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수입은 美의 선물’이라는 소신…“또 어떤 선물 받아올까 흠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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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수입은 美의 선물’이라는 소신…“또 어떤 선물 받아올까 흠좀무”
  • 이한듬 기자
  • 승인 2010.10.29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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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민동석 외교부 제2차관…‘2008 촛불’, ‘들불’로 만든 주인공의 ‘화려한 컴백’

▲ 2008년 8월1일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 농림수산식품부 기관보고에 참석한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현 외교부 2차관 내정자). 이 자리에서 “쇠고기 협상은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매일일보=이한듬 기자] ‘2008년 촛불항쟁’에 기름을 부었던 인물이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월26일 외교통상부 제2차관에 민동석(59) 외교부 외교안보연구원 외교역량평가단장을 내정한 것. 이번 인사로 정가에는 거대한 파문이 일고 있다.

민동석 외교부 차관 내정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온 나라가 들끓던 당시 농업통상정책관으로서,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협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쇠고기 협상은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발언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던 인물이다.

이번 인사 소식에 야권은 “MB정부 인사 중 가장 최악의 인사, 각설이 인사”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의 손에 촛불을 쥐어줘 광장으로 집결시킨 장본인을 다시 외교부 차관의 자리에 불러들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청와대는 민 차관 내정 이유에 대해 “쇠고기 협상 이후 온갖 어려움과 개인적 불이익 속에서도 소신을 지킨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민 내정자는 2008년 쇠고기 파동 당시 국회에 출석해 끝까지 쇠고기 협상을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은 바 있다.

靑 “쇠고기 협상 이후 온갖 어려움과 개인적 불이익에도 소신 지킨 사람”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든 말든 “쇠고기 수입은 미국의 선물”이 소신?

민주당 “캐나다 쇠고기 협상 걱정”, 민노당 “대통령 거짓 사과 증명해”
선진당 “민동석, 쇠고기 부실협상 몸통 아냐…민 개인 비판 가치 없어”

지난 2008년 4월, 정부는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공표했다. 정부의 최초 발표 분위기는 “싼 값에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며 국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30개월 이상 쇠고기에는 광우병 유발 물질이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이 합의는 그해 5월부터 전국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대규모 촛불 집회의 발단이 됐다.

당시 촛불을 손에 든 국민들은 “우리 가족의 식탁에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올릴 수 없다”며, 정부의 협상을 ‘굴욕외교’, ‘졸속협상’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렇게 전국의 광장으로 집결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은 100여일이 넘도록 뜨겁게 불타올랐고,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 사회 인사들까지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에 참가하며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져갔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에 걸쳐 대국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사과 발언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고, 수없이 제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는데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정부는 이후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에 한해서 추가협상을 하겠다는 카드를 내놓았으나, 이 카드 역시 국민들의 거센 반대로 기각되었고, 결국 이 대통령은 그해 6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일편단심 민들레, ‘소신의 사나이’

이처럼 2008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쇠고기 파동의 중심에는 민동석 외교부 제2차관 내정자가 있었다. 그는 2006년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으로 보임돼 2008년 4월 미국과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한국 측 수석대표로 나선 인물이었다.

그러나 민 내정자는 협상결과로 인해 사상 유래 없는 대규모 집회가 발생했음에도 “쇠고기 협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소신을 유지했다. 급기야 “쇠고기 협상은 미국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야권과 국민을 경악케했다.

문제의 발언은 촛불집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8년 8월1일 열린 국회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의 농림수산식품부 기관보고에서 나왔다.

기관보고에 참석한 민동석 내정자는 “쇠고기 협상이 캠프 데이비드(美 대통령 별장) 숙박료 아니냐는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의 질문에 “숙박료라는 말은 듣기 거북하다”며 “선물을 줬다고 한다면 우리가 미국에 준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에게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발언에 대해 당시 야당 의원들이 즉각 항의하고 나섰지만 그는 “국민이 보고 있어 사실대로 말한다”면서 “한국 대통령을 초청해놓고 결렬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은 미국이었다”고 덧붙였다.

발언 직후 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은 “이런 상태로는 국정조사가 무의미하다”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같은 당 김동철 의원은 “대한민국 정부 관료 맞느냐”고 비난했고, 강기정 의원도 “이 자리에 있는 자체에 모멸감을 느끼며 이런 식으로는 국정조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역시 “어떻게 이런 답변을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하느냐”며 “참을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과 최병국 특위 위원장(한나라당)은 “한쪽 주장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일 뿐, 국회를 모독한 것은 아니다”라고 맞서 양측 사이 고성이 오갔고, 최 위원장이 “객관적 사실관계를 가림에 있어 주관적 발언을 하면 안된다”고 민동석 당시 정책관에 주의를 줬으나, 파문은 그치지 않아 결국 정회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야 4당 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민 내정자의 발언을 규탄하면서, 이를 두둔한 정부와 한나라당의 사과를 촉구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 야당 의원 10여명은 “민동석의 발언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치욕적 망언”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민동석은 이번 쇠고기 협상단의 수석대표를 맡아 4월18일 협상을 타결한 장본인이며 협상장에서 협상의 전권을 가지고 협상을 타결한 자”라며 “졸속 협상의 당사자”라고 지목했다.

이들은 또 “민동석의 망언을 보며 수치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며 “민동석 발언은 특위진행여부를 가늠할 중대한 사태”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민 전 통상정책관의 발언이 이명박 정부의 입장인지를 밝히고, 이 같은 발언을 방조한 책임을 물어 한나라당과 최병국 쇠고기 국조 특위 위원장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강기갑 의원은 “우리가 쇠고기 협상을 미국에 선물로 준 게 아니라 미국이 선물로 줬다는 발언은 용납할 수 없다”며 “더구나 한나라당과 정부가 각본대로 국정조사를 진행하고 야당 질문에는 시간만 끄는 행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오히려 민주당이 아무 이유도 없이 회의를 ‘보이콧’하고 있다며 맞섰다.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 한나라당 간사인 이사철 의원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갖고 “(쇠고기 협상은 미국이 준 선물)발언이 과하다고 질책하며 회의에 불참하는 야당의 행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쇠고기협상 책임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함께 져야 한다고 조목조목 밝히자 불리함을 느끼고 회의를 ‘보이콧’하려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또 어떤 선물 받아올까 무섭다”

이번 인사와 관련해 한 야권 관계자는 “쇠고기 수입이 ‘미국의 선물’이라는 소신을 끝까지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외교부 2차관에 오른 민 내정자가 이번에는 그 소신을 가지고 또 어떤 ‘선물’을 받아올지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며 쓴웃음을 남겼다.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파행인사 얘기야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심해서 회전문 인사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각설이 인사로, 참 딱한 정부”라며, “현재 진행 중인 캐나다 쇠고기협상에 어떤 영향이라도 있을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이춘석 대변인은 특히 “청와대가 밝힌 내정 이유는 민 내정자가 쇠고기 협상 이후 온갖 어려움 속에서 소신을 지켰기 때문이라는데, 국민의 분노를 자초한 것을 소신이라고 말 할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이번 인사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 중 가장 최악의 인사”라는 비판논평을 냈다.

우 대변인은 “전 국민이 촛불을 들게 만들었던 장본인을 다시 외교부 차관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 당시 대통령의 사과가 모두 거짓이라는 의미”라며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국민들은 촛불집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헤아리지 못했다가 사과했던 것을 기억한다”며 “정부는 즉각 민 내정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8년 촛불항쟁’ 주역의 한 사람으로, 당시 ‘미친소닷넷’을 운영했던 백성균 민주노동당 전략기획국장은 “이번 인사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욱 위험한 것은 한미FTA 재협상이 논란이 되는 이때 그가 재등장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백성균 국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인정한 ‘소신’이라면 굴욕적인 쇠고기협상은 또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국민들을 바보나 괴담유포자 쯤으로 아는 정부를 촛불항쟁의 한복판에 있던 시민들 모두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느냐. 어떤 형태로든 재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원조보수’를 표방하면서도 2008 쇠고기 협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던 자유선진당은 이번 인사에 대해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28일 “민 내정자는 쇠고기 협상의 실질적 책임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논평을 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당시 실무진들은 더 협상해야한다고 직언했지만 윗선 최고위층에서 ‘내가 책임진다’며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한 것으로 안다”며, “그 최고위층이 누군지는 누구나 알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민동석 개인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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