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개, 돼지도 에어컨 바람 좀 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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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개, 돼지도 에어컨 바람 좀 쐽시다
  • 이한듬 기자
  • 승인 2016.08.23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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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한듬 기자] 입추의 문턱을 넘어선지 2주가 흘렀지만, 좀처럼 물러날 줄 모르는 폭염의 열기로 한반도가 들끓고 있다.

올해 8월의 서울은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보다 더욱 뜨거웠다고 한다. 지난 15일을 기준으로 전국 온열질환자는 1800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수로는 역대 최대의 수치다. 이쯤되면 참으로 지독하기 짝이 없는 무더위다.

여론 역시 폭염만큼이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무더위 속에서, 제발 누진세 걱정없이 에어컨 좀 마음 편하게 켜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가정용 전기료가 무서워 국민들이 초인적인 인내심만으로 더위를 버티는 사이, 각 집안의 에어컨은 그저 값비싼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에어컨 제조사들의 제품 판매량은 급증하고 있다는데, 정작 국민들은 에어컨을 사놓고 켜지를 못하는 웃지 못할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당초 누진세 개편은 없을 것이라던 정부와 한전은 민심이 들끓기 시작하자 여름철 한시적인 전기료 인하방침에 이어 전기요금 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국민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그간 불합리한 전기요금 체제로 과징금 수준의 전기료를 납부해 온 국민들 입장에서는, 여론에 등떠밀려 어쩔수 없이 전기요금 체계 재검토에 착수한 정치권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청와대 회동에서 송로버섯,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아, 샥스핀 등을 곁들인 식사를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여론에 기름을 붇는 형국이다.

서민들은 전기료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 전원 버튼 누르기를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반면, 정부 지도자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서민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초호화 음식들을 한끼에 즐기는 모습이 박탈감을 안겨준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 SNS를 검색해 보면 얼마 전 민중을 ‘개, 돼지’로 지칭했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말을 빗대 스스로를 개, 돼지로 비하하는 자조섞인 비아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꾸만 ‘헬조선’을 외치게 되는 현실에 대한 반발인 셈이다.

최근 박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 확산 행태가 잘못된 풍조라며 일침을 놓았다.

하지만 이를 꾸짖기에 앞서 그런 신조어가 왜 퍼지게 됐지는지를 먼저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어찌됐든, 지금 당장은 이 지긋지긋한 더위를 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바라건데 제발, 개, 돼지들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좀 마음껏 쐬어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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