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직 끝나지 않은 ‘덕이지구’ 철거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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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직 끝나지 않은 ‘덕이지구’ 철거현장
  • 송병승 기자
  • 승인 2010.12.23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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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사이 덩그라니 남아있는 섬…“천막마저 철거될까 하루하루 걱정하며 산다”

[매일일보=송병승기자] 대한민국에서 재개발사업이 벌어질 때마다 매번 발생하는 사회이슈여서 이제는 사람들로부터 눈길조차 받기 힘든 뉴스가 바로 재개발조합 비리와 철거민 문제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미분양’ 문제가 덧붙여진다는 정도가 바뀐 트렌드이다.

일산 재개발구역의 한 곳인 ‘덕이지구’도 이런 트렌드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재개발 사업지역이다. 2008년 1월 첫 분양 이후 아직까지 분양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고, 지난 12월5일 재개발조합장이 금품수수혐의로 구속됐으며, 철거민 문제도 미해결 상태이다.

철거민 문제에 있어서 덕이지구가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점은 다른 철거민들이 모두 떠난 곳에 한 가구만이 남아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거기에 남아있는지,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매일일보>이 현장을 찾아가 봤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옛 가구단지…그들은 왜 아직 거기에 남아있을까?
전철연 “생활권 붕괴 대책 없는 재개발에 2~3번째 철거민 전락 악순환 많아”

 “쿵 쿵 덜컥 덜컥”  버스를 내리자 가장 먼저 들려온 소리는 현장을 철거하고 있는 포크레인의 굉음이었다.

‘일산 가구공단’ 혹은 ‘덕이동 로데오거리’로 더 잘 알려진 ‘덕이지구’는 일산 서구 덕이동에 위치한 덕이동 산 145-1번지 일대를 말한다. 한때 수많은 가구점들이 장사를 해 오던 덕이지구의 화려한 명성은 이제 철거 현장으로 자리를 넘겨 찾아 볼 수 없다.

▲ 철거를 위한 포크레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현재 덕이지구의 아파트 단지는 완공되어 내년 초부터 입주가 시작 될 예정이지만 그 앞을 지나는 도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도로 공사를 위해 옛 일산 가구 단지에 속해 있었던 상가들 중 아직 철거가 되지 않은 상가를 부수는 작업이 한창이다. 건물을 부수는 포크레인, 철거물을 나르는 덤프트럭, 철거를 진행 중인 인부들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은 가구점 철거를 인부들이 진행하고 있다.

 현장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미 예전에 철거가 끝난 듯 파헤쳐진 옛 가구점 자리들이 있다. 가구점들로 북적대던 덕이지구는 재개발이 결정되자 많은 상인들이 떠났고, 보상금 문제로 남아 있던 사람들도 일정부분 합의를 본 뒤 자리를 비웠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비닐로 둘러싸인 판자집 하나가 있다. 덕이지구에 마지막까지 남아 철거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있는 박은주(25.여)씨의 집이었다.

덕이지구 마지막 철거민의 집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2명과 함께 네 식구가 살고 있는 은주씨의 집은 ‘집’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천막 밖으로 나있는 창문만이 이곳이 집임을 알게 해주는 유일한 단서.

▲ 은주씨와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천막. 완공된 아파트와 학교로 인해 집은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고 있다.
나무 판을 대고 비닐과 천막으로 감쌌다는 이 집에서 은주씨와 세 식구는 2009년부터 살고 있다. 원래는 집 뒤 편에 바람과 공사장 소음을 막기 위해 펜스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것마저 학교공사로 철거당했다.

▲ 현재 은주씨가 살고 있는 천막. 완공된 아파트와 학교로 인해 은주씨으 집은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고 있다.
은주씨는 기자가 방문한 당일 “집 양쪽에 있는 전신주를 철거하기 위해 사람들이 오기로 되어 있다”며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만약 전신주가 철거된다면 영하로 내려가는 엄동설한에 네 가족은 전기도 끊긴 천막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집 안 상황은 더 열악했다. 세 평이 채 안돼 보이는 않는 공간에서 살림살이와 함께 네 식구가 살고 있다.

보일러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빨래와 세수를 차가운 물로 하고 있고, 난방은 전기장판으로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전신주가 철거되면 무용지물이 될 터이다.

연이은 불운으로 철거민 되기까지

은주씨 집 앞으로는 아울렛이 들어서 있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뒤로는 덕이지구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아파트 들은 내년 1월이면 입주에 들어간다. 덕이지구 철거민들 중 마지막으로 남은 집. 상권과 새로 개발되는 도심 그 사이의 ‘섬’처럼 남아 있는 은주씨의 집도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덕이지구의 마지막 남은 철거민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은주씨의 집은 가구단지 내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던 여느 가정과 다르지 않았지만 2006년 옆 동의 가구점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옆 동 가구점의 화재는 건물이 전소 되면서 진화되었지만 그 불씨가 옮겨 붙어 은주씨네 가구점과 가정집이 모두 불탔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당시 은주씨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 화재보험금을 빼서 썼기 때문에 보상마저 받을 수 없었다.

이후 은주씨 부모님은 다 타버린 건물에 인테리어를 새로 꾸며 가구점 장사를 다시 시작했지만 더 큰 재앙이 다가왔다.

덕이지구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상권이 해체되고 인테리어비용은커녕 상가권리금 등 한 푼도 보상받지 못한 채 가게를 비워야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결정된 후 은주씨는 한 철거민 단체에 가입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단체 간부들이 자신들의 보상금만 챙기고서는 입을 닦았다는 것. 이후 은주씨는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과 함께 철거보상문제에 대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덕이지구 현장에서 은주씨를 돕고 있는 김소연 전철연 조직위원은 “기존 재개발사업들의 가장 큰 문제는 원주민들이 오랜기간 살아온 생활공동체와 기존 상권이 붕괴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소연 위원은 “전철연이 개입한 현장을 보면 2~3번째 철거민이 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다”며, “보상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재개발이 예정된 낙후지역으로 다시 가게 되고 그 분들은 해당 지역 재개발이 시작되면 신규이주자라는 이유로 보상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에 다시 철거민이 되는 악순환에 처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그나마 수도권 같은 경우는 조직화를 통해 요구조건을 일부 관철시키기도 하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원주민들이 그냥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며, “은주씨네 가족 같이 정말 이곳을 떠나면 아무런 대책도 없는 사람들만 외롭게 남아 싸우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취재를 마무리할 때 은주씨가 기자에게 남긴 말은 “남아 있는 이 천막마저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 천막은 은주씨에게 남겨진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는 이야기이다. 마지막 철거민 은주씨 가족이 살고 있는 덕이지구.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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