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 그 결말은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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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 그 결말은 ‘자살?’
  • 한종해 기자
  • 승인 2007.02.02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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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목숨 버리는 20~30대 급증…“이제 더 이상 살 희망이 없다”

취업난이 점점 더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 따라 최근 취업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잇따라 한강과 지하철선로에 뛰어내리거나 독극물을 마시는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1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고 2005년 한국인 사망원인에서도 자살이 4위를 차지하는 등 자살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됐다.

특히 취업 문제를 가장 크게 걱정하는 2030세대 층의 자살 마음이 4년 사이에 네 배 넘게 늘어났다. 열명 중 세명 꼴이다.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은 지난 1년 사이 자살 충동을 겪었던 적이 잇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 명 당 약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다.

“더 이상 살 여유도 없다. 어차피 내일까지 돈을 빌릴 수가 없어 보인다. 내일이면 돈 내라고 전화가 무지 오겠지. 아! 그렇지 않아도 살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다. 오늘 난 잠적하러 머나먼 길을 떠나려 한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돈 때문에 무릎 꿇는 못난 내 자신이 너무 싫어… 다들 안녕히….”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이 게시판에는 이 같은 글 이외에도 자살을 충동질 하거나 자살을 바라는 글 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청년 실업률이 증가하고 취업난이 가중됨에 따라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사이트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자는 이 사이트 게시판에 ‘올해가 가기 전에 죽을까 합니다’라는 글을 쓴 한 청년을 수소문 끝에 만날 수 있었다.

2년전부터 자살 생각…방안 곳곳 농약병 가득

지난 23일 기자는 이 청년이 살고 있다는 서울 인근의 한 주택가로 찾아갔다. 4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까지 한 번도 직장의 문을 넘어보지 못했다는 박○○(29)씨는 불과 몇 달전 까지만 해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니는 구직자 신세였다. 지금은 밀린 방세와 핸드폰 요금을 내기 위해 피자 배달, 신문 배달, 백화점 물건 판매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었다. 박씨는 서울 유명 경영대학을 졸업한 소위 ‘엘리트’. 그러나 그에게는 장애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 학창시절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갖게 된 박씨는 어떤 직장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었다.

박씨가 살고 있는 자취방에는 보통 가정집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농약병들이 가득했다. 박씨는 “2년 전 부터 심한 압박감에 시달려 자살을 생각했고 그럴 때 마다 모아온 농약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홀로 남겨지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쉽게 결정내릴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아직 붙이다 만 이력서 사진들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사람도 있다. 기자는 발길을 신림동의 한 다세대 주택으로 향했다. 다세대 주택 옥탑방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김모(71)할머니는 지난해 11월 아들을 잃었다. 가까스로 작은 회사에 취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지난해 11월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할머니의 아들 윤모(26)씨는 지난해 2월 군대를 전역하고 4월 지인의 도움으로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지고 정식으로 회사에 입사한 게 아니라 거의 반강제적으로 회사를 나와야 했다. 윤씨는 6개월 여간 여기저기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지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김할머니는 “내가 아들을 죽였어. 회사에서 잘리고 난 뒤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구박을 했어”라며 아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냈다. 윤씨의 방에는 아직도 이력서에 붙이다 만 사진들과 이력서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이밖에도 지난해 10월 대학교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입시를 준비하던 김모(22)씨가 자신의 방안에서 목도리로 목을 매 자살했고 11월에는 생활고와 취업난을 견디지 못한 한모(27)씨가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사건도 있었다.

경제적 성장에 비해 정서적 성장 미흡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살의 원인은 인간관계와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른 우울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30대 자살 사망자는 생전에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드러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그에 따라 인간과계나 사회 환경의 변화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이 상실되어 ‘세상에는 자신 혼자뿐이 없다’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찬형 영동세브란스 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성장했지만 정서적 성작이 미흡하다”며 “생명경시, 무기력 풍조가 커지면서 자살률도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누구나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홍보하고 유명인에게는 개인 상담가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연간 자살자 수는 지난 2000년 1만1794명에서 2002년 1만3055명, 2005년 1만4011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은 암, 뇌혈관질환, 시장질환에 이어 지난 2005년 한국인 사망원인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고뢰자 한국자살예방협회 과장은 “청년 실업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청년 자살이 늘고 있다”며 “특히 집 장만에 앞서 차를 먼저 살 정도로 막강한 소비성향을 보이는 세대이다 보니 실업 등으로 인한 상실감은 중장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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