의 ‘왕따’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왕따 근무’로 박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의사의 권유로 정신과 병원을 찾게 되었다. 현재도 그는 우울증 치료중이다.

15분 만에 삭제된 글

‘왕따’가 시작되고 3개월 여가 흐른 뒤인 지난해 11월3일 박씨는 사내 게시판에 ‘노조를 건설하자’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등록버튼을 누른지 15분 만에 바로 삭제됐다. 19일 다시 2차 글을 게재했지만 이마저도 곧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박씨는 11월26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사유는 회사 기밀유출, 허위 사실 유포, 업무지시 거부 등이었다.

해고된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박씨는 아직 실업급여 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실업급여 적부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박씨는 현재 지인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근근히 유지하고 있다. 박씨의 부인은 취미생활로 하던 아크릴 수세미 만들기를 부업으로 삼아 생활비를 조금씩 보태고 있다.

▲ 박종태씨의 1인시위 현장에 함께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 “글로벌 경영? 노사 관계는 봉건시대”

12일 <매일일보>이 찾아간 박씨의 1인 시위 현장에는 스테디셀러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저서로 잘 알려진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과 박종태씨보다 앞서 ‘삼성의 무노조경영’이라는 철벽에 조약돌을 던져온 삼성일반노조 김성한 위원장이 함께 했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데 (삼성 사원들이)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며 "이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아픔“이라고 지적했다.

홍 위원은 “사람들은 억압당할 때 영혼이 훼손된다”며 “젊었을 때는 굴종하지 않으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변화하는 것이 착찹하다”고 심경을 전했다.

또한 홍 위원은 “(무노조 경영 같은) 이런 일은 유럽사회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라면서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영을 떠들고 있지만 정작 노사관계는 중세 봉건사회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정의가 이긴다”

갑작스러운 해고, 그리고 실업급여도 나오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생계유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박종태씨는 “꼭 이기는 것이 정의가 아닌, 정의가 이긴다”는 말과 함께 마음을 다잡고 있다.

▲ 박종태씨와 삼성의 관계는 아직 '빨간불'이다.
박씨는 “1인 시위하는 나의 진정성을 사원들이 알아봐줄 때 가장 힘이 난다”며 “한 여사원은 따듯한 음료를 건네기도 했고, 남자 사원은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씨의 1인 시위가 시작될 때부터 돕고 있는 김성환 삼성 일반노조 위원장은 “사원들이 회사의 눈치를 보는지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하지만 사원들이 점심시간에 길을 가면서 유심히 적힌 글을 살펴보고 자기들끼리 ‘삼성전자 너무 하네’ 등의 말을 하면서 지나가곤 한다”고 1인 시위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전했다.

한편 삼성전자 홍보실 관계자는 박씨의 복직 가능성과 관련해 “재고의 이유는 없다”라며 “회의 후 결정된 징계해고이고, 이의 신청 후 다시 회의를 해 결정했기 때문에 복직은 어렵다”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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