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 특별기획 ① 옥시 ‘가습기 살균제’가 남긴 것] 옥시 사태,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상태바
[MI 특별기획 ① 옥시 ‘가습기 살균제’가 남긴 것] 옥시 사태,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 김백선·박주선 기자
  • 승인 2016.05.17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관리 부제로 사태 확산…유독물질 심사 통과에 판매 허가까지

[매일일보 김백선·박주선 기자] ‘살인’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때늦은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포함한 모든 살생물제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등 정책적 대응도 시작됐다. 하지만 시민의 분노는 날로 커져가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옥시 레킷벤키저에 대한 거부감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정부 부처의 이기주의, 나태함도 이 사태와 무관할 수 없다. 이에 <매일일보>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전말과 관련 이슈 등을 4회에 걸쳐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글싣는순서>

① 옥시 사태, 어쩌다 이 지경 까지 왔나
② 제조물책임법 어디까지 한계인가I
③ 제조물책임법 어디까지 한계인가II
④ 제 2의 옥시 사태 막을 방법은 없나?

민주노총,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등 16개 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살인기업 옥시불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참석자들이 옥시 제품을 폐기수거함에다 넣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백명의 사망자와 수천명의 피해자를 낸 ‘옥시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때는 2011년 4월 서울 아산병원에 폐질환 환자 7명이 들어오면서다.

그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 요인이라고 판단하고 사용과 판매를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제조업체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기 시작한 지 17년 만이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에 착수했고, 8월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생활화학용품 안전관리 종합대책’ 수립을 위해 관계 부처가 모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역학조사는 보건복지부 담당이라 환경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고, 근본 원인인 오염물질 피해조사는 환경부 소관이라 손발이 전혀 맞지 않았다.

◇“속인 옥시보다 방치한 정부 책임 더 크다”

정부의 ‘관리 부재’는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불러온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가습기 살균제를 주도적으로 관리할 콘트롤타워가 없었던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유독물질이 섞인 제품이 허가 받고 판매돼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PHMG은 다른 나라에서도 여러 제품에 쓰이고 있지만 우리처럼 인체에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는 가습기에 사용된 나라는 없다. 그 치명적 독성 때문에 농약 혹은 유독물질로 관리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독물질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에 사용될 길을 터 준 것은 환경부였다. PHMG 제조사인 유공(현 SK케미칼)이 이 물질에 대한 제조신고서를 제출한 데 따른 심사 결과였다.

PHMG가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허가해 준 것은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다. 산업부가 처음에 허가해 준 제품의 용도는 ‘세정제’였다. 이 제품은 ‘일반 화학가정용품’으로 분류돼 산업부가 관리하던 품목이었다.

이처럼 환경부와 산업부를 거쳐 ‘세정제’로 허가된 제품은 ‘살균제’로 이름을 바꿔 달고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가습기 살균제는 정부 어느 부처의 관리도 받지 않는 제품이 됐다. 당시 살균제는 이를 규제할 관련 법령이 없던 탓이다.

그러던 올해 박근혜 대통령이 “관계 기관들이 철저히 조사하고 피해자들이 제대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하면서 검찰은 전담 특별수사팀을 꾸리는 등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당시 옥시 대표였던 신현우 씨는 최근 검찰에 처음 소환돼 법정구속 됐고, 이번 사태의 주범인 옥시레킷벤키저도 5년간의 침묵을 깨고 마침내 공식 사과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생활용품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옥시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환경보건시민단체가 받은 피해자 접수 건수는 1528명(5월 초 기준)·사망자 239명이다. 여기에 포함된 피해자는 심각한 폐손상을 입은 사람들로 아토피 천식 등 기존 질환이 악화한 경우나 경미한 호흡기 질환 등 미처 자각하지 못한 사람까지 포함한 잠재적 피해자 수는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업계에선 가습기 살균제가 17년간 약 1000만개 이상 팔린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 ‘레킷벤키저’의 민낯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중심에 서있는 영국의 생활용품기업인 레킷벤키저는 19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200여개 나라에서 14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글로벌 지속 가능 경영 100대 기업 중 7위에 선정됐고, 영국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 10위 안에 꼽혔다.

이런 기업이 한국에서는 이미 정부와 학계에서 검증된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해 거짓말을 일삼으며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옥시는 지난해 말 검찰에 77쪽짜리 의견서를 제출했다. 피해자들의 집단 폐 손상원인은 가습기 살균제가 아닌 봄철 황사나 꽃가루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옥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독성실험 결과를 통째로 누락시키기도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간 소비자를 향해 보여줬던 레킷벤키저의 제품 책임 의식 때문이다. 이들은 ‘사용 제한 물질 리스트’를 통해 소비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물질들을 자체 관리하고 있으며, 지난해엔 투명한 제품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소비자 안전과 의약품 관리’라는 연구개발팀도 출범시켰다.

옛 동양제철화학(OCI)의 계열사였던 옥시는 2001년 영국계 기업 레킷벤키저에 1625억원에 인수됐다. 당시 생활용품 업계는 글로벌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고, OCI도 글로벌 업체들과의 제품 경쟁을 위해 옥시의 제안을 받고 계열사를 매각했다.

옥시를 인수한 레킷벤키저는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갔다. 대표적으로 살균 표백제인 ‘옥시크린’은 표백제 시장의 90%를, 제습제인 ‘물먹는 하마’도 국내 습기제거제 시장의 90% 상당을 차지하고 있다.

2001년 레킷벤키저에 인수된 이후 옥시는 유해성분 PHMG을 살균제 원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제품 매출의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하기 시작하더니, 2010년에는 87억원이 로열티로 나갔다.

국내 시장에서 공격적인 경영을 벌이며 세를 키워간 옥시레킷벤키저는 벌어들인 것 이상으로 빼갔다. 2003년과 2007년, 2010년 등 총 3차례에 걸쳐 총 543억8000만원 상당을 중간배당액으로 가져갔다. 2010년 배당금은 그해 순이익보다도 53%나 많은 금액이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불거진 이후 옥시는 외부감사나 공시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원인 미상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 후인 2013년에는 사업목적에 오히려 건강기능식품 제조, 판매업을 추가하는 ‘배짱’을 보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아예 사명에서 옥시를 빼고, 레킷벤키저의 영문 이니셜을 살려 ‘RB코리아’로 바꿨다. 철저한 ‘옥시 지우기’인 셈이다.

습관적인 구매, 반복 구매가 많은 생활용품 업계에서 초기 시장을 선도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옥시지만, 문제가 불거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에는 옥시의 주방세제 ‘데톨’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추천한 제품으로 마케팅을 했지만 의협이 옥시로부터 매출의 5%를 받기로 하고 추천마크 사용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시 옥시가 9년 동안 의협 추천마크를 사용한 대가로 낸 돈은 21억원이 넘었다.

최근 호주에서도 일반 진통제와 핵심성분과 함량이 같은 진통제를 마치 특정 부위 통증에 특효를 발휘하는 제품인 것처럼 광고해 호주 연방법원이 퇴출 명령을 하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