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진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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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진 검찰
  • 송영택 기자
  • 승인 2016.09.2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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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택 생활경제부장

[매일일보]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경영학 용어가 있다. 1962년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개발하고 2003년까지 적자를 감수하면서 운행했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에 연유해서 ‘콩코드의 오류’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개인이나 집단이 어떤 행동 코스를 결정하면 만족스런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이전에 투자한 것이 아깝거나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욱 깊이 개입해 가는 의사결정을 말한다.

최근 검찰이 남발하고 있는 구속영장 청구에도 이 용어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 70조는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로 크게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증거인멸의 우려, 도주의 우려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 구속이 수사의 성패를 판단하는 잣대라는 인식이 아직 팽배해 구속영장 청구가 남발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최근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대우조선해양 경영비리 의혹에 연루된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주요범죄 혐의에 다툼이 있는 등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90억원대 경영비리 혐의를 받았던 프로야구 넥센히어로즈 구단주 이장석 서울히어로즈 대표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보유주식을 미리 내다팔아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았던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구속영장 역시 기각됐다.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증거인멸 우려와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 기각 이유다. 또한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받은 박동훈 전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광고 수주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뒷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KT&G 백복인 사장, 181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낸 옥시의 존 리 전 대표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하지만 결국 지난 26일 1700억원의 횡령과 배임 혐의로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횡령과 배임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다. 구체적인 혐의점을 살펴보니 롯데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이름만 올려놓은 대주주 일가에게 500억원대 급여를 주고, 롯데시네마 운영과 관련해 800억원에 육박하는 일감을 몰아줬다는 것이다. 또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과정에서 계열사를 동원해 4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다.

하지만 검찰이 처음 수사 초점으로 지목한 불법 비자금 조성 혐의는 빠졌다. 이와 관련 앞서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과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등 롯데그룹 계열사 핵심 현직 경영자의 구속영장이 기각 된 바 있다.

특히 지난 6월 10일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100일이 넘는 기간에 무려 500명이 넘는 롯데임직원들을 불러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놓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는 5대 그룹 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점은 검찰이 매몰비용 오류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수사기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은 3만8377건이고 이중 6833건이 기각됐다. 구속영장 기각률이 17.8%에 달한다. 그나마 2014년(20.1%)보다 낮아진 수치다. 더 이상 검찰이 수사권이 약화 된다는 이유로 구속영장 청구를 남발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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