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계의 마이더스’ 박근혜, 숨만 쉬어도 대권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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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계의 마이더스’ 박근혜, 숨만 쉬어도 대권행보?
  • 이한듬 기자
  • 승인 2010.12.23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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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한 ‘미래권력’, 일거수일투족에 정치권 촉각…“이제는 입 열 때”

[매일일보=이한듬 기자] 한 여성 정치인이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의정활동의 내용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지만, 유독 그에게 만큼은 개인적인 언행이나 소소한 일상사까지 정치권과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가히 연예인을 방불케 한다.

예상했겠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야기다. 그의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는 늘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따라다닌다. 여기에는 그가 유독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라는 점도 큰 몫을 차지한다.

어찌보면 ‘침묵은 금, 웅변은 은’이라는 속담이 가장 적절하게 적용되는 살아있는 사례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이제 침묵은 보여줄만큼 보여줬으니 이제 웅변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마이더스’는 손만 대면 뭐든지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능력을 얻었다가 낭패를 본 끝에 탐욕을 뉘우쳤다는 한 욕심쟁이 왕의 이름이다.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으로, 박 전 대표를 향해 “이제 입을 열 때”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이다.

‘박근혜표 복지’ 발표에 박희태 의장 “오늘은 우리가 존경하는 유력한
‘미래권력’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취임하는 날” 찬사

야권 “비전 제시 무의미한 것은 아니나 ‘박근혜식 복지국가’는 치사해”
“날치기로 복지예산 삭감에 침묵 일관, 책임 있는 지도자 할 일 아냐”

박근혜 전 대표는 12월20일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을 발표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자신의 복지 비전을 밝히고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되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은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별로 난립해있는 사회보장제도를 사회보장기본법을 기초로 통합 관리해 정책의 연계성과 연속성을 보장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또 소득 보장 중심, 공급자 중심인 현행 복지체계를 수요자 중심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로 바꿔 국민들의 복지 만족도를 극대화시킨다는 내용을 담았다.

▲ 지난 12월 20일 열린 사회보장 공청회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박근혜표 복지’ 런칭, 대권행보 시작?

박 전 대표는 이날 공청회 인사말을 통해 “이제 우리 경제에 걸맞은 복지 시스템을 갖출 때가 됐다”며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되는 새로운 모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복지는 경제와 사회의 전체 틀에 맞물려 함께 가는 것”이라며 “지금 정책의 틀을 잘 짜서 복지 지출이 후세대의 부담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보장기본법을 개정하면 복지 패러다임이 미래 선진형으로 전환되고, 흩어지고 다원화된 복지 정책이 효율적으로 통합될 것”이라며 “시대 환경 변화에 탄력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현행 사회보장제도는 구시대에 만들어진 틀이기 때문에 현금 급여 중심이고 생애 주기별로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등 사각지대가 많다”며 “이런 틀로는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와 양극화 등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오늘 제안하는 한국형 복지모델의 핵심은 선제적·예방적이며 지속가능하고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통합 복지시스템”이라며 “국민이 어려움에 내몰리지 않도록 예방하고 똑같은 돈을 써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틀을 가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숨만 쉬어도 어김없이 “대권행보”

박 전 대표가 자신이 발의하는 법안에 대해 직접 공청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공청회 직후 정치권에서는 그가 사실상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책 발표의 첫 행보를 시작했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공청회에 참석했던 박희태 국회의장이 박 전 대표를 ‘유력한 미래권력’으로 추켜세우며 찬사를 보냈던 것이다.

박희태 의장은 축사를 통해 “이 방(헌정기념관)이 생기고 이렇게 많이 들어온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오늘은 우리가 존경하는 유력한 미래 권력인 박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취임하는 날”이라고 극찬을 마지않았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역시 “박 전 대표의 높은 뜻이 우리나라 복지 발전의 큰 디딤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박 전 대표의 신념을 담아 열과 성을 다해 마련된 자리인 만큼 우리나라 복지의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본다”고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날 공청회 직후 “이번 공청회가 향후 대권행보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해석해도 되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 전대표의 의정활동 하나하나에 대해 대권행보를 가늠하는 관측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실제로 그간 박 전 대표의 모든 발언과 일거수일투족은 대부분 대권에 맞춰져 해석돼왔다.

심지어 세종시 수정안 파동 이후 정치적 언급을 자제했던 박 전 대표가 지난 9월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글을 남겼을 당시에서도 정치권에서는 대권행보와 연관된 분석을 내놓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 전 대표가 남긴 글은 ‘올바름을 잃음은 집착의 시작이며, 그것은 바로 고통의 시작이다’라는 짧은 문구였는데, 이 문구가 당시 외교부 특채 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유명환 전 장관을 겨냥한 정치적 발언이며, 이는 결국 박 전 대표가 대권행보에 슬슬 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박 전 대표가 미니홈피, 트위터에 남긴 모든 글들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며 대권행보와 연관 지은 무수한 해석을 낳곤 했다.

대통령의 딸 +α=?

이처럼 박 전 대표에게 쏟아지는 남다른 관심의 배경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특별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1974년 프랑스 유학 중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한 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0월까지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후 1998년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된 그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과 미혼의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 등의 개인적 이력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박 전 대표의 남다른 출신 배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진영 및 영남,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인 충청지역의 지지를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로, 박 전 대표는 정치활동을 펼치면서 육영수 여사 추도식 등에 참여해 “못다 이룬 꿈 반드시 이루겠다”고 발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가 출신배경 하나만으로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후보로 지목될 만큼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는 어려운 일이다.

박 전 대표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데에는, 분명 출신배경 뿐만이 아니라 의정활동과 각종 정치현안 문제에 대해서도 뛰어난 대처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 소추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아 당이 유례없는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는 당 대표로 나서 여러 차례 국민에게 사죄를 표명하고 당사를 팔아 천막생활을 자처하는 등 민심 수습에 나섰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리더십에 힘입어 한나라당은 탄핵의 거센 후폭풍 속에서도 17대 총선에서 121석을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고, 결과적으로 그가 한나라당을 구해낸 것으로 평가되면서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기 시작,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또한 정치권의 가장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였던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도 수정안을 제시하는 정부의 입장에 맞서 ‘원안’ 혹은 ‘원안+α’ 입장을 고수해 원칙주의자답다는 평가와 함께 충청권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 사진=뉴시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전략

박근혜 전 대표는 모범적인 언행으로도 유명하다. 유명한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말로 인한 잡음이 거의 없었으며, 부패나 부적절한 스캔들에 연루된 전력도 거의 없어서 국회출입기자들의 투표로 가장 신사적인 태도와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펼친 국회의원들을 선정하는 ‘백봉신사상’을 2007년부터 4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이러한 바른 언행과 정치적 행보에 대해 항상 긍정적인 평가만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09년 사회 전반을 들썩이게 했던 미디어법 날치기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스스로 번복했다가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무너뜨리고 ‘기회주의자’라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미디어법 처리 문제와 관련해 처음에는 “직권상정하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며 “여야합의처리를 할 것을 요구한다”고 원칙을 강조하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이후 한나라당이 자신의 지적을 받아들였다며 갑자기 태도를 바꿔 미디어법 직권상정에 찬성, 원칙주의가 깨지면서 지지자들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허용에 따른 촛불정국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와중에 “근본대책이 나와야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을 꺼낸 뒤 줄곧 침묵을 지키는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그렇게 온 나라가 어수선한 와중에도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당에서 밀려나 외곽에 캠프를 차린 자신의 측근인사들의 복당만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에 빗대어 ‘복당녀’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가 가장 큰 비판을 받는 부분은 중요한 정치 현안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태도이다. 올해만 해도 정치권에는 민간인 사찰 문제, 청와대의 대포폰 사용 의혹, 내년도 예산안 날치기 등 사회를 뒤흔들만한 대형사건이 터졌음에도 그는 별다른 언급 없이 침묵을 유지했고, 심지어 최근에는 자신에 대한 사찰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침묵을 지켰다.

그는 특히 야당은 물론 국내 4대 종교 종단을 비롯해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고, 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직접 박 전 대표의 트위터에 4대강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을 던졌을 때도 끝내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았다.

물론 박 전 대표의 이러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해당 현안들이 사회 전반을 뒤흔들 만큼 파급력이 크고 정치권에서도 여러 가지 논란과 싸움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니 만큼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종시 문제처럼 특정 지역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속된 말로 ‘표밭갈이’가 가능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야당이 박 전 대표를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최근 박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을 발표하자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 중요 이슈에 대해선 언급을 안 하면서 유리한 얘기는 고개 쳐들고 말씀을 한다”고 꼬집었다.

김영근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박 전 대표는 중산층 서민복지의 기본인 영·유아 예방주사 지원비와 보육시설 아동 양육수당, 장애인 연금지원 등이 삭감된 예산안을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킬 때마저 입을 다물었다”며 “복지와 관련해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해도 국민을 속이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성토했다.

진보신당 이재영 정책위원장은 정책논평을 통해 “노력과 시도가 의미가 없지 않으나 한편으로 ‘박근혜식 복지국가’는 치사하다”며, “예산안 날치기로 인해 복지예산이 빠진 것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복지국가 비전만 제시하는 것은 거대 여당의 책임있는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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