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쌀이요? 시장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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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쌀이요? 시장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어요"
  • 이진우 기자
  • 승인 2006.09.09 0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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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당 간부 배불리는 쌀 대신 옥수수 가루 보내라"

탈북자 "남측 지원 얘기만 들었지 배급받아 본 적 없어"
UN 세계식량계획 분배 확인도 거의 실효성 거두지 못해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쌀이 북한 주민들에게 거의 배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화국민회의-기독교사회책임-업코리아가 7일 공동으로 주관한 '탈북동포 간담회'에서 탈북자들은 남측에서 북측으로 보내진 쌀이 "최우선적으로 군, 탄광 및 건설현장으로 보내지며, 그나마 남은 것도 당 간부들이 가져가서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증언했다.

평안남도 평성 출신으로 지난 2003년 탈북한 김순애씨(가명, 女 70세)는 "내가 살던 곳이 산 꼭대기여서 부두 하역장이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2002~2003년 '대한민국'이라고 쓰여진 포대 전부를 군용 트럭에 적재하는 것을 보았다. 중국내 친척을 통해 남측이 쌀과 비료를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기에 기대하고 있었는데 단 한번도 이를 배급받아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지난 2005년 탈북한 최철호씨(가명, 38세)는 "남측이 지원한 쌀의 거의 대부분은 군부대나 용역현장으로 넘겨지며, 부족한 물품이나 연료를 충당하기 위해 이를 시장에 내다팔아 돈을 마련하다. 내다팔 수량에 대해 해당지역 당 간부가 결재한다고 들었다. 북한 주민들이 쌀을 구경하는 것은 오직 장마당(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으로 지난 2003년 탈북한 라광남씨(가명, 44세)는 "중국 국경과 인접한 도시, 평양-신의주-개성-함흥-청진 등 큰 도시들이나 되야 당간부들이 팔려고 내놓은 쌀을 시장에서 구경할 수 있을 뿐 내륙의 작은 도시나 마을에서는 그나마 구경할 수 없다. 그리고, 시장에 나온 쌀들의 가격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UN 세계식량계획(WFP)의 모니터링(분배 확인)도 거의 실효성을 거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지난 2000년 탈북한 리영순씨(가명, 51세) 는 "UN에서 모니터링팀이 나오면 인민반 단위로 모여서 고위간부가 교육을 시킨다. 쌀을 조금 줄테니 그것으로 밥 지어서 "배불리 잘 먹고있다"고 대답하라고 한다. 어떤 집에서는 일부러 포대가 쌓여있는 모습을 꾸미지만 모니터링팀이 가고나면 다 회수해간다"고 말했다. 리씨는 "속상하지만 당 간부들이 교육시키는대로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보복당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그나마 이런 수준의 모니터링조차 없으면 아예 쌀을 구경하지도 못할 것"이라며 지속직인 모니터링의 필요성은 강조하되 "그 방식은 대폭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지원한 쌀을 주민들에 대한 '선전용'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지난 1999년 탈북한 최종숙씨(가명,  女 59세)는 "북한 주민들이 쌀을 구경하는 것은 4월 15일 김일성 생일과 2월 16일 김정일 생일이 고작이며, 그나마도 3일치 정도 밖에 안준다. 그리고, 김정일 생일에 쌀을 주면서 '적들이 김정일 장군을 두려워하여 쌀을 바쳤다'는 말을 당 간부들이 하더라."고 증언했다.

탈북자들은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쌀이 환금성이 뛰어나고 저장이 용이한 만큼 당 간부들이 축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생옥수수를 갈아만든 가루'를 보내야 북한 주민들에게 배급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옥수수 가루의 보존기한이 짧고 쌀과 비교할 때 가격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당 간부들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적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것 역시 배급되지 않겠지만 시장에 싼 값으로 많이 풀리면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기존 쌀 물량을 절반으로 줄일 경우 그 물량의 4~5배에 해당하는 옥수수 가루를 지원할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쌀을 아예 보내지 말라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탈북자들은 "그나마 오던 쌀이 안오게 되면 시장에서 쌀값이 폭등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그러니, 쌀 지원 물량을 조금 줄이고 그만큼 옥수수 가루를 늘리는 것이 좋다"고 답변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볼 때 정부가 지원한 쌀은 최우선적으로 군부대와 용역현장으로 지원되며, 일부 작업장 및 군부대에서 쌀을 매개로 자금을 조성하고 있어 대북 지원 식량의 군비 전용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북한 주민들에게 쌀이 거의 배급되지 않고 있으며, UN의 모니터링' 방식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따라 정부의 기존 대북 식량지원 방식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진우 기자 <매일일보제휴사= 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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