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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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칠 건가
  • 임진영 기자
  • 승인 2015.11.10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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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부동산팀 임진영 기자

[매일일보 임진영 기자] 각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방화문은 법규대로라면 1시간 동안 화염과 연기를 차단할 수 있도록 설치된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방화문은 화재 시 1시간은커녕 10분도 채 버티지 못하는 불량 방화문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이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의해 밝혀졌다.

우연히 방화문 한 쪽이 떨어져 나간 것을 발견하고 불안감을 느낀 한 아파트 단지의 입주민들이 실제로 사용 중인 단지의 아파트 방화문을 떼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안전 점검을 의뢰한 것.

결과는 놀라웠다. 원래대로라면 1시간 동안 화재를 견뎌야 하는 방화문을 가져다가 불을 붙여다 놓고 실제 화재 현장과 동일한 환경을 조성해 놓고 보니 불과 4분에서 7분사이에 방화문이 화염에 휩싸여 녹아내려버린 것이다.

입주민들은 시공사인 건설사를 상대로 방화문 전면 교체를 요구했지만 건설사는 하자 보증 기간이 2년을 넘은 방화문에 대해선 교체를 해 줄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고수했다.

결국 소송을 통해 입주민들이 승소해 건설사로부터 보상을 받게 됐지만 그 보상 금액마저 방화문을 전면적으로 교체하는 비용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이런 불량 방화문들이 설치돼 문제가 된 아파트들은 전국 50여개 단지들에 달한다. 더군다나 해당 아파트 단지들은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등 국내 상위 10대 건설사들이 시공한 브랜드 아파트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입주민들은 소송을 통해 안전한 입주 환경을 얻어내려고 하고 있지만 법무팀, 담당 로펌 등 인력과 자금이 탄탄할 뿐더러 소송전에 이력이 난 건설사들을 상대로 한 입주민들의 이러한 투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실정이다.

입주민들은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를 믿고 자신들의 소중한 자산을 지불했다. 여기엔 화재를 막을 수 있는 안전한 방화문을 설치하는데 따른 비용이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시공사인 건설사가 창호업체에 방화문 제작 하청을 주고, 시공사로부터 의뢰를 받은 창호업체는 방화문 제작 업체에 또 다시 방화문 제작 의뢰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방화문 설치 비용은 업체간 이익금이라는 명목으로 깎여져 나간다.

결국 입주민이 최초 부담한 방화문 제작 비용에 비해 실제 방화문 제작 일선 업체에 주어지는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결국 부실하고 싼 자재를 쓸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제작된 방화문은 화재에 무용지물이 된다.

이런 현실에서 무조건 하자 보수 기간 2년이 넘은 아파트에 대한 보수 책임은 시공사에 없다고 외치는 건설사의 주장은 한없이 공허해 보인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안전을 위해서 입주민들은 2년마다 새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소리로 들린다.

각 건설사의 브랜드를 믿고 비용을 지불한 입주민들이다. 시공 책임을 맡은 건설사들이 입주민들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지는 성실한 자세를 보이기를 요구한다.

올해 1월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에서 화재 사고로 5명의 인명이 희생당했고, 크게는 지난해 세월호 사건의 아픔이 아직도 아려있는 상황에서 드러난 이번 사태는 대형 인명 사고 발생의 경고음이다.

이번에도 또 다시 부실 방화문으로 인해 소중한 인명이 희생된 후에야 뒤늦게 사후 약방문을 내놓는 식으로 관련자를 처벌하고 법규를 개정해 관리 감독에 나설 것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고질적인 악습의 무한 루프를 그만 끊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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