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영 칼럼> 70-80년대의 불쾌했던 기억 ‘불심검문’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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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영 칼럼> 70-80년대의 불쾌했던 기억 ‘불심검문’을 아십니까?
  • 나정영 발행인 겸 사장
  • 승인 2010.05.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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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70-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경험했던 불쾌한 기억이 한 가지 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경찰이 오른손 두 세 번째 손가락을 까닥 거리면 죄인처럼 끌려가서 주민등록증 보여 드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가방에 있는 소지품 전부를 토해(?) 내야했다.

시대가 워낙 으스스하다 보니 자신이 왜 검문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한마디도 입을 뻥긋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남자 대학생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여대생들은 가방 속에 있는 생리대와 스타킹 등 감추고 싶었던 물건들을 음흉한 얼굴로 쳐다보는 경찰들에게 보여주어야 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치욕적이었을까 하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금방 알 수 가 있다.

우는 여대생들이 태반이었지만 경찰들은 전혀 구애받지 않고 구석구석 검문을 했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이해를 못하는 책이라도 나오면 경찰서로 끌고 갔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 5월 초 인천지법 형사 3부(부장판사 서경환)는 불심검문을 요구하는 경찰의 멱살을 잡고 넘어뜨린 혐의(공무집행방해, 모욕)로 기소된 A씨(37)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은 경찰관들에게 공소사실과 같은 상해와 욕설을 가한 사실이 없고  설령 이러한 행위를 했더라도 이는 부적법한 공무집행에 대한 정당방위내지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서 판사는 “피고인이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으려는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경찰관들은 그 앞을 가로막는 등 피고인이 가지 못하게 계속 검문에 응할 것을 요구한 행위는 언어적 설득을 넘어선 유형력의 행사로 강요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행해진 불심검문을 적법한 직무 집행으로 볼 수 없어 폭행을 했다 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씨는 불심검문을 요구하는 경찰관에게 욕설을 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1심은 A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무자비한 불심검문에 대해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 불쾌한 경험을 가졌던 시민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경찰이 길을 가는 시민의 신분증과 소지품을 확인하고, 지나는 차량을 세워 트렁크까지 뒤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경찰관직무집행법(이하 경직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다만 개정안에는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와 ‘범인의 검거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의 단서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단서의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경찰에 부여된 재량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불심검문은 영장 없는 강제연행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신체의 자유와 영장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됐던 불심검문의 핵심은 ‘신원확인’ 이다. 현행 불심검문법도 역시 “경찰은 범죄 의심이 있는 사람을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고,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순 있지만, 시민이 반드시 응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개정안에서는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답변 강요 관련 조항이 빠지긴 했지만 신원확인은 여전히 강제가 아닌 임의조항”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정복을 입은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시민은 거의 없다. 경찰 설명대로 정말 임의조항이라면 법에 그 점을 좀 더 명확히 해야 한다.

가뜩이나 공안정국이니 ‘80년대로의 회귀’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요즘 경찰이 또 한번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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