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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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방법이 있다
  • 정두리 기자
  • 승인 2015.06.2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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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정두리 기자] 지난 16일 자정 무렵 항공업계에서는 굵직한 소식이 들렸다.

대한항공이 국내 항공 사상 최대규모의 항공기 도입을 결정하며 개혁에 가까운 투자를 확정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파리 에어쇼가 열리는 프랑스에서 에어버스사와 보잉사의 차세대 항공기를 각각 50대씩, 무려 100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금액 규모만 13조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통 큰’ 결정이었다.

당초 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이 6조7000억원에 이르는 항공기 60대 수준을 도입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이에 훨씬 윗도는 규모가 결정나자 들썩이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의 거대한 위용도 다시금 드러난 순간이다.

대한항공의 이러한 결심은 2019년 창사 50주년을 맞아 제 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시에 안전운항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노후화된 단거리 기종을 새롭게 개편하고 중국·동남아시아 등 단거리 노선 강화의 계획도 담겨있다.

명실공히 글로벌 특급 항공사로 거듭나겠다는 남다른 포부를 밝힌 셈. 하지만 이러한 야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묻혔다.

그간 쉬쉬하고 있던 조현아 전 부사장의 복귀설이 별안간 튀어나왔다.

조양호 회장은 이날 파리 에어쇼 현장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땅콩회항’ 사건 이후 세 자녀의 역할 변화를 묻는 질문에 “덮어놓고 (기업을) 넘기지 않겠다”면서도 “세 명의 각자 역할과 전문성을 최대로 살리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의 발언은 그저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다고 볼 수도 있다. 과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집안의 장녀를 제 자식이 아닌 양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한마디가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조 전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감옥에서 나온 지 한 달이 채 안된 시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 사건은 검찰이 상고해 아직 대법원의 판단도 남아있다.

그런 상황에서 ‘세 명(조 회장의 자녀)’의 향후 행보가 언급되자 곳곳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말하는 이가 어떤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든 당시의 전후사정을 파악해 그의 속내와 의도를 유추해 본다면 그럴 법도 하다는 짐작이다.

결론적으로 조 회장의 이번 이야기는 시기적절하지 못했다.

더욱이 위기에 처한 조직의 오너라면 그가 하는 모든 말에 모두가 주목한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알진데, 아쉬운 대목이다.

하물며 부정적인 소식은 빨리 퍼지기 마련이다. 항공기 100대 도입을 성사시켰다 한들, 황제 횡포를 일으킨 재벌가 딸의 일거수일투족에 아직도 세간이 떠들썩한 것만 봐도 그렇다.

커뮤니케이션 한 전문가는 품위있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연하게 침묵하는 것도 인생경영의 기술이라고 했다.

때론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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