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절벽 대해부-인구절벽④] 교육, ‘고통 대물림’이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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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절벽 대해부-인구절벽④] 교육, ‘고통 대물림’이란 공포
  • 임진영 기자
  • 승인 2015.05.13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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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선 이제 용이 나지 않는다”

[매일일보 임진영 기자] 60년 전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을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힘은 교육이다.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가 믿을 것은 오직 사람의 힘뿐이었고,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겪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식 교육에 매진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우골탑’ 등의 용어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치열한 입시 경쟁이 벌어졌다. 이렇듯 그간 우리나라는 교육을 통해서 개인의 성공은 물론, 사회의 발전과 국가 발전도 이룰 수 있었다.

사회 곳곳에서 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난 용’ 일명 ‘개룡남 신화’의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일구고, 정부 관료가 돼 정부를 이끌었다.

그러나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가난을 벗어나고 성공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 계층의 대물림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내 자식 대에서는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란 희망이 사라진 지금, 교육은 출산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키는 원흉이 되고 있다.

공평한 출발선 사라진 교육, 계급 카르텔 공고화 악순환 도구
젊은 세대에 심어준 ‘패배주의’로는 한국 사회 쇠퇴할 수밖에

▲ 서울대 입학생의 구성원 변화. 자료= 한국개발연구원(KDI) 제공

무너진 대한민국 ‘개룡남’ 신화

지난달 2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세대 간 계층 이동성과 교육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서울대 입학생 중 특목고 출신이 40.5%였고, 강남 3개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은 25.2%로 전체 입학생 중 약 3분의 2가량이 특목고 및 강남3구 출신으로 밝혀졌다.

십여 년 전인 2002년에 이 비율이 55%였던 것에 비해 무려 1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서울대는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다. 대한민국 엘리트 계층의 과반수 이상을 배출해 온 교육기관으로 ‘서울대생’ 이라는 집단이 지난 특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는 성공한 집단으로 동일시된다.

이 서울대 입학생들의 출신 배경이 시간이 갈수록 ‘강남3구·특목고’로 쏠린다는 것은 부모의 경제·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식 세대의 교육 수준이 정해짐으로서 그간 교육이 계층 시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온 것과 달리 교육이 계층 간 대물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보고서에서 아버지와 아들 356쌍의 월평균 임금을 최하위·하위·상위·최상위 4개 구간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최하위 25% 임금을 받는 아버지로부터 최상위 25% 임금을 받는 아들이 나올 비율은 18%에 그쳤다.

또한 최상위 25% 구간에 속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약 75% 정도가 4년제 대학에 들어갔고, 10%는 상위 9개 대학 및 의대에 입학했다. 반면 최하위 25%에 속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40% 정도가 4년제 대학에, 0.4%만이 상위 9개 대학 및 의대에 들어갔다.

▲ 서울 자치구 별 2011년도 서울대 합격자 수. 자료= 한국개발연구원(KDI) 제공

‘금수저·은수저’의 시대…‘사다리 걷어차기’ 시작됐다

교육이 계층 상향 이동의 통로가 아닌 계층의 대물림을 공고화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자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통계청이 “우리 사회에서 현재의 본인세대에 비해 다음 세대인 자녀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은 결과 1994년에는 ‘비교적 낮다’와 ‘매우 낮다’를 합친 부정적 응답이 5.1%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9년에는 11.2%, 2003년 19.8%, 2006년 29.0%, 2009년 30.8%, 2011년 42.9%, 2013년 43.7%로 갈수록 교육을 통한 세대 간 상향 계층으로의 이동을 비관론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이 사회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현실에서도 계층 이동의 합법적인 사다리틀 제도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시를 들 수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고시’ 제도를 통해 교육을 통한 개인의 노력으로 상향으로의 사회 계층 이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되며 사법시험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법조인 양성과 고시 제도의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로스쿨은 오히려 더욱 공고한 계층의 벽을 쌓는 카스트 제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사법연수원 38∼44기) 7년간 배출된 사법시험 합격자 6000여 명 중 부모가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 교수인 법조인 자녀는 총 69명이었다.

반면 로스쿨 1∼3기 3년간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4500여 명 중 법조인 자녀는 71명으로 한 해 평균 사법시험은 9명, 로스쿨은 23명의 법조인 자녀를 배출한 것으로 드러나 과거 사시 체제보다 로스쿨 제도 하에서 세대 간 법조계 ‘세습’ 경향이 약 2.5배나 강화됐다.

특히 다양한 배경을 지닌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의 원래 취지와는 달리 로스쿨 체제에서 학벌 공고화 현상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로스쿨이 처음 도입된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6년간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 920명의 출신대학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가 606명으로 66%를 차지했고, 이어 고려대 출신이 124명으로 13.5%를 차지했으며, 연세대가 80명으로 8.7%를 차지해 그 뒤를 이었다.

흔히 사회에서 명문대로 통용되는 이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 입학생이 총 810명으로 전체의 88%를 차지하는 것과는 달리, 지방대 출신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은 지난 6년간 단 4명인 0.4%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도 로스쿨이 도입된 첫해와 두 번째 해인 2009년에 3명, 2010년에 1명이 각각 들어간 것이 전부고, 그 이후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4년간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 중 지방대 출신은 단 한명도 없었다.

▲ 최근 6년간 (2009~2014년)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 출신 대학 통계. 자료= 유기홍 의원실

숙제로 다가온 ‘공정한 기회’

각종 통계와 설문조사에서 드러나듯이 과거 상위 계층의 사다리틀 역할을 해온 교육이 현재는 오히려 계층의 공고화를 불러오는 카스트 제도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이미 저성장·고령화 시대를 맞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과거 수행해 온 ‘신분 상승의 기회’가 아닌 ‘가난의 대물림’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준다는 것이다.

교육이 젊은 세대에게 희망이 아닌 패배주의를 심어준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정체하고 쇠퇴 할 수밖에 없다.

이미 계층 간 불평등과 고착화가 심해진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공정한 노력과 이에 따른 보상과 유인책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교육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청년 한 명, 한 명이 가장 귀한 국가적 자원이 될 초저출산·급고령화 시대에 학교에서 교육으로 공정한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시급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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